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어제가 되고, 어제는 또 다른 과거가 된다. 전시 개막식을 치른 지 사흘이 지났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환한 조명과 사람들의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리는데, 시간은 무심하게도 앞으로만 간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적어 둔다.
기억은 원래 불완전하고, 나의 하루는 늘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2.
선생님은 본래 말씀이 많은 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명예교수의 자격으로 단상에 올라 축사를 시작하시는 순간, 선생님의 얼굴은 조금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1987년, 국내 최초로 ‘지리지’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 아무도 걷지 않던 학문의 길을 처음 개척한 이였다. 그 생소한 분야로 강단에 자리를 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홀로 싸움이 있었을지, 나는 나중에야 조금씩 귀동냥으로 들었다.
그런 분이 한 대학의 총장이 되고, 다시 명예교수가 되어 오늘의 전시 개막식에 서 계신다.
자신이 열어젖힌 학문의 영역을, 언젠가 본 적도 없던 후학이 이어받아 전시라는 형식으로 구현해 냈다는 그 사실. 그 순간 선생님의 눈빛은 말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조선 초기의 지리지부터 현대의 공간 사고까지 이어지는 지성사의 흐름을, 선생님은 누구보다 깊게 알고 계셨다. 그래서였을까. 평소 침착하던 그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떨림은 조용히 내 가슴에도 스며들었다.
3.
축사와 음악이 흐르고, 전시장 해설이 이어지는 동안
내 심장은 왜 그토록 빠르게 뛰었던가.
그날의 나는 내 몸을 온전히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긴장해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아는 얼굴이 보일 때마다 반가움과 긴장이 파도처럼 번갈아 밀려왔다.
말 한마디를 놓칠까 봐, 표정 하나가 예의에 어긋날까 봐, 어쩌면 누군가의 시간과 마음을 제대로 맞이하지 못할까 봐.
그래도 찾아온 한 사람 한 사람의 발걸음이 얼마나 귀하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4.
전시는 자연, 통계, 지도, 문학. 네 개의 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리지’라는 주제 자체가 텍스트의 무게감을 안고 있기에,
나는 그 무거움이 관람객에게 그대로 내려앉지 않도록 온 힘을 다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각 체험물을 만들었고,
청각장애인을 위해 교육 선생님이 수어 해설 영상을 촬영했다.
전시의 무게를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방식으로 덜어내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 내가 가장 깊게 매달렸던 부분—
바로 QR 코드였다.
유물마다 2개씩, 어른용과 어린이용 해설을 따로 만들었다.
예산 대신 나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 100여 개의 쇼츠 영상을 직접 제작했다.
‘노가다’라는 말로도 모자랄 만큼의 시간과 집중을 들였지만,
완성된 영상을 모아 놓고 보니 그 순간만큼은 참 뿌듯했다.
아마 이번 전시의 원고는 다른 전시보다 세 배는 더 썼을 것이다.
금세 흩어지는 콘텐츠라 도록에도 남지 않을 것이다.
전시가 끝나면 잊히겠지만,
내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어디엔가는,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오른손의 감각 어디엔가는 그 시간이 면역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좋다.
우연히 영상을 클릭한 어린아이가, 혹은 한가한 오후를 보내던 어른이,
잠시라도 지리지와 고지도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것이면 족하다.
5.
나는 서지학을 전공했지만,
책만 덩그러니 올려두고 관람객에게 해석을 강요하는 전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문으로 가득한 책을 누가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싶겠는가.
그래서 기를 쓰고 번역문을 옆에 붙였다.
전시장 미관이 조금 지저분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알아보려는 사람을 도와주는 전시’가
언제나 ‘보여주기 위한 전시’보다 낫다고 믿는다.
전시 1·2부를 지나면 수수께끼처럼 구성된 퀴즈가 나오고,
3·4부에서는 내용을 되짚을 수 있는 리마인드 영상을 배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우재 정수영의 《한임강명승도권》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아트를 선보였다.
작가와 협업해 만든 그 영상은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감각적 결론’ 같은 것이었다.
관람객이 그 앞에서 잠시 멍해졌다가
“아, 지리지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마음속으로라도 중얼거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6.
굳이 최신 연구 동향이나 박사 논문 수준의 지식을 강요할 이유는 없다.
사실 한국에서 지리지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는
양보경 선생님, 나, 그리고 이재두 선생님—
이 셋이면 족한, 아주 조용한 분야다.
그래서일까.
그럼에도 이 전시를 열 수 있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더할 수 없이 큰 감사였다.
단지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이 땅 어딘가에 남아 있는 오래된 기록을 들여다봐 주길 바랐을 뿐이다.
7.
이번 전시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책 전시는 과연 전시관이라는 공간에서 가능할까?”
책은 정적이고, 조용하고, 바람이 스치면 무심히 페이지가 넘어가는 존재다.
그런 물성이 과연 사람을 서 있게 만들고, 움직이게 하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그렇다.”
이다.
[후기]
양보경 선생님의 축사를 들으며 나는 문득,
돌아온 호로비츠가 옅은 미소로 연주하던 〈트로이메라이〉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한 음 한 음이 미세하게 떨리며 공기를 가르던 그 순간처럼,
선생님의 목소리도 전시장 안에서 잔잔히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떨림이, 오늘의 나를 어제로 이끌고
또 다른 시간으로 넘어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