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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Dec 24. 2023

[일본 돗토리 4편] 사람이 없는 기묘한 거리

오히려 좋아

우와, 저거 방송국 맞지? 응, 맞아. 방송국이 무슨 골목길 돌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

그러게 말이다. 나는 왜 또 혼잣말로 감탄하고 혼잣말로 덤덤하게 맞장구를 치고 앉았을까.

이게 다.... 다음 숙소 오너가 부재 중이어서 생긴 '강제 산책' 때문이었다. 

일반 도로지만 너무 폭이 작아 골목길처럼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NHK 돗토리 시 방송국. [출처: 이젠 별의별 것을 다 찍는 iphone XS]


돗토리 사구 여행이 끝나고 나서 나는 지인한테 추천 받은 라멘집에 가 보기로 했다. 돗토리에도 유명한 라멘집이 몇 군데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 하나였다. 武蔵屋食堂(MusasiYa)는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도 나왔던 곳이라고 한다. 


골목길 안쪽에 자리 잡은 武蔵屋食堂(MusasiYa).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출처: 나 밥 먹는 동안 충전 입빠이 한 iphone XS]


이곳의 대표 메뉴 '스라멘' 국물이 약간 우동 국물같다. [출처: 충전 중.... 인 iphone XS]


마감 시간에 마치 습격이라도 하듯 캐리어를 드르륵 드르륵 끌고 우당탕 들어가서 주문 괜찮나요? 라고 물어보니 뭘 그렇게 서두느냐는 듯이 느긋하게 앉으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나 빼고는 손님이 없었다. 다들 일찌감치 먹고 나갔나 보다. 나는 오후 3시 조금 못 되어 도착했다. 

지인의 말로는 이곳 '스라멘'이 같은 계열 라멘의 원조격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런 종류의 라멘의 발상지라고 하는데 라멘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시켰다. 허기진 마당에 또하나 메뉴를 추천 받아 토마토 돈카츠 동도 시켰다. 


돈카츠 동. 기대 안 하고 먹는 메뉴가 제일 무섭다. 은근히 맛있었다. [출처: 혼자 맛난 거 먹는 나를 째려보는 iphone XS]


'스라멘'은 면발은 분명 얇은 라멘면인데 국물은 우동 국물같았다. 그러나 먹다 보니 깨달았다. 우동 국물인 것 같지만 살짝 다른 느낌이었다. 특출나게 자극적이지 않은 맛인데, 담백한데, 계속 입에 들어갔다. 뭐지? 그렇게 맛있지는 않은데 왜 계속 국물이 입에 들어갈까. 전날 술이라도 거하게 먹었다면 정말 헤어나오지 못했을 맛이었다. 

 

고독한 미식가 원작자의 흔적. 난 이 아저씨 먹는 장면도 매번 재밌어서 본다. [출처: 집에 간다니까 좋아하는 iphone XS]


다음 머물 숙소는 '그지부터 왕까지' 프로젝트에서 '그지'를 담당할 곳이었다. 말이 그지지만 그냥 평범한 게스트 하우스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리뷰에서 조금 긴장할만한 내용을 보고 말았는데,


'사장님이 매우 특이하심 ㅋㅋㅋㅋㅋ'


아, 너무 특이하면 골치 아픈데....... 엄마가 말했다. 너같은 X라이는 동족인 X라이를 피해야만 해. 물론 실제로 하신 말이 아니다. 그냥 방금 뭐라도 드립치고 싶었다. 아무튼 특이하지만 친절하시다는 사장님. 체크인은 16:00이지만 그 전에 도착해도 어찌어찌 짐을 받아줄 줄만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로비로 들어서자 불은 꺼져있고, 위층에서 문이 열리고 닫히는 인기척은 들리는데 도통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20여 분을 기다리다가 나는 근처 거리를 '캐리어 드르륵' 장단에 맞추어 걷게 되었다. 

거리에 사람도 없다. 리얼 시골. [출처: 내 iphone XS도 무섭대요.]


사진에는 다 담지 못했지만 이곳 번화가는 조금 을씨년스러웠다. 나는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되도록 역과 제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했는데, 역과 가까운 골목길은 대부분 '스낵바' 골목이었다. 몇 달 전에 인기였던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잠깐 나왔던 곳이다. 작은 공간에 바가 있고 노래방 기기도 있고 예쁜 누나 한둘이 운영하며 말 걸어주는 동네 토킹바 술집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잠깐 있다 보면 바가지 술값이 왕창왕창 나올 법한 가게가 한 골목을 그득하게 채웠는데 낮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진짜로 영업을 오랫동안 안 한 것인지 거리 자체가 너무나도 조용했다. 짐작은 맞았다. 밤에도 돌아다녀봤지만 몇몇 가게 빼고는 운영을 안 하는 곳이 많은 것 같았다. 여기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후 네 시 정확하게 다시 돌아온 나는 호기롭게 주인장을 찾았다. 이때는 나 말고 다른 여성 여행객도 기다리고 있었다. 안쪽에서 어떤 중년의 깡마른 남자가 나왔는데 보자마자 알것 같았다. 으아.... 특이한 아우라가 물씬 풍기는 거 보니 이 양반이구나.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가며 굉장이 띄엄띄엄 말하는 말투가 어딘가 홀린 듯한 말투였는데, 같이 설명 듣던 여성이 일본 사람인걸 감안하면 악의가 있다기 보다는 그냥 이 사장님 말투가 원래 어딘가 딴곳에 가 있는 듯한 말투를 쓰는 것 같았다. 


그는 꽤나 엄격하게 규칙을 설명해 나갔는데, 요점은 문 '쾅'하고 닫지 마라. 싸움 난다. 문단속 잘해라. 도둑 들어온다. 정도였다. 보통은 안 지키면 뭔가 혼나겠거니, 아니면 씨게 컴플레인을 받겠거니 생각하는데, 이 사람이 말한 것을 어기면 뭔가 거대한 저주(呪い)라도 걸릴 것만 같았다. 묘한 아저씨였다. 하지만 첫인상이 그렇지 이 아저씨는 꽤나 상냥했다. 아침밥 먹을 만한 곳도 추천해주고 게스트 하우스 내의 여러 외국인들의 모국어를 어떻게든 검색해 공부해왔는지 계속 말을 걸어주며 관심을 보였다. 

(혹시나 해서 남긴다. 이 숙소 이름은 '令和院 Leiwa Inn 你話Inn Hostelling International Café 旅舎國際咖啡'이다. 조용한 닌자 움직임에 자신있다면 추천한다.)


저녁은 인근에 있는 유명한 우동집에서 먹기로 했다. ちよ志手打うどん南吉方店(Chiyoshi MinamiYoshikata). 이곳은 구내식당처럼 긴 바를 이동하면서 면부터 해서 사이드 메뉴까지 스스로 고르고 담아 계산해서 먹는 곳이었다. 평소 글을 쓸 때도 분량조절 실패로 고생하는데 여기에서조차 분량 조절에 실패하여 도무지 이자카야에서 한잔 할 정도의 상태가 아니었다. 조금만 먹었어야 했는데.......


배는 부르지만 목넘김이 칼칼한 맥주 정도는 먹고 싶었다. 하지만 아까 봐뒀던 스낵바 골목 사이사이에 있는 이자카야나 횟집은 부담되었다. 그래서 가까운 페밀리마트에서 맥주 두 캔과 안주거리를 사서 게스트 하우스에 돌아와 먹을 요량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어이없게도 딱 술만 먹어도 괜찮을 맥주 바를 발견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이곳 사장님한테서 엄청난 이야기를 듣고 마는데.......




5편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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