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벼루에 먹을 갈다
안개 낀 새벽,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의식을 마른 세수로 달래며 밖으로 나설 채비를 마칩니다. 동장군이 놀랄까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서니 이슬을 머금은 공기가 훅 들어오며 반가운 인사를 건넵니다.
푸드득 날아오르는 이름 모를 새의 날갯짓과 청량한 지저귐을 벗 삼아, 고요한 산길에 켜켜이 쌓인 나뭇잎 위를 조심스레 한발씩 내디디며 산 중턱의 약수터에서 한가득 물을 담아 옵니다.
결이 고운 돌로 만들어진 벼루는 작은 연못을 품고 있습니다. 마른 연못에 약수물을 조금 부어줍니다. 먹을 반듯하게 세워 연못의 물을 벼루의 평평한 바닥으로 조금씩 끌어오면서 천천히, 정성스럽게 원을 그려나갑니다.
서로 겉돌던 먹과 물은 벼루의 미세한 돌기에 조금씩 갈리고 섞이며 묵향을 풍기기 시작합니다. 벼루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물기는 옅어지고 묵향은 진해집니다. 어느새 묵직한 반짝임이 먹물에 생기를 더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제,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펼쳐진 하얀 화선지 위에 먹을 적신 붓을 올리니 붓이 스스로 제 갈 길을 찾아갑니다.
새해의 소망이 손끝에서 피어납니다. 바라는 것을 모두 이루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 Editor 그런가
은은한 묵향으로 깨어 나서는 길
찬 새벽 깨끗한 공기가 코끝을 스칩니다. 아직 채 어둠에서 깨지 못한 푸른 새벽에는 은은한 묵향이 서리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밤새 그린 그림에서 묻어 나오는 향이지요. 그 묵향에는 잠들어 있던 정신을 깨우는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새벽 숲을 향해 나아갑니다. 언제나처럼, 아버지와 함께 물을 길으러 나서는 길입니다. 걷는 걸음걸음 조심스러운 발끝에 닿는 가벼운 바람과 시선 끝에서 날아오르는 학의 날갯짓이 모두 나의 눈과 마음에 담깁니다.
<벼룻물> 북트레일러 https://youtu.be/wHgL7mXdF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