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라인 알렉산더, <인듀어런스>를 읽고

새해 나의 다짐을 책에 담는다면. . .

by 이 환


몇 년 전 정초에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이 남극 최초 횡단에 도전한 이야기를 담은 <인듀어런스>라는 여행기를 읽었다. 정초라는 시기와 무척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정초를 맞아 책장에서 꺼내 넘기며 복기를 한다.


이 책의 부제는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이다. 실패인데 왜 위대하다 했을까? 섀클턴의 탐험대는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남극 횡단에 도전했던 아문센에게 남극 최초 횡단이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내주고 말았다. 그도 모자라 타고 갔던 배가 난파되어 부빙에 얹혀 남극해를 정처 없이 떠돌며 살아서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불투명한 처지가 되었으니 그들의 도전은 실패가 맞았다. 그러나 그들은 600여 일의 사투 끝에 탐험대원 27명 모두가 귀환할 수 있었다.


이들이 귀환할 때까지 펭귄 고기까지 먹으며 처참하게 버텨낸 화려한 팀워크의 기록을 읽고 있노라니,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방금 새로 맞이한 새해에는 그 어떤 어려움이 내 앞을 가로막더라도, 나 또한 섀클턴 탐험대처럼 새로운 한 해를 야무지게 살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의욕과 기대가 샘솟았다.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과 내게 올 한 해 주어지는 과업을 완수해 내리라.


그러고 보니 내 인생에서 처음 홀로 떠났던 타국의 여행지를 향해 가던 날에 비행기에서 읽었던 책도 여행기였다. 당시 이름을 날리던 여행가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간 곳이 중국은 아니었지만, 저자가 난생처음 중국에 와서 살면서 좌충우돌 속에서 중국어를 익히고 사람들을 알아가는 과정을 읽으며, 나 또한 처음 떠난 혼자만의 이 여행에서 배우고 즐기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할 때, 여행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떠올리면 위안이 된다. 처음 새로운 곳에 도착했을 때의 막막함, 새로운 곳에 대해 알아가는 즐거움, 문제 상황에 처했을 때 가져야 할 단단한 마음과 지혜로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의 안도감과 아쉬움, - 여행이 가져다주는 이런 이미지는 어떤 일의 시작점에 서 있는 내게 그 일의 끝을 내다볼 수 있는 시야와 여유를 선사한다. 이번 일도 힘은 들겠지만, 끝을 잘 맺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곧 다시 3월이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주로 지내는 나는 매해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나처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시작하느라 막막하고 힘든 처지에 있다. 새해에 처절했던 섀클턴 탐험대의 남극 여행기를 읽고 얻게 된 위안과 여유의 힘으로, 곳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힘내세요, 함께해요, 수고하셨어요.’라는 인사를 건넬 수 있는, 내가 되라고 스스로를 응원한다.


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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