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잡설들 05
한 중년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도 젊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세상이 만만해 보였지요. 모든 세상을 내 발밑에 놓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 그는 거침없이 세상으로 뛰어나왔습니다. 가진 건 쥐뿔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 하나만큼은 누구보다도 거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어느덧 오십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건대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내로라하는 부하직원들과 함께 사업을 크게 벌이기도 했습니다. 중소기업 치고는 돈도 꽤 벌었죠. 그러나 세상 살아가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세상에는 참 금수저도 많았습니다.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수천억에 달하는 자들이 남자의 머리 꼭대기에 서서 남자를 내려다보며 비웃었습니다. 그럴 때면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초라해짐을 느꼈습니다. 한때 그의 아래에 있던 유능한 인재들이 하나 둘 대기업으로 떠나갈 때 남자는 어쩔 수 없이 홀로 술잔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그래요. 남자는 이제 동네에서 조그만 슈퍼 하나를 운영하는 동네 아저씨일 뿐입니다. 높은 직위에도 올라 봤고, 한때는 업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끗발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비록 사장님 소리를 듣지만 직원 두 사람뿐인 구멍가게 사장일 뿐이죠. 직원 하나가 출근하지 않으면 사장이 직접 카운터를 봐야 하는 그런 가게 말입니다. 그나마도 먼 친척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 공사판에서 노가다라도 뛰어야 했을 겁니다. 한때 잘 나갔던 그의 회사는 이미 부도나서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래도 남자에게는 여전히 야망이 있었습니다. 내가 언젠가는 잘 나갈 것이라는 야망이요.
사람들은 남자를 비웃었습니다. 이보쇼. 당신 나이를 생각하시오. 당신이 아직도 이십 대 젊은이인 줄 아쇼? 처자라도 굶기지 않으려면 지금 슈퍼나 잘 운영해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야심이고 무슨 얼어죽을 야망이요?
그래. 그렇지. 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실이었으니까요.
꿈이고 나발이고 간에 그는 당장 먹고살기에 바쁜 중년 남자일 뿐이었습니다. 자신도 익히 알고 있다시피.
어느 날, 남자는 한 젊은이의 소문을 듣습니다. 그보다 스무 살이나 젊은 청년이었죠. 남자가 사회에 나와서 한참 사업을 벌일 때 겨우 부모님 밑에서 유치원이나 다녔던 그런 나이입니다. 게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 학위도 땄지만 아직 취업을 못해서 백수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저 청년 언젠가는 큰일을 할 거야, 하고요.
남자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대체 어떤 청년이기에 백수 주제에 저렇게 평이 좋은가? 대학은 그럭저럭 좋은 데를 나온 모양이지만 무슨 아이비리그 출신인 것도 아니고, 박사논문도 꽤 잘 쓴 모양이지만 그래 봤자 별 볼 일 없는 경영학과 출신인데 말이죠. 요즘 세상에 경영학과 졸업한 사람이 한둘입니까 어디.
그래서 어느 날, 남자는 슈퍼 문을 잠시 닫아 두고 청년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리고 청년을 만난 순간 남자는 보았습니다. 이십 년 전의 자신이 맞은편에 앉아 있음을. 세상에 대한 야망에 불타고 있는, 언젠가 세상 모두를 내 발밑에 두겠다는 야심에 찬 자신감 넘치는 젊은이의 모습이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남자는 결심했습니다. 내 남은 인생을 이 젊은이에게 걸어 보겠다고.
그렇게 유비는 제갈량을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