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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Apr 23. 2023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

시대를 관통하는 가불기

최근 웃프게 유행했던 '해병 문학' 밈을 보면 온갖 부조리들이 풍자되고 있는데, 누구나 알듯 이는 해병대의 기수 문화에 기인한 것이다. 요즘에는 개그맨 박경호 씨가 이것을 개그로 승화시켜 관객 중에 해병대 출신과도 경례를 하는 영상 클립이 올라오는데, 일반인은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이 기수 문화가 그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장난이 아닌 것을 보면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 곳곳에는 기수 문화가 뿌리 박혀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뭐, 그래도 박경호 씨는 참 재밌다. 


기수 문화가 비단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곰이 아니라 곰처럼 일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기수 문화가 아닐까 싶다. 나는 대학 시절 과지 편집부였고, 얼마 전에 친했던 동기와 오랜만에 만나 얘기하던 도중 그 얘기가 나왔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딱 한두 살 차이나는 1, 2학년 선후배 사이에서 깍듯하게 예의차리고, 일 처리 과정 보고하고 같이 밤새워 오타 잡아가며 책 만드는 와중에 꼰대부리는 상황도 적잖아 있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머리가 덜 커서 그랬는지 단체로 가스라이팅을 당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재미있었다. 과업을 '함께'한다는 재미가 있었고, 사명감도 있었다. 요즘 세태와 비교해보면 정말 꼰꼰스러운 문화이다. 


우리가 그 시절 두려워 했던 단어는 '고학번 선배'였다. 그들은 우리가 고딩 찌랭이 시절에 이미 훌륭한 글을 뽑아내어 책 하나를 찍어냈기에 당시에는 뭐하나 책잡힐까 봐 조심했던 것 같다. 꼰대에 정석을 보이는 선배도 있었고, 진심으로 위해주는 좋은 선배도 있었다. 그렇게 교류하다 보면 꼭 나오는 말이 이 글의 제목과 같은 종류의 평가였다. '요즘 애들은...'


기수 문화가 생긴 이유는 '전통 유지'가 아닐까 싶다. 창설된 처음부터 어떤 가치와 과업이 전해질 때는 반드시 변형되기 마련이고 첨가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이것이 정말 가치있는 것이라면 최대한 변형되지 않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들 생각하기 때문에 리스풱~ 이 생기고 없던 군기도 생기는 것이다. 같은 기수 중에 인간 같지도 않은 이들이 편승해서 대접 받는 경우만 덜어내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하는 문화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요즘 애들'이 사회 곳곳에서 시원하게 말아먹고 있는 것 같다. 나도 그 '요즘 애들'의 하나라면 하나겠지만 나는 이 옛날과 요즘의 점이 지대에서 혼란해 하기만 하다가 나이를 먹어버렸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예전 수메르 점토판에서도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다.'라는 문구가 나왔다고 하여 전세계 보편적인 꼰대사로 사람들이 미는 것 같은데, 솔직히 이것은 출처를 알 수 없어 조심스럽다. 굳이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서구권 영화에서 이런 대사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젊은 세대와 구 세대의 신경전 내지 갈등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학교 때는 FM이라고 하여 학교 구호와 자신의 소속 이름을 외치는 것이 있었다. 상당히 꼰스러운 문화인데, 나는 태국 대학교에 재직 당시 이 옛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는 것을 자주 봤다. 


신학기가 시작되면 태국의 대학생들은 잔디 밭에 모여 2학년 선배들을 따라 과 구호를 연습한다. 이를 '랍 넝'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태국어 뜻과 표기는 모르겠다. 추측하건대 '후배를 받는다' 즉, '신입생을 받는다'는 것으로 혼자 멋대로 해석하고 있다. 


'랍넝'은 일종의 1학년 신입생 신고식이다. 내가 일했던 곳은 산과 인접해 있는 곳이어서 전교생이 과 별로 학과 깃발을 들고 가장 가까운 산을 걸어서 올라간다. 차로 30분을 가야하는 가파른 고갯길을 하루종일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 탈진하는 학생도 생긴다. 산행이 뭐 대수냐고 생각할까 봐 다시 말하지만 30도 이상 거뜬히 올라가고 습하디 습한 태국이다. 

아까 말한 저 구호와 노래들은 올라가면서, 그리고 도착했을 때 해야 하는 구호이기 때문에 모두가 연습한다. 연습도 참 빡세다. 뙤약볕에서 연습하고, 그늘에서 좀 쉬었다가, 또 나가서 연습한다. 그리고 산 타러 간다니. 어떤 면에서는 한국 대학교 신입생 오티보다 빡세다. 


그러다 코로나가 들이닥치고 랍넝을 1~2년을 쉬게 된다. 그런 여파가 겹치면서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대사를 듣게 된다. '선생님, 요즘 1학년들 이상해요.', '요즘 2학년들이 말을 안 들어요.'

그들이 재학생 때 당연히 했던 것을 요즘 애들은 '이걸 왜?'라고 거부한다는 것이다. 나는 애들이 마냥 착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그들 사이에서도 세대 갈등이 있었다. 급기야 섹션장(우리나라의 과대표라고 생각하면 된다.) 끼리만 겨우 소통하고 학년끼리 쌩까는 경우도 생겨버렸다. 


사실 애들 싸움에 뭔 걱정이냐고 생각하겠지만, 각종 한국어과 행사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 아이들의 서포트는 정말 소중하다. 애들이 참여 안 하면 아무리 뛰고 날아봤자 소용없다. 그런 애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앉아 있으면 정말 민망할 따름이다. 어떤 의미로는 위기다. 


이런 것은 차치하고, 애들끼리 갈등을 보고 있자니 내가 대학교 신입생, 2학년, 복학생 때 봤던 수많은 갈등과 과내 정치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당시에는 진지했고, 지금에 와서 '그땐 어렸으니까'하면서 가치를 내릴 생각도 별로 없다. 나는 갈등도 존중한다. 다만 신기할 뿐이다. 어쩌면 인류 역사가 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요즘 것들' 대사. 


구시대의 가치관을 계속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게 '폐습'일 경우에는 지당하다. 나는 잘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문화 중에 하나가 '술 강요'다. 이야말로 '폐습'의 끝판왕이다. 같이 술먹고 즐기는 것을 떠나서 사람 하나 골로 보내는 구시대 가치관. 


그래도 옛날 사람들의 가치관은 무조건 구리다고 버리는 아이들을 보면 좀 야속하다는 생각도 든다. 까보면 수억 원의 가치가 있는 화석이나 보석이 박혀있는 원석인데 '에이, 못 먹는 거잖아.'하면서 갖다 버리는 느낌마저 든다. 무조건적 반사로 거부할 거면 새로운 좋은 것이라도 만들어야 하는데, 내가 볼 때는 소비만 하다 산화되어 버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사람은 늘 '독립'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는 것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 설교는 잘 하면서 설교 듣기를 싫어한다. 이 이중적인 꼰스러움에 스스로 질문한다. '네가 뭐 돼?' 글쎄다. 혹시나 나도 무조건적인 반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나 역시 '옛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생각이 든다. 좋은 것은 그래도 꾸역꾸역 먹어 보려는 시도는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도 생각한다. 신세대에게 똥은 주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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