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도 속의 섬을 찾아서
지도를 볼 때 여러분의 눈길은 어디에 먼저 머무나요? 보통은 내가 사는 도시, 큰 길, 높은 산을 먼저 찾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바다 위를 떠다니는 작은 점들, '섬'에 자꾸만 눈이 갑니다.
박물관 수장고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도서관에 흩어져 있는 우리 옛 지도를 살펴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아니, 배 타고 가기도 힘든 이 작은 섬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그렸다고?" 작은 마을 하나, 굽이치는 개울, 심지어 바닷속 암초까지... 옛사람들은 섬 하나를 그릴 때도 허투루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 섬세한 붓 터치 속에는 뭍에서 떨어진 외로운 땅을 기억하려는 간절함이 배어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지도의 동쪽 끝과 서쪽 끝에 있는 섬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이름이 자꾸만 바뀌었던 동해의 외로운 섬, 그리고 이름처럼 정말 검게 그려진 서해의 섬 이야기입니다.
2. 울릉도: 새의 눈으로 본 분화구
먼저 동해로 가봅니다. 울릉도는 조선 시대 내내 특별한 관리 대상이었습니다. 정부는 왜구의 침략을 우려해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 정책'을 폈지만, 그렇다고 우리 땅임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후기로 갈수록 일본과의 영토 분쟁 때문에 더 정밀한 지도가 필요해졌습니다.
울릉도 지도는 아주 독특한 구성을 보여줍니다. 바로 '내도(內圖)'와 '외도(外圖)'로 나누어 그리는 방식입니다. 울릉도는 거대한 화산섬이지요. 한가운데 나리분지가 있고, 그 주위를 험준한 산들이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 지도 제작자들은 섬의 겉모습만 그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나 봅니다.
그들은 마치 드론을 띄운 것처럼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새가 되어 내려다본 시선, 즉 '조감도(鳥瞰圖)' 기법으로 나리분지 안쪽의 내도와 해안가 절벽의 외도를 따로 또 같이 그려냈습니다. 평면 지도에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울릉도의 입체적인 지형을 한 장의 종이 위에 담아내려 했던 그들의 공간 감각에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저도 대학 시절 배낭 하나 메고 울릉도를 일주했던 기억이 납니다. 해안가 절벽 위에서 마시던 믹스커피의 맛, 그리고 지도 속 그림처럼 웅장하게 펼쳐지던 나리분지의 풍경. 옛사람들도 저처럼 숨을 헐떡이며 그 산길을 올랐기에 그런 생생한 지도를 남길 수 있었겠지요.
3. 우산도, 자산도, 방산도? : 이름의 미스터리
울릉도 옆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짝꿍, 독도가 있습니다. 옛 지도에는 주로 '우산도(于山島)'라고 적혀 있지요. 그런데 지도를 보다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어라? 이 지도에는 '자산도(子山島)'라고 적혀 있네?" "여기는 '방산도(方山島)'? 또 다른 섬인가?"
심지어 어떤 지도에는 '천산도(千山島)'라는 이름도 등장합니다. 동해 바다에 우리가 모르는 섬들이 이렇게 많았던 걸까요? 범인은 바로 '붓'과 '베껴 쓰기'였습니다. 옛날에는 지도를 목판으로 찍기도 했지만, 대부분 손으로 베껴 그렸습니다(필사). 그러다 보니 실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흘림체로 쓴 '우(于)' 자를 한번 보세요. 조금만 급하게 쓰면 '자(子)' 자처럼 보이고, 위쪽 획을 길게 그으면 '방(方)' 자나 '천(千)' 자와 비슷해집니다. "아, 우산도구나" 하고 써야 하는데, 앞사람의 악필(?)을 잘못 읽어 "어? 자산도네?" 하고 베껴 쓴 것이지요. 그렇게 한 번 잘못 적힌 이름은 다음 사람에게, 또 다음 사람에게 전해지며 굳어졌습니다.
어떤 지도에는 우산도가 울릉도 왼쪽에 그려져 있기도 하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처럼 아예 빠져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오류들조차 소중한 정보가 됩니다. "이 지도는 '자산도'라고 쓴 걸 보니 저 지도를 보고 베꼈구나!" 실수마저도 지도의 족보(계통)를 추적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곳, 그것이 바로 흥미진진한 고지도의 세계입니다.
4. 흑산도: 정말 검게 그려졌을까?
이제 시선을 서해 끝으로 돌려봅니다. 목포에서도 배를 타고 한참을 가야 나오는 먼 섬, 흑산도(黑山島)입니다. '검은 산의 섬'. 이름부터가 묵직하고 어둡습니다. 유배를 떠났던 정약전 선생은 이 섬의 이름이 너무 어둡고 무서워서, 편지를 쓸 때면 '흑산(黑山)' 대신 '현산(玆山)'이라고 바꿔 불렀다고 하지요.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이고, 산과 숲이 깊어 섬 전체가 검게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문득 엉뚱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과연 옛 지도에서도 흑산도를 검게 그렸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고지도를 찾아보았습니다. 정답은? "네, 정말 검게 그려져 있습니다!"
많은 지도에서 흑산도는 유독 짙은 먹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다른 섬들이 초록색이나 옅은 채색으로 그려진 것과 대조적입니다. 지도 제작자들도 '흑산'이라는 이름이 주는 강렬한 인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검은 먹물 한 방울 툭 떨어뜨린 듯한 그 섬. 그 짙은 어둠 속에서 <자산어보>를 썼던 정약전의 고독과, 머나먼 유배지의 막막함이 지도 밖으로 전해지는 듯합니다.
5. 에필로그: 슬픈 세상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지도를 보다 보면 섬의 이름과 모양뿐만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슬픈 사연들도 만나게 됩니다. <호남도서>라는 책을 보면 전라도의 수많은 섬마다 주인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까지도요. 그런데 그 주인들이 누구냐 하면, 섬사람이 아니라 한양에 사는 권세가들입니다.
"서울에 사는 난다 긴다 하는 세도가들의 땅이라니..." 바다 건너 척박한 섬마저도 권력자들의 재산 목록에 올라 있었던 것입니다. 땅 투기와 가진 자들의 독식. 200년 전 지도 속에 적힌 이름들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슬픈 세상사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동해의 자산도와 서해의 흑산도. 이름이 잘못 적히고 검게 칠해진 그 작은 점들. 하지만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점 하나하나에 파도와 싸우며 살아갔던 사람들의 치열한 삶과, 그들을 기억하려 했던 붓끝의 정성이 서려 있습니다. 오늘, 지도 앱을 켜서 바다 위 작은 섬 하나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곳에 어떤 색깔의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상상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