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3부)
서점으로 일터를 옮긴 후 첫 월급을 받았다. 나이를 먹고 연차가 쌓여도, 새 직장에서 받는 첫 월급은 감회가 남다르다. 내 능력이 보상받는 순간이기도 하고, 지난달 성실하게 일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며, 또 이를 토대로 미래를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다만 급여 명세서를 받을 때는 짐짓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건네받은 후,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 숫자만 확인하고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매장으로 돌아가 남은 일을 정리했다. 줄곧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자연스레 생긴 버릇이었다. 퇴근 후 주차장에서 새미를 기다렸다. 우리는 운 좋게 같은 동네에서 일하게 된 덕분에 출퇴근을 같이 했는데, 얼마 안 있어 신호등 건너편에 새미가 도착했다. 그런데 초록불이 켜질 때까지 가만히 있지 않고, 손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춤을 췄다. 나랑 같은 월급날이었던 것이다. 한껏 신이 났나 보다. 보기만 해도 흥이 느껴졌다. 신호등을 건넌 후 첫 급여 명세서를 내게 보이며 까르르 좋아라 했다. 차 안에서도 주체하지 못하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아니, 그렇게나 좋았던 걸까?’ 옆에서 흐뭇해하면서도 의아하게 바라보자 새미가 내 시선을 눈치챈 듯 말을 꺼냈다.
“여보 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규직 월급 받았어.”
새미는 대학원 졸업 후 지금까지 줄곧 프리랜서로 일해왔다. 프리랜서라 하면 자유를 갈망하는 많은 직장인이 꿈꾸는 직업이지만, 실제 종사자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비정규직이다 보니 사대보험에 포함되지 않을뿐더러, 정규직이 받는 각종 혜택도 없었다. 자유롭게 일하며 돈을 버니까 좋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새미가 하는 아동 청소년 상담일은 일감이 꾸준하게 들어왔다. 하지만 돌연 상담이 취소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특히 명절 연휴, 휴가철에는 정규 진행 중인 상담도 쉬어가서 그만큼 급여도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갑작스럽게 상담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는데, 규정대로라면 상담료를 차감해야 한다. 하지만 내담자에게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기란 쉽지 않았다. 자칫 했다가는 상담이 중단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새미의 동료 상담사는 상담 1건을 위해 지하철을 두 시간 가까이 타고 와서 상담을 준비하고 있는데, 당일 취소 연락을 받고는 아무런 소득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고 했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많았다. 안전망 없이 상담사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전가되는 방식이었다.
한 마디로 프리랜서의 삶이란 일도 불규칙적이요, 수입도 일정치 않았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상담센터는 프리랜서의 형태로 상담사들을 채용했다. 내담자와 스케줄을 맞춰 시간 조정해야 하는 상담직의 특성 때문인지, 사설 기관에 근무하는 상담사들에게는 프리랜서 외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대부분의 심리 상담사는 석사 학위를 따고 난 후에도 오랜 시간 교육과 수련을 받는다. 하지만 그들의 잔고는 쏟는 노력에 비해 초라하고 불안정했다. 경력이 짧은 상담사는 상담 케이스를 꽉꽉 채워도 한 달에 200만 원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한다. 게다가 양질의 상담을 제공하기 위해 매달 급여의 1/3 이상을 수퍼비전과 교육 분석, 워크샵 등으로 지출해야 했다. 결국 한 달 동안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이 140만 원에도 못 미쳤다.
프리랜서로 꼬박 6년을 일한 새미였다. 그래서인지 정규직 직원으로 일해서 받는 돈이 그토록 감격스러웠나 보다.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월급 외에도 좋은 점은 더 있었다. 우선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쉴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명절을 포함해 소소한 수당을 받는 것과, 연차 사용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급할 때 쉬면서 일해도 꼬박꼬박 통장으로 급여가 들어오다니. 오랜 기간 프리랜서로 생활한 새미에게 있어서는 가히 천국이나 다름없는 근무복지였다.
오늘은 우리 둘 다 쉬는 날. 차를 타고 양양의 햄버거 집으로 놀러 가기로 했다. 그곳에서 햄버거를 먹고 인근 카페(맥주 파는 가게)에서 느긋하게 책맥 할 예정이다. 창문을 살짝 열자 향긋한 봄바람이 자동차 안을 누비어 지나간다. 대관령에서부터 불어온 바람이었다. 새미가 기분 좋은지 말문을 연다.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으니 너무 좋다, 여보."
"그러네. 우리 둘 다 이렇게 일할 수 있어서 좋네."
새미의 간절한 바람 중 하나가, 많은 돈을 벌기보다 일정하게 통장으로 원급이 들어오기를 원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 꿈을 이룬 것이지 않을까? 강릉으로 살기 시작한 지 1년도 안 지나, 집도 직장도 안정적으로 안착했다. 이 행복한 일상이 얼마나 더 이어질까? 부디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