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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Sep 24. 2023

게으른 자 쓰지도 말라

사실 쓰고 싶었다, 뭐든

'문학병'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흔히들 말하는 중2병이 정말로 정확한 시기에 찾아 온 것이었다. 나는 그때 "해변의 카프카"를 탐독하고는 문화와 예술적 충격에 마음이 콩닥콩닥했다. 

지금이야 하루키의 작품을 끊은지 오래였지만 나는 그때 이후로 하루키의 초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책의 작가 소개란을 보고는 목표가 생겼다. 그는 동경대 국문학을 졸업하고 회사 생활을 하다가 문득 33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꼭 이것 때문에 국문학도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국문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문학병에 제대로 빠져서 등단 빼고 이런 저런 활동을 했다. 대학원은 상관없는 전공을 택했지만 박사 선배가 사람 부족하다고 현대문학 세미나에 끌려가기도 했다. 겉으로는 싫다고 난리 부르스를 췄지만 속으로는 들끓는 문학 토론을 다시 맛본다는 사실에 내심 기쁘기도 했다. 대학교 3, 4학년 때 문학 수업 위주로만 골라서 듣던 나였기에.


나의 목표는 항상 달성 진행 중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젠 그러지도 못한다. 첫 글을 쓰기 시작한 33살 하루키에게는 "야, 형이라고 해 봐."라고 할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주변에는 글쟁이다 어떻다, 그게 꿈이다 어떻다 술먹고 나불대다가, 그것도 어느샌가 사라지면서 그냥 삶에 찌든 이야기나 하다가 집가서 발닦고 자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혹자는 게으름의 문제라고 했다. 어떤 후배는 하루의 한 장씩 꼭 문학적인 글을 쓰곤 했다. 그것이 거의 연재 소설마냥 아주아주 빡세고 고된 작업임을 알고 나는 혀를 내둘렀다. 아이고, 내는 몬한다. 그 아이는 꽤나 오랜 기간 그것을 해낸 걸로 기억한다. 그걸 나와 같은 자리에서 감탄하던 친구는 지금 현업으로 웹소설 작가로 뛰고 있다. 건너 듣기로는 하루종일 엉덩이를 붙이고 일어나질 못한다고 한다. 


글을 쓰던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소재와 게으름이었다. 번뜩이는 소재도 나이가 들면서 진부해지고, 누군가가 잘 만들어서 넷플에 뿌리고 있었다. 소재와 상관없이 내 맘대로 쓰겠다며 시작한 이런 글들도 게으름에서 막혔다. 나는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여기에 글을 썼는지도 곱씹어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기에는 현생 살기가 너무 바쁘다고 변명을 해 본다. 


좋아하는 것은 업으로 삼지 말래서 전업 작가가 안 된 것은 아니다. 역량 부족이고 노력 부족이다. 내가 좀만 발악했다면 되긴 됐을 것이다. 내가 이십 후반이 들어 하루키가 질렸던 이유가 이거였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몽환적인 부분이 걷히고 나면 남는 것은 무기력한 인물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들이 현실에 순응하거나, 힘겹게 무언가 손을 뻗어 누군가와 조우하고 끝나거나. 아무튼 맥아리가 없다. 맥아리가 없어지는 나이에 그런 글들을 더 이상 읽는 것이 어딘가 청승 떠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괴로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았다. 고든 렘지는 부모가 이혼하여 뭔가 골똘히 집중할 게 없을까 하던 와중에 요리를 접해서 세계적인 셰프가 되었다고 한다. 뭔가 집중만 한다면 그 시간 동안은 거의 다른 세계에 있는 상태였으니까. 요즘은 점점 그런 몰입이 사라지고 있다. 상상력도 줄었다. 나는 문학적인 의미로 뇌사에 빠진 게 아닐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현실에 남겨진 게 아닐까. 한 때는 펜 한자루, 한글 창 하나만 켜져 있으면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진짜로 비행기표값을 생각하고 있으니.


사라지지 않는 중년의 뱃살처럼 게으름도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라면 나는 이미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잘 안다. 게으름이라는 것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니까 충분히 떼어낼 수 있다고. 물론 이놈의 뱃살도 운동을 안해서 그런 거고. 아, 그러고 보니 둘은 한패였구나. 원인과 결과였구나. 그렇다면 게으름이라는 것은 나에게 창작 기어를 가져가고 그 사이에 지방만 끼워 놓은 것이었다. 몹쓸, 찌든 때의, 돌아가지도 않고 출렁이는 그 오롯한 게으름이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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