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이 보여도 강의랑 잔소리는 계속 하게 됨
'미국 사는 이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다. 그냥 하나의 밈 같은 이야기인데, 외국에 오래 산 이모가 그 나라에서 몇십 년을 살아도 언어가 안 는다는 이야기다. 만약 그 이모가 LA에 산다면 영어는 아주 기초적인 것밖에 모르고 한국어만 할 줄 아는데 잘만 사는 것이다. 이민자라고 해서 모두 그 나라 말에 유창해지지는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얼마 전 핫했던 'BEEF(성난 사람들)'에서는 한인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는데, 극중이어서 모든 이들이 영어를 사용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한국어만 사용해도 불편함이 없는 커뮤니티가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에 산다고 해도 따로 영어를 자주 사용할 일이 없다면 배울 필요성을 못 느낄 거고.
내가 태국 이야기를 자주 한다고는 하지만, 실상 태국어가 유창하지도 않았고 지금은 많이 까먹었다. 이것도 하나의 자산이라고 틈틈이 태국에 대한 것도 찾아보고는 하지만 한계가 있다. 언어는 도구적인 특성이 있어 당장 필요하지 않으면 뇌에서 비활성화를 하는 모양이다. 이러다가 또 가끔 태국 제자들을 가끔 만나게 되면 한국어와 태국어를 섞어서 쓰게 되는데, 다시 활성화가 되어 아! 그랬었지 하면서 쓰기도 한다.
나는 생활+학생들과 다른 교수님들과 친해지기 위해 태국어를 습득했다. 습득이 맞는 말이겠다. 공부도 하기는 했지만 거의 독학이라 보잘 것없다. 일하느라 바빴고 그와중에 깊게 공부할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딱히 시험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평생 살 목적도 없었다. (땡모빤이나 무삥을 뜯을 때는 그냥 눌러 살까 생각을 하기는 했다.) 필요성이 부족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학생들이 선생들 뒷담을 하듯, 우리도 학생 뒷담을 깐다. 선생도 사람이니까. 강사실에서 나오는 이야기의 70%이상은 학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학생의 학적 변동에 대한 이야기부터 이 학생의 기이한 행동과 답변에서 오는 에피소드, 학생들과의 관계 등도 오고 가지만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는 '공부를 안 한다'는 주제일 것이다.
여기서부터 나는 조금 글을 적기가 조심스럽다. 지금부터는 잘하는 애와 못하는 애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건데, 편견 그득한 이야기를 하게 되어 쓰면서도 불편하다. 이 생각은 아마 1년 뒤에, 아니면 한달 뒤에, 그것도 아니면 글을 마친 직후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한다.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애가 공부를 안해요."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두 가지로 구분해 본다. 공부를 안 하는 것인지, 아니면 공부를 하는데 실력이 안 느는 것인지. 공부를 안 하는 애들은 딴 거 없다. 그냥 뺀질이다. 어느 정도 말이 트이기 시작하니까 더 이상 공부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내가 그랬다. 어느 정도 선에 올라가니 생활에 불편함이 없으니까 그 이후부터는 느슨해지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답답한 포인트는 나와는 다르게 이 친구들은 대학교 입학이 목적이라 토픽은 따야 하는데, 이렇게 정줄을 놓는다는 것이다. 아이고.
제일 안타까운 것은 공부는 하는 것 같은데 실력이 안 느는 친구들이다. 언어 공부니까 듣고 말하는 것도 병행을 해야 하는데 단어만 죽어라 외우고, 문법도 뜻만 외우고 실제로 써 보거나 말해 보라고 하면 활용을 전혀 못한다. 이렇게 공부 방법, 또는 요령이 틀려 먹은 학생들은 금방 바꾸기도 어렵다. 새로운 방법을 적용하려는 시도조차도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한두 번 해보고 돌아가 버린다. 백종원 골목식당에서 골목식당 사장님들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학기가 시작되면 직전 학기 상담 정보도 참고해 가며 학생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파악한다. 성격적인 면을 파악하기도 하고, 말을 어느 정도 떼고 있는지도 확인한다. 그러면 드래곤볼처럼 '한국어력 스카우터'가 발동되고 만다. 이렇게 측정이 된 내 뇌피셜 측정치는 대부분은 학기말 학생들 성적과 근접하게 맞곤 한다. 가끔 예상을 뒤엎고 놀랍게 성장하거나 폭망하는 학생들도 있어서 이 직업이 참 재밌다고 느끼게 해 주는데, 대부분은 그렇다.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그러면 생각한다. 한국어 교사라고 하면서 일은 하고 있는데, 내가 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주고 있는 것일까. 강의는 하고 있는데 정말 도움이 되는 걸까. 내가 좀 더 신경을 쓰면 정말로 온전히 도움이 될까 아니면 그냥 내가 오버를 하는 걸까. 나는 그냥 진도에 맞춰 수업을 하는 강의 셔틀이 아닌가.
능력치 높은 애들은 놔두고 능력치 바닥치는 애들 끌고 가면 도리어 능력치 높은 애들이 지친다. 그렇다고 쪼렙인 애들을 내팽개치면 그건 또 교사로서 할 짓일까.
"어차피 공부할 놈은 내버려 둬도 5~6급까지 가겠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가끔 이 친구들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는 날이 생기면 '그래, 내 지분도 몇 퍼센트는 있겠다.'싶다. 단순히 한국어 전달자라면 그냥 AI를 시켜도 될 노릇이다. 옆에서 잔소리도 하고, 관심도 가져주고, 압박도 줬다가 칭찬도 해줬다가. 곁다리로 문화도 알려주면서 의외성을 주는 게 내 역할인 것 같다. 정해진 수업 진도가 '보편성'을 가진다면, 위의 것들이 '의외성'으로 학생들에게 전달되면 아주 작은 찰나가 계속 기억되는 경우가 있다. 그게 한국어 한 문장이거나 하나의 어휘라면 그건 절대로 안 까먹게 된다.
분명 능력은 어느 정도 정해져있다. 스카우터는 틀리지 않는다. 그래도 이 친구들이 더 빨리 6급에 도달하게 하는 데는 분명 우리의 역할이 필요하다. 한국어를 놓고 외국 생활 원더풀 라이프를 즐기려고만 하는 친구들에게도 우리의 손이 필요하다. 적당한 잔소리와 관심만으로도 다음 급으로 밀어 올릴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