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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Aug 26. 2019

희대의 막장 남편 유비

삼국지 잡설들 01

   소설 삼국지연의를 보면 유비가 '처자는 의복과 같지만 형제는 수족과 같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수백 년 전에 살았던 나본 선생이야 멋진 대사라 생각해서 집어넣었겠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유비가 얼마나 막장 남편이었는지를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일 따름입니다. 


  사실 인권 개념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한 3세기 초엽의 중국에서 아내와 자식은 정말로 소유물 취급을 당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우리의 주인공, 귀 큰 유가 놈의 막장성에는 단연 탁월한 면이 있다고 하겠는데요. 오늘은 여기에 대해 잠깐 썰을 늘어놓아 볼까 합니다. 


  유비가 결혼을 몇 번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중 사서를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다섯인데, 두 명은 처(妻)고 한 사람은 첩(妾)이며 두 명은 불명확합니다. 심지어 그중 하나는 기록에 성조차 남아 있지 않아요. 여하튼 처는 정식으로 맞아들인 아내로 이전의 처가 사망하거나 혹은 이혼하지 않은 이상 새로운 처를 맞이할 수 없고, 첩은 그런 거 없이 몇 명이든 간에 그냥 데러 오면 됩니다.  그럼 유비의 아내들은 누구누구가 있을까요? 

 

 1: 불명

 2: 미씨(처? 미축의 여동생)

 3: 감씨(첩. 유선의 어머니)

 4: 손씨(처. 손권의 여동생)

 5: 오씨(처. 오일의 여동생)

 6: 불명(후궁. 유리 혹은 유영의 어머니)


  최소한도로 잡아도 여섯입니다. 그보다 더 많았을 가능성이 높고요. 그럼 어디 한 번 상세하게 뜯어볼까요?



 유비는 161년생이며 황건란이 일어난 184년에 이미 스물넷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때 이미 혼례를 치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 정사를 잠깐 살펴볼까요. 이하 모든 인용문은 파성넷(rexhistoria.net)의 번역임을 밝혀 둡니다.


 [미축전] 건안(建安) 원년(197년), 여포가 선주가 원술에 대항하러 나간 틈을 타서 하비를 습격하고, 선주의 처자식을 붙잡았다. 선주는 광릉의 해서(海西)지방으로 군대를 돌렸다. 미축은 이에 선주에게 누이를 부인으로 들이고, 노객 2천 명과 금은 및 재물로써 군자금을 도왔다.


 유비가 서주에 있을 때 원술과 싸우던 틈을 타 여포가 뒤통수를 때립니다. 이 때 유비의 처자가 사로잡히죠. 이에 미축은 여동생을 유비에게 줍니다. 즉 미씨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아내와 자식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미씨가 처인지 첩인지는 불명확합니다만, 당시 미축의 사회적 지위로 보았을 때 처가 아닐까 추측됩니다.


   지금부터 유비의 아내와 자식들이 겪는 눈뜨고 보기 힘든 참상이 이어집니다. 

 [선주전] 양봉(楊奉), 한섬(韓暹)은 서주(徐州), 양주(揚州) 사이에서 도적질 했는데, 선주가 이를 격퇴하고 모두 참수했다. 선주는 여포에게 화친을 구하고 여포는 선주의 처자를 되돌려 보냈다.


 여포와 화해한 후 유비는 처자를 돌려받습니다. 그리고 소패에 주둔하죠. 그러나 유비의 세력이 커지자 여포는 다시 유비를 공격합니다.  

 [선주전] 여포가 이를 꺼려 친히 출병해 선주를 공격했고 선주는 패주해 조공(曹公-조조)에게 귀부했다. 조공이 그를 후대하고 예주목(豫州牧)으로 삼았다.
 [감황후전] 감황후는 패현(沛縣) 사람이다. 유비가 예주(豫州)에 부임하여 소패(小沛)에서 살 때, 그녀를 맞아 첩으로 삼았다. 유비는 본처를 여러 차례 잃었으므로, 항상 감황후가 집안일을 관리했다.


  첩 감씨를 맞아들인 것이 이때입니다. 연의에는 본처로 나오지만 감씨는 첩입니다. 여하튼 이 시절은 유비가 여포에게 연달에 패하고 서주를 빼앗긴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여색에 눈이 먼 모양이지요? 막장 유가 놈 인성 좀 보소. 

 [선주전] 여포가 고순(高順)을 보내 이를 공격하자 조공은 하후돈(夏侯惇)을 보냈으나 능히 구원할 수 없었고 고순에게 패했으며, (고순은) 다시 선주의 처자를 사로잡아 여포에게 보냈다.


  이런 한심한 인간이 여포를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유비는 세 번째로 여포에게 패했습니다. 처자요? 또 사로잡혔습니다. 

 [선주전] 조공은 친히 출병해 동쪽을 정벌하고 선주를 도와 하비에서 여포를 포위했다가 사로잡았다. 선주는 다시 처자를 되찾고, 조공을 따라 허도로 되돌아왔다.


 198년의 일입니다. 결국 여포를 쓰러뜨리고 처자를 다시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허도로 이사를 갑니다. 이 시절에 좌장군에 임명되기도 했죠. 그러나 동승의 밀조 사건에 연루된 유비는 서주로 도망가고, 분노한 조조는 서주를 공격합니다.

 [선주전] 조공이 동쪽으로 선주를 정벌하자 선주가 패적(敗績-대패)했다. 조공은 그 군사들을 모두 거두고 선주의 처자를 붙잡고, 아울러 관우를 사로잡아 돌아왔다.


  200년의 일입니다. 이때 삼 형제가 모두 헤어지게 되죠. 삼국지연의에는 이때 관우가 감부인과 미부인을 모시고 오게 됩니다만 실제로는 어떠했을지 불명확합니다. 감씨가 첩인 것은 이미 말씀드린 바 있고, 저는 이 시기까지는 처 미씨가 살아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후 유표에게 간 유비는 몇 해 동안 평온한 삶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막장성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208년. 마침내 조조가 남하하고 때마침 유표가 숨을 거두었죠. 당양 장판에서 유비는 그야말로 박살이 납니다. 

 [선주전] 선주가 이미 지나갔다는 것을 듣고 조공은 정기(精騎-정예기병) 5천을 이끌고 이를 추격했다. 하루 밤낮에 3백여 리를 달려 당양의 장판(長阪)에 이르렀다. 선주는 처자를 버리고 제갈량, 장비, 조운 등 수십 기를 이끌고 달아났고, 조공은 그의 무리들과 치중을 크게 노획했다.
 [조운전] 선주가 당양(當陽) 장판(長阪)에서 조공(曹公-조조)에게 추격당해 처자를 버리고 남쪽으로 달아나자, 조운이 몸소 어린아이를 품에 안았으니 즉 후주(後主-유선劉禪)이고 감부인(甘夫人)을 보호했으니 즉 후주의 모친이었으며 이들이 모두 위난을 면할 수 있었다.
 [조순전] 형주 정벌에 종군해 장판(長阪)에서 유비를 추격하고 그의 두 딸과 치중(輜重)을 노획하고 흩어진 병졸들을 거두어들였다. 진군해 강릉을 항복시키고 태조를 따라 초(譙)로 돌아왔다.


  막장 유가 놈은 처자를 버리고 도망칩니다. 다행히도 조운이 감씨와 유선을 구해냈습니다. 그러나 두 딸은 조조의 친척 동생이자 호표기의 지휘관인 조순에게 사로잡힙니다. 사로잡힌 두 딸의 운명은 사서에 나오지 않습니다만, 미루어 짐작하건대 부하들에게 전리품으로 주어졌을 겁니다. 운이 좋았다면 첩이 되었을 테고 운이 나빴다면 목숨을 잃었겠지요.

 [선주전] 유기가 병들어 죽자 군하(群下-뭇 부하)들이 선주를 추대해 형주목으로 삼고 공안(公安)을 다스렸다. 손권이 점차 이를 두려워해 여동생을 시집보내 우호를 굳건히 했다. 선주가 경(京-경구京口)에 이르러 손권을 만나고, 은기(恩紀-은정)를 주무(綢繆-끈끈히 얽어맴)했다.
 [감황후전] 감황후는 세상을 떠난 후, 남군(南郡)에 매장되었다.


  적벽대전의 승리 후 유비는 형남 네 군을 점령하고 형주목이 됩니다. 손권은 유비에게 여동생 손씨를 시집보냅니다. 이후 감씨는 한 많은 세상을 떠납니다. 추측컨대 장판에서 적에게 사로잡힌 유비의 두 딸도 감씨의 소생일 가능성이 높으니, 그야말로 자식들과 생이별을 한 셈입니다. 


  그러나 손씨가 막장 남편 유비의 본색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남편이 서쪽 익주로 출장 간 틈에 친정으로 도망칩니다. 

 [조운전 주석 조운별전] 손권은 유비가 서쪽을 정벌한다는 말을 듣고 배들을 대거 보내 여동생을 영접하게 했는데, 손부인이 은밀히 후주(後主-유선)를 데리고 오로 돌아가려 하니 조운이 장비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강을 가로막고는 후주를 구해 돌아왔다.


  농담을 섞어 말했습니다만, 이 결혼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비가 손씨를 맞아들은 때가 대략 210년 전후이니 이때 유비는 쉰 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손씨는 손권의 여동생이니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스물여덟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결혼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훨씬 더 어렸을 가능성이 높지요. 너무나도 눈에 빤히 보이는 정략결혼입니다. 


  이 두 사람은 나이 차이도 차이지만 성격도 어지간히 안 맞았던 모양입니다. 

 [법정전] 당초, 손권은 여동생을 선주에게 시집보냈는데, 여동생은 재기가 있고 강맹(剛猛-굳세고 사나움)하여 여러 오라버니들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 시비(侍婢-계집종) 백여 명이 모두 도(刀)를 잡고 시립하니 선주가 매번 들어갈 때마다 내심으로 늘 늠름(凜凜-두려워함)해했다.


  이후 손씨는 동오로 돌아갔습니다. 유비가 익주로 가 있을 때 손권이 몰래 사람을 보내어 데려갔지요. 이 때 유비의 유일한 친자인 유선마저도 손권의 손에 넘어갈 뻔합니다만, 제갈량이 기민하게 대처하여 장비와 조운을 파견해 유선을 탈취합니다. 어쨌거나 이로서 유비와 손씨는 실질적으로 이혼한 셈이죠.


  그리고 유비는 익주를 평정한 후  또다시 결혼하는데 그 상대가 이번에는 과부입니다. 

  [목황후전] 유비(劉備)의 목황후는 진류군(陳留郡) 사람이다. 오라버니 오일(吳壹)은 어려서 고아가 되었는데, 오일의 부친이 유언과 옛날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기 때문에 가족 모두가 유언을 따라 촉으로 들어갔다. 유언은 남다른 의지를 품고 있었는데,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이 목후의 모습을 보고 고귀한 신분이 될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유언은 그 당시 아들 유모(劉瑁)에게 자신을 따라오도록 하여 유모를 위해 목황후를 아내로 맞이해 주었다. 유모가 죽은 후, 목황후는 혼자 기거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손부인(孫夫人)은 오나라로 돌아갔으므로, 신하들은 유비에게 목황후를 맞이하도록 권유했다.


 오일은 흔히 오의로 알려진 장수입니다. 오씨는 원래 유언의 아들 유모와 결혼했는데 유모는 일찍 죽습니다. 과부가 된 오씨를 다시 유비가 보쌈해온 것이죠. 이후 유비에게는 유리와 유영이라는 아들이 생기는데 두 사람의 어머니가 서로 달랐다는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은 후궁의 소생이 됩니다. 아마 둘 다 후궁에게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지만 확실하진 않아요.  


 자. 이제 정리해 보죠. 


 유비는 그야말로 막장 남편이었습니다. 처자를 버리고 도망치기 일쑤였고, 그나마 적이 호의를 베풀 때면 처자를 돌려받았지만 그러지 않을 때는 잃기도 무수히 했습니다. 하지만 처자를 제대로 간수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결혼은 또 많이도 합니다. 게다가 그 아내들을 살펴보면 성향이 다들 달라서 마치 무슨 미연시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들 같기도 합니다. 

 

 -귀하게 자란 부잣집 아가씨(미씨)

 -고생을 함께 하며 헌신하는 여인(감씨)

 -싸움 좋아하고 성격 더러운, 25살 연하(손씨)

 -결혼경험이 있는 유부녀 속성(오씨)

 -자신의 아이를 낳아준 후궁(불명) 


 이 정도면 귀 큰 유가 놈의 막장성을 충분히 아실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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