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무게

by 낭만지리 굴비씨

1.

삼류 학자이긴 하지만 나 또한 학자는 학자인지라, 뭔가에 꽂히게 되면 뒤끝이 길고 오래가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독한 것이 뭔고 하면 "그거 어느 책에선가 봤는데... 어느 책이더라..." 하는 것이다.


전시 설명을 하다가 "○○○ 책에 의하면 ×××라고 합니다"라고 하고 싶은데, 도대체 그 책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쩔쩔맬 때가 많다. 그 가운데 이번 전시에서 가장 콧잔등을 간지럽혔던 것이 바로 '경상도지리지의 무게'였다.


2.

필자의 노둔한 기억력이 맞다면, 석사 시절 읽었던 외국 문헌학 책 가운데 분명 『경상도지리지』의 서지사항을 기록하면서 '무게'를 언급하는 책이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스쳐 지나가는 구절이었지만 퍽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 막상 『경상도지리지』가 나와서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는데, "예전에 어느 책에서는 경상도지리지의 무게를 쟀다고도 합니다"라고 설명을 하기 시작하니 설명이 너무 두루뭉술해서 가오가 서지 않았다. 사람들도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3. 추적의 시작


다시 머리를 쥐어짠다. 모리스 쿠랑의 『한국서지』인가, 페트로바의 『한국기록문화유산의 해제』인가,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의 『古鮮冊譜(고선책보)』인가. 아무리 봐도 『고선책보』 같다.


그때부터는 설명에서 마에마 교사쿠가 경상도지리지의 무게를 재어 책에 기록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문제가 더 커졌다. 사람들은 또 묻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게가 얼마래요?"

원본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본식 한자 발음을 찾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당장 그 두꺼운 『고선책보』를 어디에서 구한단 말인가.


4.

내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게서 배운 것은 멀리서 구하지 말고 가까운 데를 자세히 찾으라는 것이었다. 진실로 그의 말이 옳다.


장모님이 나의 방을 쓰셔서 아내의 연구실에서 글을 쓸 때가 많았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출근 가방을 챙기는데, 아내의 서재에 『고선책보』가 떡하니 있는 게 아닌가. '자아의 표지'는 늘 발밑에 있곤 한다.


5.

일본어를 못하는 주제에 더듬거리며 'ケ(케)' 항목에서 『경상도지리지』를 찾아냈다. 놀랍게도 옛 기억이 맞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길이 2척 8촌(약 84.8cm), 폭 4척 7푼(약 14.2cm), 두께 2촌 6푼(약 7.9cm), 무게 5관 320문, 종이 99장.

5관 320문을 현대 단위로 환산하면 약 19.95kg이다. 왜 이 책을 옮길 때 두 사람이 필요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서지학자인 내가 본 책 중에 가장 큰 책이었다. 조선왕조의궤도 이보다 큰 책을 본 적이 없었다. 조선 초기 지리지의 신성함과 가치를 보여주는 산 증거라 할 것이다.


6.


조선시대 책의 크기와 무게는 단순한 물리적 속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그 책이 담고 있는 지식의 위상이자, 국가가 그 지식에 부여한 권위의 상징이었다.


『경상도지리지』가 20kg에 육박하는 거대한 책으로 만들어진 이유는 분명하다. 조선 초기, 지리지는 단순한 지역 정보가 아니라 국가 통치의 근간이었다. 팔도의 산천, 호구, 물산, 군사 시설을 기록한 지리지는 왕권의 영토적 확장과 행정적 장악을 가시화한 문서였다. 그래서 최고급 종이에, 최대한의 크기로, 최고의 장인이 만들었다. 무게 그 자체가 왕실 지식의 권위였다.


흥미로운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지리지의 크기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로 오면 지리지는 의궤보다 훨씬 작은, 컴팩트한 크기로 제작된다. 이는 단순한 제작 기술의 변화가 아니다. 지리 정보가 '왕만의 지식'에서 '사대부의 교양'으로, 나아가 '대중의 상식'으로 확산되었음을 의미한다.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것은 곧 지식이 보편화되었다는 뜻이다. 왕실 서고에서만 열람 가능했던 20kg의 지식이, 선비의 서재에서, 그리고 장시의 책방에서 유통되는 500g의 지식으로 변모한 것이다.


7.


이제는 전시 설명에서 자세히 그리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겠다.

"『경상도지리지』는 마에마 교사쿠가 『고선책보』에서 무게를 달 정도로 무거운 책이었습니다. 무게가 얼마였냐고요? 현재 단위로 약 20kg이었습니다. 이 무게는 조선이 지리 정보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물리적 증거입니다."


드디어 가려운 지식이 하나 해결되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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