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 짜리 제주도 여행
몇 년 사이에 제주도에는 독립서점이 여럿 생겨났다. 다소 냉소적으로 표현하자면 독립서점이 유행 중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 독립서점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우선 책의 권수가 현저히 적다는 점과(재고비용 문제로 많이 가져다놓기 힘들다) 카페를 겸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책만 팔아서는 수익이 안 난다), 그리고 비교적 외딴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임대료나 땅값이 싸야 한다)는 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뒤의 두 가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첫 번째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어마어마한 부피와 무게의 종이더미에서 밀려오는 물리적인 압박감이 없으면 어쩐지 서점 같은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내 취향일 뿐이고, 책의 양이 적다고 해서 서점이 아니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책의 수가 적다는 건 근본적으로 내 마음이 끌리는 책을 찾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건 분명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괜찮은 서점을 하나 찾을 수 있어 행운이었다.
이 독립서점의 이름은 [사계리:서점]이다. 장르소설 서점을 표방하고 있다. 일단 나름의 테마가 있다는 점에서 흥미가 간다. 서귀포시 인덕면 사계리의 외딴 곳에 위치해 있는 삼 층짜리 건물은 세 갈래 도로가 만나는 허허벌판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외관이나 내부의 모습은 소셜 미디어의 감성이 강하지만 지나치지는 않다. 책의 가짓수는 많지 않아서 기껏해야 오 단짜리 책장 하나를 채우고 말 정도인데, 대신 나름대로의 기준이 엿보인다. 존 딕슨 카를 필두로 하는 고전적인 추리 소설들이 여럿 보이기에 꽤나 반갑고, 엘릭시르의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가 갖춰져 있다. 아서 C. 클라크나 할 클레멘트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하드 SF쪽 취향이 분명하다. 십이국기는 내 취향은 아니지만 불평할 생각은 없다. 이곳은 장르문학 중에서도 SF와 추리 쪽에 좀 더 비중이 치우쳐진 모양이고, 그 편향성이 내게는 꽤나 마음에 드니 말이다.
독립서점이 가지고 있는 테마가 내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일단 독립서점이라면 그 주인장의 확고한 취향이나 기준에 따라 책이 갖춰져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점이라는 두 글자를 붙이기조차 낯부끄러운 독립서점들이 꽤 있다. 갖춰진 책의 목록부터가 제멋대로다. 기준도 없고 일관성도 존재하지 않으며 테마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책을 대충 가져다놓았을 뿐이다. 그런 곳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는 데는 쓸 만할지 몰라도 서점으로서는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곳 [사계리:서점]은 그런 점에서 합격이었다. 이런 서점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게 오늘 있었던 일 중 가장 좋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서가를 훑어보고 있노라니 주인장이 슬쩍 다가와 장르와 취향을 물어보며 책을 권해주려 하는데, 내가 워낙 낯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탓에 묵묵부답으로 거절했지만 내심 그 권유가 반가웠다. 책을 고르는 자신의 안목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 어지간한 독립서점들은 두 번 찾아오기가 꺼려지기 마련이지만, 이곳은 언젠가 또 찾아오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느끼면서 책을 두 권 골라 계산하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