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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수 Nov 18. 2019

첫 방송, 기적엔 기척이 없다

마음이 하늘로 붕 떠올랐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데

그 대본은 소위 말하는 필이 왔다.

여전히 드라마 작법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지만,

인물들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

적어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은 분명히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팔리는 대본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작가 교육원 합평 시간.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 대본을 심판대 위에 올렸다.

지적당할 부분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방송 중인 드라마도 재미없다고 욕먹으며 외면당하기 일쑤인데,

하물며 내 대본은 초고잖아.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도 있고.

무슨 말을 들어도 상처 받지 말자고, 담담히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 대본이 그 정도로 깨질 줄은,  

그 정도로 형편없다는 평을 들을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수업 시간에 작법에 대하여 공부할 때,

잘 쓰는 작가일수록 대본에 몽타주와 나레이션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시청자는 나레이션을 잘 듣지 않는다고.

나레이션 대신 장면이나 대사로 보여줄 수 있도록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새겨 들었다.

근데 워낙 작법에 관심이 없던 나는,

오직 나의 감에 의지해 대본을 쓰던 나는,

그 말을 숙지하지 못한 채 글을 쓴 것이다.

절대 작법을 무시해서가 아니었다. 작법은 아주 중요하다.

근데 난 작법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써지지가 않았다. 쓰는 게 재미없었다. 

그래서 그냥 꽂히는 대로,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썼다.

일단은 내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글을 쓸 때 나의 제1원칙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과한 부분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나레이션의 과잉.


당시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일본 드라마에 열광했다.

일본 드라마를 조금이라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나레이션이 얼마나 많은지.

무슨 법칙처럼 일본 드라마에는 나레이션이 빠지지 않는다.

근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일단 멋져 보였고, 있어 보였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쓰고 싶었다.  

그 결과 나레이션으로 범벅되고, 몽타주는 콤보요, 설명 많고, 대본 분량은 한참이나 오버된 대본이 되어 버렸다.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뼈 때리는 혹평으로 내게 돌아왔다.


그날 정신없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르게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나는 멍해있었다.

온몸에 힘이 다 빠졌고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말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한 기분이었다.

난생처음 쥐구멍을 찾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그 뒤 다시는 그 대본을 꺼내보지 않았다.

꼴도 보기 싫었다.


이제 내년이면 서른.

이십 대가 끝나가고 있었고,

서른까지만 해보겠다는 나와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했다.

이제는 조급하다 못해 황망했다.

나의 모자란 능력을 최대한 객관화하고 냉정하게 바라본다는 건 뼈 저린 법이었다.

창밖으로 마지막 잎새가 언뜻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어느새 공모 철이 다가오고 있었다.

공책 위에 정리를 해봤다. 어떤 대본을 공모전에 낼 것인지 고민했다.

일단 내가 써놓은 단막극 제목을 하나하나 펜으로 적어봤다.

네다섯 개 정도였다.

자체 검열을 시작했다. 무엇을 내고 무엇을 뺄 것인지.

어려웠다. 다 자식 같은 내 작품이었으니까.

그러나 유독 하나, 그 하나는 눈엣 가시였다.

바로 수업 때 혹평과 함께 나를 장렬하게 전사시킨 그 녀석.

잠시 난 녀석을 노려보듯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때의 상처가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과감하게 펜을 든 나는 녀석을 베었다. 인정사정없이.

힘을 주어 꾹꾹 엑스표를 몇 번이고 계속 덧그었다.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쾅쾅 대못을 박았다.

작별인사 하나 없이 검은 펜 자국과 함께 녀석의 형체는 서서히 지워져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녀석은 내게 사망선고를 받았다.

녀석을 낳을 땐 그렇게 힘들더니

죽이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게 처음부터 제대로 된 잘 난 놈을 낳았어야지. 이게 뭐야.  

자책했고 후회했다. 이 녀석을 낳은 내가.. 한심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울었을까?

아니, 절대. 네버.

오히려 속까지 후련했다. 앓던 이를 빼버린 것처럼.

울고 있던 건 녀석의 바로 옆에 놓여있던 내 전화기였다.

나는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 전화는 나에게 온 첫 번째 기적이었다.

동시에 녀석에게는 기사회생의 동아줄이었다.




"*** 드라마국 피디입니다. ***작가님이시죠?"

"... 네.."

"*** 작품 잘 읽었습니다. 방송을 하려고 하는데요, 그전에 만나서 수정 얘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어느 날 우연히 나의 단막극 대본을 보신 방송사 감독님이 전화를 주셨다.

나는 너무 갑작스러워 계속 어리둥절한 상태로 미팅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동안 멍해있었다.

너무 현실감이 없었다.

믿을 수가 없어서 간신히 숨만 몰아 쉬며 꼼짝하지 못했다.

뭐지? 꿈인가?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상황을 꿈꿔봤을 것이다.

나 역시 수도 없이 오매불망 이런 날이 오길 바라고 소원했다.

그런데 이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되는 기적을 체험하고 기뻐 팔짝팔짝 뛰어도 모자랄 판에 내 머릿속은 조금 복잡해졌다.

도무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이유는 바로 감독님의 간택을 받은 그 대본 때문이었다.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래서 제목을 확인하듯 재차 물어봤던 것 같다. 그 대본이 맞는지.  

나의 눈은 한동안 공책 위 어딘가에 고정돼 있었다.

방금 전 내가 볼펜으로 검은 칠을 하며 기어이 사망선고를 내린 그 대본.

다시는 세상 빛을 보지 못하게 하리라 굳게 다짐했던 그 대본.

최악의 합평을 받고 나를 수치심으로 바닥까지 끌고 내려갔던 그 대본.

다름 아닌 그 대본으로 방송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이거야말로 드라마가 아닌가!

많이 혼란스러웠지만 기뻤다. 마땅한 표현을 찾기 어려울 만큼 황홀했다.

나의 얼굴에서 한동안 사라져 볼 수 없었던 미소가 조금씩 다시 번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나는 드라마 작가가 될 거라고. 이제 곧 나의 작품이 방송될 거라고.

담담하고 담백하게. 마치 수줍은 고백을 하듯.

마음은 금방이라도 하늘을 날 것 같았다.


감독님과의 미팅은 방송사에서 이루어졌다.

예능국이 아닌 드라마국에 작가로서 첫발을 들인 역사적인 날이었다.  

감독님은 몇 가지 수정 사항을 체크해주셨고 방송 예정일을 말씀해주셨다.

놀라웠던 건 내가 그 대본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여겼던 나레이션과 몽타주에 대한 그 어떤 언급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긴, 그 부분을 문제 삼으면 그 대본은 정체성을 잃고 만다.

역시 보는 눈은 사람마다 제각각.

뭐든 임자를 만나야 제 몫을 하고 비로소 날개를 달 수 있음을 깨달았다.

또 그래서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도.

어쨌든 대본 수정은 오버된 분량을 줄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미팅을 마치고 방송사를 나오는데, 그제야 조금 실감이 났다.

그러자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쩌지? 이 기회가 갑자기 사라져 버릴까 봐 지레 겁이 났다.

그래서 교육원 수업에 가서도 친한 동기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괜한 입방정을 떨었다가 나중에 잘 안 되기라도 하면 그보다 더 비참한 건 없을 것 같았다.


이후 대본 수정에 몰두했다.

거의 가능한 모든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냈다. 그런데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TV에서 내가 쓴 드라마를 보게 될 날을 상상하면 정말 안 먹어도 배가 부를 만큼 행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최선을 다해 마지막 수정고를 넘겼다.

극본에 나의 이름이 적힌, 첫 대본을 받아 들었을 때의 그 감동이란...

그 기분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종이 냄새부터 너무나 향기로웠다.   

그리고 일이 되려니까 일사천리로 술술 잘 풀렸다.

얼마 뒤 나의 첫 드라마는 예정보다 더 앞당겨 방송이 되었다.

근데 방송을 보는 게 즐겁고 편치만은 않았다.

내가 쓴 대사가 배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솔직히 좀 부끄러웠다. 부족한 부분만 보였고, 끝날 때까지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무사히 방송은 끝이 났고, 여기저기서 입봉 축하 인사를 받았다.

집에서도 더 이상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글 쓰는 작가로 인정받은 느낌.. 그동안의 내 노력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빨강 머리 앤이 말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는 거니까.

기적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나의 나이 서른이었다.

서른 살까지만 해보자던 나와의 치기 어린 약속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더 이상 이 길을 의심하지 않겠다고. 그저 열심히 나의 글을 쓰며 뚜벅뚜벅 앞을 향해 걸어 나가겠다고.

봄이었다.

여의도에 벚꽃이 만개했고, 나에게도 희망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찾아온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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