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다뒤'...차별화된 컨셉의 중요성
오랜만에 쓰는 광고리뷰를 써봅니다. 제목을 다소 강하게 썼습니다. 그만큼 안타까웠습니다. 그동안 눈에 들어오는 광고가 없었기도 했지만, 요즈음은 그 정도를 넘어 이것이 무슨 제품인지도 모르겠는 것도 옥외로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나가는 모델만 씁니다. 이 제품에 왜 이 모델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은 없습니다. 그냥 사용자 타겟층이 익숙할 것 같으니까 씁니다. 그러다 보니, 아까 보고 또 봅니다. 모델이 자주 나올수록 대중은 모델만 기억합니다. 광고의 차별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작년 4분기에 스포티파이와 갤럭시에서 광고를 집행했었습니다. 둘 다 기안84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경쟁사도 아니고, 핫한 빅모델이기에 시기가 겹쳐 쓸 수는 있습니다. 근데 그러려면 컨셉을 달리 해야 합니다. 위의 광고 컨셉 모두가 기안84 나와서 창작활동을 하는 모습이 모티브였습니다. 그런데 그것 말고는 특히 다른 점이 없습니다. 광고는 기안84에 업혀가는 모양새였습니다.
카피를 바꿔서, "나만의 영감팔레트, 나만의 갤럭시탭"이라고 해도 전혀 무방합니다. 시기도 같고, 모델도 같은데, 전하는 내용마저 비슷합니다. 이런 광고가 많아질수록 제품보다, 기안 84를 홍보하는 효과만 크게 됩니다. 모델의 노출은 잦은데, 컨셉이 대동소이하기 때문입니다.
모델은 제품의 아이덴티티인 동시에, 제품과 연결고리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없으면 만들어야죠. 하지만 그 논리는 탄탄하고 1차원적으로 납득되어야 합니다. 광고의 효용성은 거기에 달렸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이렇게 컨셉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료한 솔루션을 잘 내놓았습니다. 배우 전광렬 씨는 드라마 '허준'으로 대중의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허준 전에는 '청춘의 덫'에도 나왔고, 한참 뒤에 '제빵왕 김탁구'에서 빵을 야무지게 먹는 밈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광고에서의 전광렬 씨에게 거는 기대역할은 '허준'입니다. 위의 광고는 다소 웃길지언정 정관장이라는 제품의 메시지를 놓지 않았습니다. 뚜렷한 컨셉이 있기에, 모델과 카피가 모두 열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꼭 의사 같이 전문성 캐릭터만 필요하다는 건 아닙니다. 시청자가 모델이 투영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모델이 브랜드의 가치와 효용성을 입증해주기만 한다면, 그것만 잘해도 성공한 컨셉인 것입니다.
요즘 광고의 결핍된 점은 컨셉에 대한 진지한 고민 부족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회의도 하고, 커뮤니티 써치도 해봤겠지요. 그렇게 해서 문제점과 해결방식, 카피를 도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점은 이 시대의 문제점만 알고, 해결책은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넘어가버리는 용두사미식 방식입니다.
아무래도 MZ 타겟을 고민한 듯합니다. 정확하게는 시대가 MZ를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를 반문하는 콘셉트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MZ를 MZ라는 프레임에 얽매이지 말자는 짐짓 계도적 메시지도 담기고, 오피스 전문기업을 표방하다 보니 업무 문화에 대해서도 관여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확립하고 싶었던 계산이 보입니다.
그런데 MZ가 도구라는 생각 밖에 안 듭니다. 우선 전개가 논리가 결여되었습니다. MZ가 아니라고 서두에 말해놓고, MZ의 소통 방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MZ모델을 앞세우고, MZ로 보지 말아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요? MZ를 MZ로 보지 말라는 걸까요? MZ대로 존중해 달라는 걸까요?
... 여기서 닉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 순간 모두가 그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이 일화는 상대편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려면 상대편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프레임 구성의 기본 원칙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와이즈베리, 2007), 21쪽.
언어학의 정수라고 꼽히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이 있습니다. 프레임에 관한 재밌는 이론을 설명해 준 책인데, 여기서도 말하는 바는 프레임을 깨기 위해서는 프레임을 쓰는 언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광고는 기존 사회의 MZ의 인식을 바로잡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정면돌파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인식만 공고하게 하고 솔루션은 마찬가지로 용두사미로 끝났습니다. 컨셉에 대한 고민 부족입니다.
주제의식이 상대적으로 적은 식품광고도 사실 무주공산입니다. 백종원 모델의 연이은 이슈로 광고업에서 빠지자, 그 자리를 흑백요리사의 인물들이 올해 초까지 대체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지상파로 나온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파급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에 속합니다. 그만큼 그동안의 식품 광고는 모델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었다는 현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최근 광고들은 직설적으로 말하면 '감다뒤'에 가깝습니다. 어디 하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물론 전적으로 광고 제작자만의 책임은 아닐 것입니다. 레트로의 열풍, MZ보다 실버세대의 지갑 공략이 더 쉬운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위와 같이 소위 40년 전 광고를 재탕해도, 오히려 돈이 되는 시대입니다. 광고도 사회도 초고령사회에 직면해 있는 것이죠.
과감한 시도가 부정당하는 지금의 시대가 매우 개탄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