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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Apr 30. 2023

당신이 'Ugly Korean'이라고 불리는 이유

화 좀 삭혀요, 그만 속여요, 가오 버려요. 뭐 돼요?

고백하건대, 나도 이십 대까지는 훠킹 레이시스트였을지도 모른다. 괜히 흑인을 보면 쫄고, 동남아는 못 산다는 인식이 있었고, 백인은 왠지 모르게 멋있고 등등, 그냥 뇌를 비우고 살았다. 


그렇다고 요즘의 뇌가 후레시하고 건강한가? 그렇지도 않다. 그냥 보통의 상식을 가지기를 바라는 우매한 인간에 불과하다. 딱히 PC적인 것을 지향하지 않아도 이제는 안다. 피부 컬러를 너무 의식하지 않는 것이 좋고, 동남아에는 어떤 나라가 어느 위치에 있고 어떤 문화와 배경이 있으며, 백인 중에도 멋있는 사람과 멍청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사실 이것은 편견에 입각한 사고들이 필요 이상의 정보를 뇌 속으로 들여보낼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하는 것인데, 정보찾기가 참 좋아진 요즘 세상에서는 관심만 두면 금방 제대로 된 정보를 알 수 있으니, 이제 이러한 편견은 죄악이라기보다는 게으름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게으름도 죄악이라고 부른다면 할 말은 없다.


알면 되고,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을 과하게 비난할 필요도 없다. 사실 나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듯이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우리를 상상도 못한 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으니까. 


우리 스스로도 종종 인정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한반도 '전투민족' 기질일 것이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육 교재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한국인 종특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빨리빨리'일 것인데, 나는 사실 전투기질이 이에 버금가는 종특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나는 일반화를 참 우려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지만 웃자고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는 일반화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다. 


사실 근거는 있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의 적지 않은 수가 이 한국인의 '전투력'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을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항상 화가 난 것 같아요. 어제 다른 선생님이 저에게 화를 냈어요."

"그러니까 숙제는 항상 일찍 냈어야지요."


"제가 지난번에 어떤 한국 사람이 빡친 것을 봤어요."

"빡치다, 이 말 어디에서 배웠어요?"


가게 사장님, 옆 테이블의 손님, 또 그 옆에서 시비걸었던 손님들, 어학당 선생님, 한국 올 때 비행기를 탔을 때 옆자리 아주머니 등 그들은 수많은 빡친 한국인들에게 노출되어 있었다. 물론 친절한 한국 사람을 경험한 경우가 상당 수였지만, 그들 말로는 친절하면서도 빡쳐있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츤데레인가...? 이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인 친구가 자신을 걱정해 줄 때도 빡쳐하면서 걱정한다는 것이었다. '어우 정말 왜 그랬어? 진짜 걔는 왜 그러는 거야?' 한국식 빡공감대 형성법.


사실 누구라도 손해보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겠지만, 해외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 손해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이 겉으로 망설임없이 표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형화하기는 조금 어렵고, 사례별로 정리를 해 봤다. '분노조절못해'도 있지만 기타 등등 이상한 경우도 있었다. 




1. 화려한 가오가 내몸을 감싸네


커플은 쏨땀집에서 거하게 먹고 돈을 내려는데 가격이 맞지 않아서 점원과 실랑이를 하는 중이었다. 여자는 연신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 가격이 아니라고 하고 남자는 영어로 또박또박 설명을 하다 말이 안 통했는지 답답해했다. 남자는 처음에는 액션이 과하지 않았는데, 여자가 점점 언성이 높아지려 하자 오히려 남자가 목소리를 같이 올리면서 똑같은 부분을 지적하며 항의했다. 태국에서 가게 쪽에서 일부러 관광객을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도 있고, 단순 계산 실수도 정말 심심치 않게 있어서 나는 누구 잘못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태국 사람들을 상대로 소리지르는 것만큼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기에 말릴까 말까 고민을 했다. 


내가 계산하려고 나가기 위해 옆에서 슬쩍 봤으나 누구쪽의 잘못인지는 결국 알지 못했다. 결국 가게 쪽에서 원하는 돈을 거슬러줬는지 커플은 받고 나갔다. 나가면서 한다는 말이


"결국 뭐라고 해야 해준다니까, 이 나라는."


라며 승리를 자축했다. 한국인은 어떠한 사안을 '전투'로 인식하는 순간 이렇게 마인드가 바뀐다는 것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분명 그들도 가게 들어왔을 때는 참으로 순수했을 텐데. 그리고 전투로 바뀌고 나서 비춰지는 묘한 권위의식이 나를 소름돋게 했다. 권리 찾는 것은 당연하다지만 도대체 그 이상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


뭐, 사실 제일 소름돋는 것은 그들이 계산한 것과 비교했을 때 내가 쳐먹은 값이 더 나왔다는 점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꿀꿀.




2. How dare...!

작년에 잠깐 태국으로 여행을 갈 때였다. 여행이라고는 말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고향 잠깐 다녀오는 그런 느낌도 없잖아 들었다. 이제는 그 넓디 넓은 수완나품 공항도 익숙하다. 


아무튼 환승 때문에 수완나품에서 직원들을 따라 쫄래쫄래 긴 통로를 이동하던 참이었다. 나랑 태국인&덴마크 커플, 그리고 잔뜩 화가 난 한국인 여자 한 명이었다. 나보다는 살짝 나이가 있어보이는 여자였는데, 환승하는 내내 불평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긴 시간 이동해 간 곳에는 딱히 앉을 곳도 없어서 서서 차례대로 여권을 준비해 환승 절차를 밟고 있었는데, 이 여자분은 왜 여권을 내야 하냐며 따졌다. 뭔가 잔뜩 불신 가득한 얼굴로 지상직 승무원을 째려보며 마지못해 여권을 줬다. 


물론, 그분만의 빡침사유가 분명 있었겠지만, 그게 그렇게 화낼 이유인가 싶기도 했다. 물론 우리가 조금 길게 걸어 오고 몇 십분 기다린 것도 있긴 했지만 저가 항공이 뭐 그러려니 싶다. 아니면 과거에 그분은 여권을 잃어버린 적이 있어 트라우마가 씨게 남은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참 너무하다 싶었다. 직원들은 최대한 사정을 설명하는데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왜 내 여권이 필요하냐며 되묻고 따지는 저분은 도대체 여기 오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길래 빡쳐있던 걸까. 뭐 여담이지만, 태국 사람들은 화내고 소리지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자기들끼리도 앵간한 일이 아닌 이상 절대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이런 태국 사람들에게 저런 태도는 오히려 반감을 사 앙갚음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태국에서는 부당한 일이 생길 경우에 웃으면서 빡치도록 하며 분노조절을 잘하도록 하자. 




3.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돕고 살아야죠. 그래서 얼마나 도와줄 수 있어요?


이건 내 친구 두 놈이 겪은 일이다. 꽤 오래 전 둘은 일뽕에 정점을 찍으며 일본 여행을 감행하기로 한다. 며칠은 럭셔리 여관에서 료칸 풀코스를 즐기기 위해 다른 며칠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싼 곳을 잡았는데, 그게 당시에 악명 높았던 츠루하시 역(鶴橋駅) 인근이었다. 우리나라에도 험하고 허슬한 동네는 종종 '마계 OO, OO 안드레스' 등의 칭호가 붙곤 하는데 아마 그쯤되는 동네인 듯하다. 한인타운으로 유명하지만 오사카에서는 빈민가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당연히 가난한 여행자들에게 솔깃한 가격을 제시하지만, 막상 동네에 들어서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일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고 한다. 고성방가에 싸우는 소리, 거리에는 쓰레기와 부랑자들.


아무튼 그들은 새벽까지 각종 소음이 끊이질 않고 방안은 어수선한 이 숙소에서 탈출하여 다른 숙소로 옮기려고 도망치듯 나오고 있었는데, 어떤 한인 여행객 커플들이 자기네들이 돈이 없다며 1000엔만 빌려달라고 했더랬다. 사실 만 원 좀 넘는 돈이 어찌보면 얼마나 큰 돈이겠냐 싶지만, 피차 여행하러 온 입장에서 이건 그냥 삥을 뜯는 거나 다름없다. 뭔가 딱한 사정을 자초지종 설명하는 것도 아니었고, 정말 당연하다는 듯이 "한국분이시죠?"하고 말 걸어오는 것이 너무나 괴씸했다고 한다. 큰 액수를 빌려달랬다면 정말 강도라도 당했나 싶겠다만 이건 뭐... 문제는 거절하면 오히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낸다는 것이다. 대체 나한테 왜 이래요... 모욕감이라도 줬습니까, 코리언?


치앙마이에서는 자주 없었지만 나도 해외에서 한인끼리 등쳐먹는 사례를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해서 그런지 내가 두려웠던 멘트는 이해 안 되는 수만 가지 외국어 문장이 아니라 또렷하게 귀에 박히는 "혹시, 한국분이세요?"였다. 서울 한복판에서는 쳐다도 안 볼 양반들이 해외에만 나오면 동포! 동포를 외친다. 한인회 같은 활동을 전혀 안 했던 나에게조차 들려오는 소식들 중 안 좋은 쪽을 추려 보면 한인들끼리 부동산 사기를 치다가 걸리거나, 한탕에 성공해서 라오스나 필리핀 등지로 런을 쳐버리는 사례들이었다. 그런 거에 왜 속냐 싶지만 나와 있으면 외로움이 기본 패시브로 탑재되어 있기 때문에, 또한 정보는 한정적이고 아는 인맥은 좁기 때문에 쉽게 당한다. 때론 남보다 못한 가족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죠? 차무식이 행님?


 




분노, 기만, 가오.


사실 이중에서 분노만 잘 참아도 반은 간다. 화내지 말고 이성적으로. 나머지는 뭐... 모르겠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양반들은 곧 죽어도 구라친다는 얘기가 있고, 가오가 몸을 지배한 사람들은 특정 계기가 없으면 잘 낫지도 않는다. 하지만 분노는 스스로 노력하면 분명 효과가 나오니까 잘 참아 보도록 하자. 명상을 하든, 책을 읽든, 자기 전에 핸디크래프팅 ASMR 들으면서 차분히 잠에 들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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