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눈을 뜬 순간, 깨달음이 찾아왔다
꿈과 목표가 생기면 바빠진다. 하루가 너무 짧고 잠자는 시간도 아깝다.
그때 내가 그랬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늘 시간이 부족했다. 다시 수험생이 된 기분이었다.
물론 남들 보기엔 하루 종일 집에서 백수 놀이하는 걸로 보였겠지만 내 삶에 있어 가장 성실한 시간들이었다.
드라마 공부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드라마 대본을 찾아 읽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방송사에서 일주일에 한편씩 단막극을 방송하고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방송을 보았고, 구할 수 있는 대본은 닥치는 대로 찾아 읽고 또 읽었다.
작법 책은 굳이 사서 보지 않았다. 서점과 도서관에 가서 한번 훑어보았다.
그런데 수학공식처럼 쓰여있는 작법이라는 것이 내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초조했다. 조급했고, 솔직히 대본 읽는 시간도 아까웠다.
마음은 벌써 작가계의 거장이 되어 있었으니까.
그냥 빨리 대본을 쓰고 싶었다. 내 대본이 너무너무 갖고 싶었다.
그래서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곧바로 대본을 쭉쭉 써재꼈다.
글에 대한 갈증을 해소라도 하듯 말 그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쓰기 바빴다.
물론 되도 않는 쓰레기였다. 그리고 그때는, 그게 쓰레기인 줄, 그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냥 내 이름 석자가 쓰여있는 대본 표지만 보아도 뿌듯하고 흡족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다음으로 한 일이 바로 드라마 작가 교육원 수강신청이었다.
그곳에 가면 답이 있을 것 같아서..
드라마 작가가 되는 지름길을 친절하게 가르쳐줄 것 같아서..
어느 정도 기대에 부풀었다.
착각이었다.
원래 글쓰기에 지름길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철저히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 외롭고 처절한 시간을 버티는 사람만이 하나의 완성된 대본을 완성할 수 있고,
또 그 대본이 운명처럼 세상에 나와 시청자를 만났을 때,
비로소 드라마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1년 정도 서른 명 남짓 되는 수강생들과 함께 작가 선생님과 피디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
과제로 제출한 대본을 서로 읽고 합평도 했다.
내가 쓴 대본에 대한 따가운 혹평을 듣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의욕이 떨어지고 위축됐다.
수정에 도움이 되는 조언은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했다.
그런데 가끔 숨 막히는 그런 기분.
절박함이랄까?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찬 눈빛들, 공감과 위로, 그리고 동지애만큼이나
그 속엔 그곳만의 견제와 긴장감이 늘 무겁게 감돌고 있었다.
근데 그 역시 나쁘지 않았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다시 학생이 되어 수업을 듣는다는 것만으로
굉장히 신선한 자극이 되었으니까.
과제 때문에 억지로라도 대본을 써야 했고, 그 강제성도 꽤 도움이 되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 없었다면,
그 시절을 다시 온전히 즐기고 싶을 만큼 돌이켜 보면 좋은 추억이자 값진 경험이었다.
문제는 나의 지나친 조급증에 있었다.
그때 난 부모님께 드라마를 쓰겠다는 얘기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확신과 자뻑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글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자 자기 최면이었을 뿐,
실제로 난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파도 위였다.
나조차 나의 모습이 대책 없이 무모했고, 찌질하다 못해 한심했다.
되도록 무언가 성과가 있을 때, 그때 당당히 얘기하고 싶었다. 나의 꿈과 계획에 대하여...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멘탈이 흔들렸다.
끝을 알 수 없다는 게 정말 무서웠다.
나에게 작가적 재능이 있는 걸까?
언제까지 이렇게 노트북 앞 좀비로 살아야 하는 걸까? 되긴 될까?
끊임없이 나를 의심했고, 답도 없는 질문들을 하고 또 해댔다.
습작한 지 1~2년.
드디어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방송사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했다.
그리고 얼마 뒤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귀하의 작품은 1차 심사에 통과하여 2차 심사 중에 있습니다"
처음으로 받아 든 나의 성적표.
결과는 낙선이었다.
당선된 작품들을 찾아 열심히 읽었다.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잘 쓴 작품이 공모전에 떨어질 수는 있지만, 당선된 작품은 모두 다 잘 쓴 작품이다.
맞는 말이다.
일부러 흠을 잡아 보려 해도 그건 그저 패배자의 정신승리, 자기 위안일 뿐,
당선된 작품은 당선이 될 수밖에 없는 분명한 한 방을 가지고 있었다.
절치부심, 다시 글을 써야 했다.
기존에 나의 발상은 참으로 단순했다.
뭔가 떠올랐을 때, 어? 재밌겠네? 그럼 일단 그냥 썼다.
순전히 감만 믿고 썼다. 무식하고 무모한 막무가내 정신으로.
그런데 이제 공모전 당선이라는 거대한 목표 의식을 가지게 되니
아이템 선정에서부터 신중해졌다.
당선 대본을 읽고 나름 분석을 한 뒤 공모용 아이템을 찾았다.
진정성 있는 인물, 주제 의식이 살아있고 마지막까지 깊은 울림이 남아있는 작품.
그래, 누가 봐도 그럴듯한 '작품'을 써야지.
상당한 부담감이 나의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대본이 하나 완성되었다.
나름 무게감 있는 휴먼 가족극.
근데 대본을 보며 며칠을 고민했다.
너무 재미가 없어서.
솔직히 기계적으로 썼다. 계속 그만 쓰고 싶었다.
하지만 끈기를 가지고 썼다. 처음으로 작품성을 고민하며 쓴 그야말로 '작품'이었으니까.
근데 완성된 그 '작품'은 다신 맛보고 싶지 않은 아주 떫은 감이었다.
과연 뭐가 문제일까?
내가 찾은 답은 이거였다.
재미.
바로 그 재미의 부재가 문제였다.
드라마는 재미가 없으면 가차 없이 채널이 돌아가버린다.
어떻게든 끝까지 보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은 재미에서 나온다.
그런데 어리석게 나는 그 부분을 간과했던 것이다.
욕심과 허영으로 가득 찬 나의 '작품'을 조용히 컴퓨터 하드 구석에 처박듯 넣어두고,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공모용 아이템을 찾지 않겠다고.
다시 말하지만 공모용 아이템은 따로 없다.
재미있고 좋은 대본을 쓰면 당선이 따라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첫걸음을 뗀 기분이었다.
시간은 쏜살같았고 달력은 속절없이 넘어갔다.
대본을 몇 개 완성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누구도 강요한 적 없는, 순전히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절벽이 나타나도 지뢰가 터져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꿈을 위해 나를 하얗게 불태우며 돌진한 만큼,
고민과 갈등이 수시로 나를 덮쳤고 뼈아픈 열패감에 시달렸다.
결국 나는 고민 끝에 결심했다.
데드라인을 정하기로.
서른 살.
딱 그때까지만 해보자!
그렇게 나와 단단히 약속을 했다.
겨우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알았다. 꿈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나는 제대로 독해졌다.
일주일에 한 번 교육원에 가는 것 외에는 외부와 거의 담을 쌓고 살았다.
오로지 습작에만 몰두했다.
흔들릴 때마다 나와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누구에게나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 있다. 그 시절이 나에겐 그렇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힘들어서 아프다.
그러나 그때가 내 삶의 최고 자부심임을,
결코 나를 방치한 시간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나면 조금은 다르게 아플 수 있다.
조금은 특별하게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