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의 변천사
추석 차례를 지내고, 미친듯이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나는 제기와 그릇들을 미친속도로 정리한 다음, 거리로 나오게 된다. 명절이면 유령도시처럼 변하는 이곳이었는데, 막상 나와보니 내국인이 쏙 빠진 그냥 사람 많은 번화가였다. 오전인데도 사람이 많고, 오후가 되니 여느 평일과 똑같이 사람들이 더럽게 많아졌다. 변해도 참 이렇게 많이 변하는 동네도 흔치 않을 텐데 싶었다.
이 작고 길쭉한 동네에서만 30여 년을 살았다. 원래 재미라곤 1도 없는 이 동네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서대문구 관할인 연희동에서 반은 뚝 잘라서 마포구로 편입되었다고 들었는데, 현재 그 윗쪽 동네도 점점 시끄러운 동네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원래는 거물급 정치인들이 조명되면 그제야 같이 시끄러워지는 동네였는데...
아무튼 연희동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부자 동네 인식이 남아있던 것은 길게 가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오히려 연남동을 '화교'동네로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이 근처에 화교 분들이 많이 살고, 그에 맞춰 간판이 한문으로 된 자장면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마저도 요즘은 거의 사라지고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동진시장'이라는 표현이 낯설다. 그냥 거기에 시장이랄 것도 없이 그냥 가게가 몇 개 모여있던 기억만 있다. 거기에는 방앗간이 있었고, 명절이면 거기에서 떡을 해다가 자주 먹곤 했다. 고춧가루도 거기에서 산 기억이 있다.
특색이 있는 곳이라면 역시 홍대겠다. 큰길 건너가면 있는 대학가에는 예전부터 술집과 클럽이 즐비하다가 하나둘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점점 땅값이 오르자 대로변은 대형 회사 브랜드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걷고 싶은 거리'는 원래 죽고 싶은 거리였을지 모른다. 사실 거기에는 불법 판자촌이 들이차있었다. 지금 사람들이 오가고, 버스킹을 하던 곳은 옛날 내 친구와 내 친구의 친구집이 자고 일어나던 곳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큰길 건너오기 전에 얼음땡을 종종하던 미로 같은 골목. 지금은 동교동 로터리부터 상수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거리로 변모했다.
그리고 '연트럴 파크'. 경의선 숲길이 되기 이전, 이 빌어먹을 장거리 부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학창시절 내내 동네를 삭막한 풍경으로 만드는 주범이었다. 원래 철길이었던 이곳을 거의 10여 년 정도 칸막이로 폐쇄해버렸는데, 지금 연트럴 파크의 성공 사례를 소개해 주는 글들이나 말들을 듣고 보다 보면 기분이 좋은 것도 있지만 씁쓸함이 먼저다. 장기간 을씨년스럽게, 일부도 아니고 동네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무슨 동독과 서독을 나눈듯한 그 풍경은 잊을 수가 없다.
도시가 발전해 가는 것은 필연적이고 사람이 옛 향수를 그리워하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지만, 그게 우리 동네가 될 줄 몰랐고, 내가 미련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사람 북적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또 활기찬 것이 비단 나쁘지만도 않다. 그래도 가끔은 어릴 적 철길 위에서 누가 더 멀리 걸어가나 시합했던 때도 그립고, 미로 같은 골목에서 술래잡기하던 때도 그리워질 때가 있다. 횡단보도 없이 지하철 계단을 바삐 오르고 내리며 등교하던 초등학교 시절, 아무도 없는 저녁에 공사장 담을 넘어 예전 철길을 추억하며 친구들과 밀담을 나누던 중, 고등학교 때도 가끔 생각이 나고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