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국밥을 먹으며 학회를 생각하다

by 낭만지리 굴비씨

1.


나는 편식이 심한 아이였다. 열몇 살까지도 쌀밥보다 고기를 찾았고, 새우만 봐도 두드러기가 날 정도였다. 그런데 사람은 세월을 겪으며 낯선 방향으로 변하곤 한다. 원해서가 아니라 며칠씩 굶다시피 하는 시간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새우를 먹게 되었다. 스물이 지나자 못 먹는 음식이 거의 사라졌고, 스물 후반에는 보신탕도 부르면 먹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알았다. 내가 아무거나 잘 먹게 된 이유가 ‘개방성’ 같은 멋진 말이 아니라, 세상에 적응하며 미각이 둔감해진 탓이라는 것을. 돼지국밥 역시 그중 하나다. 서울에서 자라 TV에서만 보던 음식이었는데, 대구가 내 집이 되자 자연스레 나의 한 끼가 되었다.


이제는 장모님이 시베리아에서 가져온 곰고기나 사슴고기까지 거리낌 없이 먹는다. 누군가 주면 그냥 먹는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슬쩍 스친다.


2.


얼마 전 동네에 돼지국밥집이 새로 생겼다. 사람들로 꽉 차 있고, 네이버 리뷰도 이상할 만큼 많다. 늦게까지 일하다가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국밥을 먹으러 갔다.


사실 나는 돼지국밥의 깊은 맛을 잘 모른다. 그저 따뜻하고 속이 편안해서 먹는다. 내 미각은 달고 짠 정도만 겨우 구분한다. 그런데 그 집에는 ‘세트메뉴’가 있었다. 맥주 한 잔을 붙여서 파는 메뉴였는데, 이름이 ‘짜그리’였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술이 약한 나는 그저 일주일의 나에게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처럼 국산 맥주를 시켰다. 짜그리가 뭔지 물었더니, 베트남 점원을 대신해 사장님이 볼을 붉히며 달려와 설명을 해주었다. 괜히 미안해졌다. 모른 채 넘어갈 걸 그랬다 싶기도 했다.


3.

국밥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는 중년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다. 뉴스라도 보며 천천히 시간을 보낼 뿐이다. 그런데 어제 보았던 그 뉴스가 오늘도 그대로였다. 이상할 것도 없지만, 그 순간 문득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AI 채팅을 켜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잊고 있던 일이 갑자기 먹구름처럼 떠올랐다. 한국고지도학회가 한국연구재단의 신생·소외학회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정산서와 결과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한 숟갈 뜨고, 한 모금 마시며, 나는 자연스레 고지도학회를 떠올렸다.

그리고 평소처럼 새우젓과 깍두기, 다진 마늘을 한꺼번에 국밥에 넣었다.

그렇게 먹다 보니, 이상하게도 오래된 기억들이 국물처럼 천천히 우러나왔다.


4.


나는 세상에 크게 자랑할 만한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한국고지도학회의 '초기멤버'이다.


2008년 2월, 지도교수님이 "지리학과 출신이니 관심이 있겠지" 하며 나를 어느 행사에 데려가셨다. 그곳이 바로 학회의 출발점이었다. 문화재청장까지 참석했던 그날, 지리·역사 분야의 연구자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던지, 학술대회가 이렇게 북적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모두의 얼굴 속에는 기대와 열정이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학회는 이후 몇 년을 반짝이다가 다시 가라앉고, 또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한국에서 고지도를 정식으로 가르치는 학부가 없었고, 대학원 졸업생도 전국에서 한 해 한 명 나올까 말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2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까지 ‘영원한 막내’로 학회를 지켜왔다. 17년 동안, 우리는 그렇게 묵묵히 버텼다.


5.


국밥을 뜨다 말고, 나는 AI에게 물었다.

“학회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AI가 제시한 첫 번째 답은 ‘사단법인화’였다.

나와 같은 결론이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사단법인화는 까다롭고 번거롭지만, 그만큼 학회에 힘을 준다. 우리는 이미 수백 편의 논문을 냈지만, 이제는 논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개론서, 방법론, 제대로 된 공저서들이 필요하다. 이런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10년이 걸릴지 모르니, 내가 50대 중반쯤에는 한 권쯤 세상에 나올지 모른다.

한국 고지도와 지리지는 한국과 해외를 합쳐 수천 점을 넘는다.


이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DB 구축'이 시급하다.

이것은 특정 기관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재를 만드는 일이다. 규장각만으로는 이제 한계가 있다.

언젠가는 해외 연구자와도 연대하고, 국제적 연구 생태계도 구축하고 싶다. 지금 우리에겐 돈도 사람도 부족하지만, 상상하는 일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 한국 고지도를 세계의 고지도학 위에서 설명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6.


나는 매년 한국연구재단의 신생·소외학회 지원사업에 학회 이름으로 지원서를 낸다. 사실은 나 혼자 몰래 내는 것이다. 지금까지 두 번 선정되었다. 그 덕분에 두 해 정도는 학술지 발행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오늘 내가 작성하는 보고서도, 작년에 합격한 사업의 결과보고서다.

학술지가 한 해 더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그저 고맙다.


돌아보면 다른 학회들과의 인연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나는 고지도를 사랑하게 되었고, 이 작은 학회를 고지도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임원으로서의 내 바람은 단순하다.


'내가 있는 동안 이 학회를 지켜내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놓는 것.'

그렇게 해야 미래의 누군가는 우리처럼 맨바닥에서 시작해 눈물을 흘리며 학회를 세우는 일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허기를 달래주듯,

우리의 작은 노력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든든한 기초가 되기를 바란다.


*국밥은 식었지만, 이 기억은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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