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야 할 때 투두 리스트를 써야 하는 이유
불안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불안하다는 감정의 실체는 도대체 뭘까? 쉬어야 하는데, 나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불안함은 불확실성에서 오는 거라고 한다. 즉 무언가를 알지 못하는 것에서 인간은 불안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제일 피하고 싶은 감정 중 하나가 바로 불안이다.
두 달여간 공들여 쓴 대본을 제작사에 보내고 휴식 중이다. 이제 내 손을 떠났으니 진득하게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고 스스로 다독여가며 책도 보고 운동도 하고 이렇게 자유로운 글도 쓰고 있다. 나름 내가 쉬는 방법이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은 불안함과 힘겨루기를 했다. 쉬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말이다.
우리는 매 순간 숨을 쉰다. 숨을 쉰다는 건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며 쉬는 것도 숨을 쉬듯 그렇게 자연스러워야 한다. 제대로 쉬지 못하면 일도 제대로 될 리 없다. 근데 일하고 난 뒤 나의 시간은 쉬는 게 아니라 솔직히 늘 버티는 느낌이었다. 글에 대한 반응이 너무 두려운 것이다. 쉬는 척하며 사실은 그 시간들을 버텼다. 쉬는 척하면 어느새 쉬게 된다고 착각하면서. 근데 그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다.
쉰다는 건 아무것도 안 하고 정말 숨만 쉬며 뒹굴거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사실 제대로 쉬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불안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가 쌓일 뿐이다. 불안함이 나를 옥죄여 온다면 그건 나의 시간들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니 일상을 좀 더 확실하게 눈에 보이도록 그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투두 리스트를 수첩에 적어보았다. 단순하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했다. 그게 일이어도 되고 아니어도 된다. 쉬는 동안엔 절대 일하지 않을 거라는 다짐조차 강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모닝 루틴부터 하나하나 적어나갔다.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어간다. 쉬어야 한다고 새벽 루틴까지 깰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작업 시간을 뺀 빈칸에 다른 무언가를 채워나가며 약간의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릿속에 그린 하루 일과를 글자로 꼼꼼히 옮겨 적었다. 그리고 이제 그걸 행동으로 옮길 차례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씻고 일기 쓰기와 독서를 한 뒤 작업실로 향했다. 관심 분야의 책을 골라 읽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이른 시간 우리의 뇌는 여러 모로 관대하다. 커피까지 더해지면 최고의 각성 상태를 만끽할 수 있다. 그 집중력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날씨가 좋으면 밖에 나가 조금 걷는다. 역시 책 중의 책은 산책이라는 말은 진리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뒤죽박죽이던 머릿속이 한층 명료해진다. 몸을 움직이면 단순해진다.
아이패드 그림 그리기도 시작했다. 그림으로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꾸준히 그리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어렵다. 빨리 잘 그리고 싶은 조급증과 욕심이 늘 문제다.
또 브런치에 다시 글을 써서 올려보기로 했다. 일하느라 잠시 일시 정지 상태로 방치해두었던 것들을 이렇듯 하나하나 다시 시도해보기로 했다.
가령 아침에 일어나 침대 정리하기, 이 닦고 물 마시기, 일기 쓰기, 서랍 한 칸 정리하기와 같은 구체적이고 부담이 적은 것부터 시작해보자. 원대한 꿈은 원대한 스트레스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투두 리스트를 쓰고 난 뒤 하루가 선명해졌다. 내가 한 일과 해야할 일들을 그때그때 확인할 수 있었다. 불안감 대신 작은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책상 위부터 깨끗이 정리하고 밖으로 나가 조금 걷도록 하자. 귀에 이어폰을 꽂고 말랑말랑한 노래도 들어보자. 바람결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계절이 바뀌듯 우리 마음도 슬그머니 바뀌어 간다.
걷다 보면 알게 된다. 눈앞에 내가 걸어야 할 길이 선명히 보이면 불안하지 않다는 걸. 길을 따라 내 발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처음 가보는 초행길이다. 그 불안한 걸음걸음에 투두 리스트는 안전한 내비게이션이 되어줄 것이다. 쉬어야 할 때일수록 더욱더 투두 리스트를 써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