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_ 더 이상 아이는 노후 대비책이 아니다.
+ 30대 노후 준비
.
.
"내가 늙어 힘없으면 내 새끼가 돌봐주겠지~"
성인 자식을 둔 부모는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반대로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아이를 둔 부모한테는 "애한테 내 노후 부담 지어줄 생각 전혀 없어!"라며 건강하게만 컸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이들을 더 많이 본다. 그 차이가 신기하다고 한마디 했더니 어머니가 시원스러운 답을 하셨다.
“등짝이 지 책가방만 한 조그만 애한테 다 큰 어른 노후 책임져주기를 바라는 게 이상한 거 아니니? 그땐 애한테 바랄 게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잘 뛰어노는 거밖에 없을 때야. 효도는 애들 좀 컸을 때 바라는 거고.”
하긴.
곱셈, 나눗셈도 잘 모르는 아이를 보며 잘 키워서 나중에 내 생활비 벌어오게 해야지 하는 것도 참 너무하다 싶다. 근데 그 시기가 다 지나고 아이가 어른들 눈높이만큼 훌쩍 커버리면 부모는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큰소리치고 잘하라고 눈을 흘긴다.
하지만 이젠 이것도 다 옛날 얘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어릴 때부터 부모 걱정하지 말고 너 행복하게 잘 살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도 이미 자식들이 늙어 아프시면 돌봐드릴 수 없다며 엄포를 놓는 판이다. 그러니 이젠 노후에 자식의 도움을 전혀 포함시키지 않는 게 기본값인 거다. 이미 부모를 부양하는 자식은 거의 없다.
다들 부모님 생활비는커녕 아픈 부모 소식에 네가 모시네, 나는 못 모시네 서로 싸우다가 요양원 가기 싫다고 발악하는 노인네 억지로 보내버리는 게 보통이다. 나도 어렵고 힘든 게 아이에겐 편할리 없다. 지금 나도 내 부모 곁에 없는데, 과연 내 아이는 나의 곁에 있어 줄까…?
부모님과 외식하던 날, 해물찜과 함께 추가로 시킨 사이다에 살짝 취하셨는지 아버지는 가슴속에 꾹 눌러두었던 슬픈 이야기 하나 꺼내놓으셨다.
“같이 일하는 정씨 아내가 암으로 아파서 병원에 한참 입원을 했어. 근데 처음에는 애들한테 말을 안 했나 봐. 애들 걱정할까 봐. 그러다 좀 지나서 애들은 알아야 하지 않나 싶어 소식을 전했더니 아무도 오지를 않더래. 그래서 처음엔 자식들 일하느라 바빠서 그런가 보다 했던 모양이야. 근데 투병이 길어지니까 정씨 혼자 감당이 안 되는 거야. 간병인이 있어도 24시간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애들한테 좀 와서 어머니 좀 살피라고 했더니 다들 싫다면서 병원에 오지를 않더라는 거야. 지 엄마인데 말이야. 그나마 정씨 부인이 아프기 전에 사업으로 번 돈이 좀 있어서 간병하면 차 한 대씩 사줄 테니까 제발 와보라고 했더니 그것도 싫다면서 결국 안 왔데. 아니, 애들이 와서 지 엄마 똥 수발을 들겠어? 그건 간병인이 할 테지. 근데 한 번도 아픈 엄마를 보러 오지 않더라는 거야. 퇴원한 지금은 집에 잠시 들르는지 몰라도 막상 사람이 아파서 도움이 필요할 때는 곁에 오지를 않는 거지. 차를 사준다는데도 싫데. 지 엄만데 말이야….”
대부분의 자식이 이런 건 아니다.
하지만 실상 대학병원에 가봐도 자식이 부모를 간병하는 경우를 보는 건 퍽 드물고 주변에서 부모에게 잘하는 자식? 보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하는 효도란 무엇인가.
건강한 부모에게 용돈 조금 챙겨드리고 2달에 1번 정도 뵈러 가거나 영화관이나 외식, 여행을 가는 정도다. 이 모든 행동은 나의 생활이 힘들어지지 않는 선에서 이뤄진다. 그게 지금 우리가 말하는 효도다. 물론, 지금도 누군가는 부모를 모시겠지만 그 자식이 내 자식일 확률은 극히 낮다. 내가 부모를 모시는 자식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아이에게 바랄 수 있는 효도는 지금 우리가 부모님께 하는 효도 정도다.
아이는 이제 노후의 대비책이 아니다.
요즘 젊은 부모들은 이런 실태를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젠 “난 애가 있어서 노후 걱정 없어~”라는 말은 허언에 가깝다. 그러니 아이가 있는 사람도 자신의 노후 준비는 자기가 해야 한다. 자기 의지대로 노후에 집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혹은 요양원 정도는 가고 싶은 곳을 고를 수 있도록. 그게 돼야 비참함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
그런데 노후를 준비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아이에게 내 노후 부담을 짊어지게 하지 않을 거면 거기에 대한 대비를 해놓아야 하는데 그건 뒷전으로 미룬다. 아이를 키우느라 노후는커녕 당장 제주도 갈 돈도 없다는 아무 도움 안 되는 말만 한다.
노후 준비는 내 몫이다.
내 문제다. 아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밥에 김치만 두고 먹든, 한 달 생활비 20만 원으로 살기를 실천하든, 투잡을 뛰든 해서 약간의 돈을 마련하고 돈 관리와 재테크를 통해 노후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적은 돈으로 뭘 해야 할까, 주식이니 부동산이니 바지런히 들여다보고 배우면서 말이다. 그렇게 노후 자산을 불려야 한다.
애를 키운다고 노후 준비 못해가 아니라, 애 키우는 건 애 키우는 거고, 노후 준비는 노후 준비다. 무엇보다 후에 내가 늙고 어려워져도 내 아이가 나를 돌보지 않는다. 이제 “애가 없어? 늙어서 어쩌려고 그래?” 이런 말은 의미가 없다. 지금 어른들은 아이가 있어도 없다 생각하고 스스로 노후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는 지금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게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젠 자식에게 노후를 기대할 수 없으니 거기에 대해서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내 노후는 내가 알아서 해야 하니 거기에 대해 대비하라는 경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