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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수 Nov 13. 2019

돈도 안 되는 글 왜 쓸까?


처음 TV에 나의 단막극을 올릴 때 이제 죽는 날까지 작가 선생님 소리 들어가며 잘 먹고 잘 사는 건 줄 알았다.

글이라는 게 쓰다 보면 술술 저절로 써지는 건 줄 알았다.

노트북과 함께 아메리카노 한잔만 있으면 완성되는 이미지,

그게 작가였으니까.

그때는 몰랐다.

글이라는 게 쓰면 쓸수록 점점 거대해지는 공포 풍선이라는 걸.

번번이 나에게 굴욕을 안겨주며 멘탈 쪽쪽 빨아먹는 자존감 뱀파이어라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글로 먹고사는 직업 작가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작가라는 단 두 글자의 이름 뒤에 가려진 치사하고 옹졸하고 사악한, 자기 파괴적인 악마의 속성을.

창작의 쾌감?

이건 주입식으로 만들어진 감정의 하나일뿐, 그저 어떤 안도감에 지나지 않는다.

나에게 맡겨진 임무를 매듭짓고 드디어 끝이라는 해방감에 의해서만 온전히 비롯되는 감정.


작가가 되고 싶지만 글 쓰는 건 너무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작가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작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릴 적부터 계속 글을 썼다.

일기를 썼고 독후감을 썼고 편지를 썼다.

작가라서 쓴 게 아니라 그냥 글 쓰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작가가 되면 더 이상 글쓰기가 일상이 아닌 목적과 수단이 되어버린다.

돈을 쫓다 보니 어느새 계산적이고 영악한 글만 쓰게 된 나를 발견한 순간,

문득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글을 써보기로 했다.

나의 일상을 적고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어릴 적부터 해오던 것, 일상의 글쓰기.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여야만 쓸 수 있는 내 삶의 궤적.

지금껏 용케 버티고 살아온 나에게 쓰는 일종의 헌사.

재미는 없지만 눈치 볼 필요도 없는, 잘 쓸 필요도 없는,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나 자신을 맡기면 되는 글.

일기를 썼고, 독후감을 썼고, 내가 수취인인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누구도 의뢰한 적 없는,

독자도 없고, 그래서 돈도 안 되는 글이지만,

차곡차곡 나오는 대로 나 자신을 한 장 두 장 채워나갔다.

  

글쓰기의 본질에 가까워지자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졌다.

내가 글쓰기를 두려워했던 이유.

그건 돈 되는 글만 쓰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글쓰기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는 진리를 뒤늦게 몸소 깨달은 것이다.

글쓰기가 나를 돌보고 위로하고 치료하고, 살아가게 했음을 그동안 나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 결과 나에게 글쓰기란 너무 괴로운 숙제이자 중노동이 되었고,

어느새 나는 글 한 줄 못 쓰는,

무늬만 작가,

과거의 내 글에 빌붙어 사는 구차하고 비겁한 백수가 되어갔다.


이제는 안다.

왜 글을 써야 하는지.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나의 문장들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글은 곧 나 자신이다.

내가 지나간 뒤 남겨지는 발자국이다.  

내가 쉬고 있는 숨결이며

내가 죽지 않고 여기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명백한 존재 증명.

그것이 바로 글이며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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