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백숙4>
그날은 더웠다. 유난히 벌써 덥고 꿉꿉했다.
여름이 완전히 오지도 않는 날에 아침은 가을날씨처럼 쌀쌀했고
저녁에는 꿉꿉한 습한 더위였다.
하지만 방 밖에서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에어컨 바람은
더위를 가시기 좋은 온도 였다.
그저 일상처럼 평범해서 더 슬픈 그런 날이었다.
햇살도, 바람도, TV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도
어느 하나 나쁘지 않았는데
가슴 안쪽이 서서히 물에 잠기는 기분이었다.
슬픔은 언제나 거창하지 않게 찾아온다.
울고 있는 사람보다,
울지 않는 얼굴이 더 오래 남는다.
왜 우리는,
눈물이 나지 않을 때 더 아플까?
그 날의 나는
별일 없는 하루를 사는 사람이었고
이별을 겪은 지 꽤 지난 사람처럼
그저 조용히 컵에 물을 따르고,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했다.
하지만
구석 어딘가가 이상하게 뻐근했다.
세면대 앞에서 칫솔질을 하다가
문득, 그 사람과 함께 있던 순간이 떠오르고
점심 메뉴를 고르다가
예전에 둘이 가던 맛집들이 생각이 났다.
지워진 줄 알았는데
무심한 날씨가, 평범한 일상이, 그 사람을 자꾸 불러냈다.
기억은 아무 허락도 없이 문득문득 살아난다.
'여긴 그 사람이 좋아하겠다.'
'이거를 맛있어 했는데'
'이 길은 우리가 걸었던 거리인데'
'네가 말 없이 웃던 그 순간, 지금 내 눈앞에 다시 펼쳐졌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도 내 마음을 몰랐지만
온 세상이 그 사람의 흔적처럼 느껴졌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날씨가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고, 하늘이 너무 맑아서 이별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날.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움직였다.
열심히 움직인거 같지만 발걸음은 계속 날 멈춰 세웠다.
속은 멍했고
문득 고요해질때 마다
목덜미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건 눈물도, 감정도 아닌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들이
내 마음 어딘가를 건드리는 소리였다.
그 날은 그런 날이었다.
세상이 이상하리만큼 괜찮아 보여서
나만 망가진것 같았고,
나만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춰 선 것 같았다.
사람들도 잘도 움직였고
시간은 여전히 제 속도로 흘렀고
지하철 창밖 풍경은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았다.
나는 그 모든 무심함 속에서 조용히 혼자, 그 사람을 안았다.
머릿속이 아니라 가슴 어딘가에서 아직
그 사람이 살고 있었으니까.
그날은
그 사람에게 안녕이라고 말하지 못한
어제의 마음들이 다시 날 찾아온 날이었다.
그날은,
그냥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