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허삼관 매혈기 - 책장을 바라보며

by 낭만지리 굴비씨


1.


아침 나절, 때아단 여유가 찾아왔다. 첫째 아이의 유치원 참관 수업 때문이었다. 가족돌봄휴가라는 것도 생전 처음 써보는 것이었다.


8시가 지났는데도 집안 책상에 앉아 햇볕을 바라본다는 것. 묘한 일탈감이 들었다.


그러자 세상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느린 세상이 드디어 내 안으로 훅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책상 옆으로 소담하게 차려진 책장에 시선이 머물렀다. 지난주 한 구루마나 버리고 남은 책들. 그중 강명관 선생님의 초창기 책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 보였다.


사람이 책을 스스로 읽었다면 그 책에 사연 하나쯤은 있는 법. 나 역시 이 책에 사연이 있었다. 갑자기 그 사연이 떠오르면서, 지금은 너무나 책에 헤픈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2.


2004년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내 마음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당시 담배를 끊었는지 피웠는지는 정확치 않지만, 피웠다면 늘 메고 다니던 어깨 가방에는 담배가루가 날렸을 테고 얼굴에는 가난이 묻어 있었을 것이다. 지갑에는 늘 만 원만 있었다. 돈을 뽑아도 만 원만 뽑았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나면 종로로 갔다. 인사동을 걷고 교보문고를 거쳐, 종3가를 지나 청계천 사잇길을 걸었다. 1,500원짜리 국밥을 먹고 소주를 잔술로 마시고 시를 썼다. 그러다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곤 했다.


당시 아직 많이 남아 있던 동대문 헌책방 골목이 나의 아지트였다. 항상 새로 들어온 책을 탐색하기 바빴다.


그때 아는 친척이 소개팅을 주선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 간호사에게 헌책방 골목을 함께 걸으며, 먼 훗날 인사동 카페 창가에서 글을 쓰는 꿈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 말은 몇 년 후, 선배에게 똑같이 들었다.


3.


몇 년 후 어떤 선배가 물었다. “인생의 꿈이 뭐야?”


아마도 그 선배는 강남의 아파트나 화목한 가정, 승진 같은 답을 기대했나 보다. 나는 뚱딴지같지만 이렇게 답했고, 지금도 유효하다.


“인사동 골목에 있는 어떤 카페요. 오후가 되면 볕가 잘 드는 곳이에요. 그곳 창가에 앉아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글을 쓰는 것이 제 꿈이에요.”


선배는 혀를 찼다. “그건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거잖아.”


나는 아무 반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절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첫째, 그 카페에 볕이 잘 드는 날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둘째, 그날 내가 그곳에 갈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창가에 빈자리가 있어야 한다. 넷째, 내 마음에 드는 책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인데, 그 모든 조건이 갖춰졌을 때 그날따라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한다. 창가에는 볕이 들고 내 마음이 움직이고 그래서 나는 글을 쓰게 되는 것. 그 정경을 나는 꿈이라 부른다.


왜 그걸 무시할까. 그 꿈은 결국 피를 팔아라도 실현해야 할 만큼 간절했다.


4.


교보문고는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안식처였다. 특히 인문과학과 인문학 코너는 머무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바닥에 앉아 마음껏 책을 읽기 좋았다.


마음에 너무 드는 책을 만나면 사곤 했는데, 당시 책값은 대개 8,000원 가량이었다.


2004년 2월의 어느 날, 인문학 코너에서 강명관 선생님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보게 되었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책 읽는 속도가 변함이 없다. 한 시간에 60페이지. 다른 이들에 비해 현저히 느리다. 속독 같은 건 꿈에도 못 꾼다. 느리게 나아갈 뿐이다.


책을 100페이지쯤 읽었을 때, 집에 가져가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주머니에는 5,000원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낭패였다.


5.


그렇게 서성이다 추운 겨울 길거리로 나섰다. 교보문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는데, 근처 빌딩—아마 지금은 발굴터로 변한 그 지점—에서 헌혈 모집을 하고 있었다.


크게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5,000원 문화상품권 증정’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바늘 공포증이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피값이 책값보다 소중했다.


만약 허삼관이 내 옆에 앉아 있었다면, 그는 피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을지도 모른다.

“책 한 권에 피 한 주머니라니, 너도 나처럼 미쳤구나.”


여담이지만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내 혈관은 유난히 가늘다. 심할 때는 세 번이나 잘못 찌르는 적도 다반사였다.


여하간 그렇게 군대 이후 첫 헌혈을 마치고, 초코파이와 함께 받은 문화상품권은 바로 강명관 선생님의 책으로 교환되었다.


6.


당연한 이야기지만 집에 가서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피가 아깝지 않은 책의 가치였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가난한 대학생이었기에, 그 후로도 20여 번은 더 헌혈을 한 것 같다. 나중에 빈혈 진단을 받고, 의사가 “이제 그만하라”고 경고할 때까지였다. 머리가 어지럽고 손이 저리는 날이 잦아졌지만, 그때는 책 한 권이 건강보다 소중했다.


지금 생각해 본다. 그때 집었던 책이 만약 정말 재미없었다면, 나는 그런 열정으로 헌혈을 하면서까지 책을 사서 읽었을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렇게 산 책들을 따로 표시해 놓을걸, 하는 생각이다. 이 책만 기억이 난다.


7.


지금의 나에게 헌혈을 해서 책을 사겠냐고 하면 당연히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생의 기회비용이 바뀐 탓일지도 모른다. 아마 간절함의 차이가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에게는 피를 팔면서까지 불과 5,000원의 문화상품권을 보태서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 책들이 하나씩 하나씩 꽂혀서 지금의 책장을 만들었다는 것이, 생각해 보니 참 묘하다.


지난주 한 구루마나 책을 버렸다. 하지만 《조선의 뒷골목 풍경》은 남았다. 당연히 남았다. 그 책은 내 피로 산 책이니까.


8.


다시 책장 앞으로 돌아왔다.


8시가 지난 아침, 햇볕이 책등을 비춘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꺼내 펼쳐본다. 20년 전 내 피가 묻어 있는 것 같은 이 책.


2004년 겨울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아마도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싶다.


“형, 그때 우리 참 배고팠지만 행복했지 않았어? 책 한 권이 저렇게 간절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잊지 마.”


강명관 선생님께 좋은 책을 써주셔서 감사드린다. 푸른역사에 좋은 책을 내주셔서 감사드린다.


그리고 2004년 겨울의 나에게도 감사한다. 피를 팔아서라도 책을 사려 했던 그 간절함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으니까.


*에필로그:


첫째와 둘째 아이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었다. 나는 이제 참관 수업에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다시 책장에 꽂으며 생각한다. 언젠가 이 아이들도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순간이 오겠지. 그때 아이들은 무엇을 선택할까.


나는 그저 간절함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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