작년 하반기까지, 우리 동네 지하철 역사에는 텅 빈 상가 점포가 하나 있었습니다.
늘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이라, 간이 카페 같은 것들이 들어섰다가 계절이 채 바뀌기도 전에 사라지곤 했습니다. 마치 그 자리는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연말, 뚝딱거리던 며칠간의 공사 끝에 무인 슈퍼마켓이 들어섰습니다. 요새 우리 동네는 무인 가게가 성황입니다. 아파트 단지마다 한두 개는 족히 있는 듯합니다. 우리 아파트 앞에만 해도 셋이 치열하게 경쟁하다, 지금은 둘이 위태로운 휴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들이 불량 식품이나 사 먹는 곳이겠거니, 나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것이 올여름까지였습니다.
그러다 아내가 차로 출근하는 날이 잦아지며, 저는 매일 아침 그 가게 앞을 스쳐 전철을 타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무엇을 파는지 곁눈질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천 원 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실 빵을 그리 즐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크림빵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생전에 빵을 무척 좋아하셔서, 기일이면 동생들과 납골당에 빵을 한 아름 사 가곤 했습니다. 빵을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문득 어머니가 생각나곤 합니다. 기호도 유전인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두 아이가 번갈아 울며 깨우는 소리가 기상나팔인 제게 아침 식사는 사치였습니다. 늘 허둥지둥 아이들을 달래고 놀아주다, 시계를 보고는 황급히 집을 나섭니다. 박물관에 도착해서야 커피 한 잔으로 위장을 달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단조로운 일상에, '단팥크림빵 금일 천 원'이라는 문구가 훅 들어온 것입니다. 5등 로또 당첨금처럼,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운처럼.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저는 사십 대 중반의 티가 나는 아저씨처럼, 카드를 찍으면서도 빵을 오물거렸고, 전철을 기다리면서도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물론 전철 안에서는 예의상 참았습니다만.
천 원짜리 빵은 든든하다기엔 허전하고, 부실하다기엔 그런대로 먹을 만했습니다. 금액이 모든 단점을 상쇄하는, 딱 그만큼의 행복이었습니다. 배를 채운다기보다는, 아침의 허기를 잊게 해주는 정도.
하지만 매일 아침 그 빵을 먹으며, 저는 조금씩 아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단팥과 크림이 조금만 더 채워졌으면. 빵 안의 공간이 좀 더 풍성하게 메워졌으면.
그렇다고 두 개를 먹는 것은 뭔가 지나쳤습니다. 일곱 잔이 나온다는 소주처럼 어설픈 불안정함. 배는 부르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그런 어정쩡함.
그런 생각을 하던 즈음, 전시 준비로 야근이 잦아졌습니다.
2.
어느 늦은 밤, 박물관 옆 편의점을 배회하던 저는 전설로만 듣던 'Y대 크림빵'을 마주했습니다.
두툼하고 당당한 그 자태에, 아침에 먹던 빵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가격을 확인하는 순간 통장 잔고가 움찔했습니다. 아침 빵값의 330%. 편의점 빵 주제에 파리바게트보다 비싼 가격.
하지만 'MZ세대는 다 먹어봤다는데, 1980년생인 나라고 못 먹어볼까' 하는 자조 섞인 자존심에, 저는 그 생크림 괴물을 집어 들었습니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이것은 크림이 아니라 황홀경에 가까웠습니다.
꾸덕하고 찐득한 크림이, 마치 오랜 시간 기다렸다는 듯 입안으로 무너져 들어왔습니다. 혀로 낼름 핥으면 그 옆의 크림이 또 눈사태처럼 쏟아졌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크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쾌락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빵을 반도 먹기 전에, 허전함과는 정반대의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언제 다 먹지?'
비싸기도 하거니와, 너무 과했습니다. 한두 번이야 즐겁겠지만, 매일 아침 이 녀석과 마주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크림이 손에 묻고, 입가에 묻고, 포만감에 숨이 막혔습니다. 처음의 황홀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빨리 끝내야 한다'는 의무감뿐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멈춰 섰습니다.
3.
문득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지금, 두 개의 빵 사이에서 전시 준비를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천 원짜리 빵의 허전함은, 시간이 넉넉하다 믿었던 전시 준비 초기의 나른한 불안감을 닮아있었습니다. "나중에 좀 더 채워 넣으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하며 미루는 안일함. 그리고 그 빈 공간을 채우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불편한 마음.
삼천삼백 원짜리 빵의 버거운 포만감은, 마감에 쫓겨 모든 것을 쏟아붓는 지금의 나를 보는 듯했습니다. 넘치도록 채워 넣지만, 정작 그 과정의 즐거움은 느끼지 못하는 피로감. 끝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다 끝내고 나면 "이게 최선이었나" 하는 회의감.
느긋했을 때를 돌아보며 "그때 좀 미리 해둘걸" 후회하고, 모든 것을 쏟아부은 뒤에는 "그때 좀 천천히 해서 실수를 줄일 걸" 하고 자책합니다.
우리는 늘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법한, 완벽한 균형의 이천 원짜리 빵을 찾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어제 퇴근길에, 저는 실제로 이천 원대의 빵도 먹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투덜거리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크림이 좀 더 많았으면" 혹은 "이 가격이면 좀 과한데" 하고 말입니다.
천 원 빵을 먹을 때는 삼천 원 빵의 풍요를 꿈꾸고, 삼천 원 빵을 먹을 때는 천 원 빵의 소박함을 그리워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요.
4.
허전함도 삶의 일부입니다.
그 빈 공간이 있기에 우리는 내일을 기대하고, 더 채워질 무언가를 바라며 아침을 맞이합니다. 배고픔이 있어야 밥맛을 알 수 있듯, 허전함이 있어야 충만함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포만감도 삶의 일부입니다.
그 넘침이 있기에 우리는 이 순간에 감사하고, 이만큼 누릴 수 있음에 안도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때로는 과할 정도로 채워져 봐야, 적당함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가 찾는 '적당함'이란, 사실 고정된 지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삶이란 그 양극단을 오가는 위태로운 흔들림 그 자체이며, 그 흔들림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일 겁니다. 추의 흔들림이 멈추면 시계가 멈추듯, 우리의 흔들림이 멈추는 순간이 바로 삶이 멈추는 순간이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5.
오늘 아침, 저는 다시 전철역 무인 슈퍼마켓 앞에 섰습니다.
천 원 빵이 진열대에서 저를 부릅니다.
저는 잠시 멈춰, 그 소박한 빵을 바라보았습니다. 어제처럼 아쉬움이 밀려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반쯤 먹고 나면 "크림이 좀 더 많았으면" 하고 투덜거릴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미소 지으며 카드를 꺼냈습니다.
오늘은 네가 나의 아침이구나.
허전하면 허전한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내일은 또 어떤 빵을 만날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지 알 수 없지만, 그것도 좋습니다.
지나침도, 모자람도, 모두 나의 삶을 이루는 소중한 조각들이기에.
결국 중요한 것은 빵의 가격도, 크림의 양도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순간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 그것이 진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순간을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진짜 맛을 알게 되는 것이겠지요.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압니다. 지나침도, 모자람도, 그 사이의 모든 순간들도, 우리 삶의 소중한 맛이라는 것을. 쓴맛과 단맛이 모두 있어야 음식의 깊이가 생기듯, 허전함과 포만감이 모두 있어야 삶의 깊이가 생긴다는 것을.
빵 한 조각에서 깨닫는, 삶의 작은 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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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구박물관 특별전 〈사람과 땅, 지리지에 담다〉
일시: 2025.11.25.~2026.2.22. 장소: 국립대구박물관 기획전시실 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