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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Aug 30. 2019

삼국지 인물들의 특이한 여성 편력

삼국지 잡설들 04

 지금으로부터 1800년 전인 삼국시대. 그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자들의 특이한(?) 여성 편력을 정리해 봅니다. 이하 인용문의 출처는 파성넷(rexhistoria.net)입니다.



1. 부정할 수 없는 로리콘 장비


 [하후연전 주석 위략] 당초 건안 5년(200년), 하후패의 사촌여동생(從妹)이 13살일 때 고향 집에 있었는데, 땔나무를 주으러 나왔다 장비에게 사로잡혔었다. 장비는 그녀가 양가의 딸임을 알아채고 아내로 삼아 딸을 낳았는데 뒤에 그 딸이 유선의 황후가 되었다. 이 때문에 하후연이 죽었을 때 장비의 처는 청하여 하후연을 매장했었다.

  열 세 살짜리 꼬마를 납치해서 결혼했답니다. 이 때 장비의 나이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대략 30대 초반으로 추정됩니다. 서른 살 넘은 날건달이, 동네 뒷산에 올라온 초등학교 6학년짜리를 납치해서 아내로 삼았습니다. 실로 천인공노할 범죄가 아닙니까? 요즘 세상 같으면 당장 감옥에 처넣어야 할 일입니다. 다행히도 하늘의 그물은 비록 성글더라도 벗어날 수 없어, 장비는 결국 부하인 장달과 범강에게 살해당하니 실로 자업자득이라 하겠습니다. 




 2. 유부녀를 좋아한 관우


 의로 맺어졌다는 동생이 저 지경인데 의형이라 해서 별다를 게 뭐 있겠습니까마는, 관우의 취향은 장비와 정반대였던 모양입니다. 보시죠. 

 [명제기 주석 헌제전] 진랑(秦朗)의 아버지 이름은 진의록(秦宜祿)이고 여포의 사자로 원술에게 (구원을 요청하러) 갔을 때, 한(漢)왕실의 여자를 배필로 얻었다. 그의 전처 두씨(杜氏)는 하비(下邳)에 남았다. 여포가 포위되었을 때, 관우(關羽)는 두씨를 아내로 삼고 싶다고 조조에게 여러 차례 청하자, 조조는 두씨가 얼마나 미인인지 관심이 생겼다. 그러나 여포 토벌 후, 두씨가 미인임을 알게 된 조조는 약속을 어기고 그녀를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


  진의록은 여포의 부하 장수였습니다. 예쁜 아내 두씨를 버리고 대신 신분 높은 아내를 얻었다 하니, 두씨는 타의로 이혼당한 셈입니다. 여기에 눈독을 들인 자가 바로 얼굴 뻘건 수염쟁이 관우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여포는 관우의 주군이자 의형인 유비를 몇 번이나 배신하고 공격한 천인공노할 원수입니다. 그런데 바야흐로 여포를 때려잡으려는 차에, 팔자 좋게 여자 타령이나 하고 있네요?! 그것도 ‘여러 차례’ 청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필이면 조조 역시 관우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더한 유부녀 취향이었던 것입니다. 두씨를 관우에게 주겠다고 약조했던 조조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집니다. 막장 인간이 더 막장 인간에게 패배한 셈이지요. 

 



 3. 과부에게 자식마저 바친 로맨티스트 조조 


 그러면 그 조조는 어떠했을까요? 조조가 여자를 밝혔다는 건 워낙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구설에 오르는 여인이 바로 장제의 아내였죠. 연의에서는 추씨라고 나옵니다만 정사에서는 성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자. 자료 나갑니다. 

 [무제기] 조조(曹操)가 남쪽으로 정벌하여 육수에 주둔하니, 장수 등은 항복을 하였다. 조조가 장제의 처를 받아들이니 장수가 한이 맺혔다. 조조는 장수가 기뻐하지 않음을 듣고 은밀히 죽이려는 계책을 짰으나, 누설되어 습격을 당했다. 조조군은 패하여 두 아들이 죽었다. 장수는 돌아와 양성을 보호했다.


 장수의 항복을 받은 조조가 가장 먼저 한 일이, 장수의 숙모인 과부를 첩실로 삼은 겁니다. 장수의 기분은 어떻겠습니까. 더러웠겠지요? 하지만 장수가 빡쳤다는 소식을 들은 조조는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장수를 죽이려 합니다. 그러다 역공을 받아 조조는 박살나고 큰아들인 조앙마저 목숨을 잃게 되지요. 도망칠 때 그 여인을 데리고 갔는지는 모르겠네요? 


 여하튼 과부를 탐하다 자식과 조카를 잃고 용장 전위까지 전사하게 한 이 인간을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이 어이없는 소식을 들은 조조의 본처 정씨는 짐을 싸서 친정으로 돌아가 버리고 평생 다시는 조조를 만나지 않았다 합니다.

 

 


 4. 나는 아버지를 뛰어넘겠다! 조비


  그 아비에 그 자식이란 말이 있죠. 조비는 어땠을까요.  

 [문소견황후기] 건안 중에 원소는 둘째 아들 원희를 견후와 결혼시켰다. 원희가 유주자사로 나가게 되자, 견후는 남아서 시어머니를 봉양했다. 기주가 평정될 때, 문제는 업에서 견후와 결혼하였다.


 기록만 보면 아주 멀쩡해 보이지요? 하지만 이 때 견씨는 남편 원희가 살아 있었습니다. 애비 조조는 그나마 과부들에게 손을 댔지만 자식 조비는 진짜 유부녀에게 손을 댄 겁니다. 게다가 이 때 조비의 나이가 열일곱 살이었지요. 생각 좀 해보세요. 고등학교 1학년짜리가 남의 아내를 빼앗아서 결혼한 겁니다. 


 그리고 훗날 조비는 황제가 된 후에 그 아내를 죽여 버립니다. 자기가 여자 여럿 만나고 다닌다고 견씨가 불평했다는 이유로요. 이 인간, 제정신인가.

 [문소견황후기] 제위에 오른 후, 산양공(山陽公 : 후한의 헌제)은 두 딸을 위제(魏帝)에게 주어 빈비가 되게 했으며, 곽후(郭后)ㆍ이귀인(李貴人)ㆍ음귀인(陰貴人) 등도 모두 총애를 받았다. 견후는 갈수록 실의에 빠져 원망하는 말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대노하여 2년 6월에 사자를 파견하여 죽도록 하였으며, 업에 매장하였다.


 


 5. 천인공노할 약탈자 손책, 주유


 연의에서는 로맨스 비스무리하게 포장되었지만, 사실 대교와 소교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강동 이교는 약탈혼을 당한 불쌍한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무슨 바이킹인 것마냥 적의 딸을 빼앗아 혼인한 이 가증스러운 두 남자가 바로 손책과 주유입니다. 

[주유전] 주유는 손책을 따라 환현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당시 교공의 두 딸을 포로로 잡았는데, 모두 절색이었다. 손책 자신은 대교를 아내로 맞이했고, 주유는 소교를 아내로 맞이했다.


 게다가 손책은 뻔뻔하게도 이리 말합니다. 

 [주유전 주석 강표전] 손책이 주유에게 태연하게 장난을 걸며 말했다. "교공의 두 딸이 비록 훤하게 잘났다지만, 우리 둘을 얻어 남편으로 삼았으니 그들도 아주 신이 날 것이오."


  아니야. 


 다행히도 하늘이 무심하지 않으시어, 이런 악독한 범죄를 저지른 두 놈은 각각 스물여섯, 서른여섯에 요절하고 맙니다. 정의는 살아 있는 법이죠.

 



  6. 사랑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종요


 연의에서는 엉뚱맞게 칼춤을 추며 마초에게 덤비다 도망치는 장면으로 등장하는 종요. 하지만 본래 훌륭한 학자이자 서예가이며 위나라 시대에 상국(相國. 승상 위의 직위입니다)에 올라 그야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황제 조비는 그를 가리켜 모든 관리의 스승이 될 만하다고 칭송하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종요가 작은아들 종회를 보았을 때 그의 첩 장씨의 나이는 스물일곱이었습니다. 그리고 종회는 그 때 일흔다섯이었고요. 


  예. 75세 할아범이 27세 여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보았습니다. 48살 차이네요. 당시 기준으로는 며느리도 아니고 손주며느리보다 어릴 법한 나이입니다. 이 할배 대단하시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종회전 주석 위씨춘추] 종회의 모친은 종요의 총애를 받았으며, 종요가 그녀를 위해 그 부인을 내보냈다. 변태후가 이에 관해 말하였기에, 문제가 조서를 내려 종요에게 부인을 다시 거두도록 하였다. 종요는 극도의 분노를 느껴 장차 짐독을 먹고 자살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산초를 먹어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황제는 마침내 그만두었다.

 즉 종요 할배는 젊은 첩이 너무나 마음에 든 나머지, 원래 있던 본처마저 내쫓으려고 한 겁니다. 최고위직에 있는 양반이 그러고 있으니 나라 망신 아니겠습니까. 황태후(조비의 어머니)가 이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듣고 막았죠. 그러자 이 할배는 성질이 뻗쳐서 독을 삼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이번에는 식초를 처묵처묵합니다(?!?!) 그 때문에 말을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자 황제가 먼저 백기를 들고 말았습니다. 


 대체 이 영감탱이를 어찌 하면 좋단 말입니까. 




 7. 금발 건강미녀를 사랑한 제갈량 


 위에서 언급한 개망나니들과는 달리, 우리의 존경하는 제갈승상님께서는 일평생 한 여인만을 사랑했습니다. 그것도 남들이 못생겼다고 놀려대는 여인을 말이지요.


 [제갈량전 주석 양양기] 황승언(黃承彥) 은 고상(高爽), 개열(開列)하여 면남(沔南-면수 남쪽)의 명사였다. 제갈공명에게 말했다, “그대가 부인을 고른다고 들었소. 내게 못난 딸이 있는데, 노란 머리에 얼굴이 검지만(黃頭黑色) 그 재주가 서로 배필이 될 만하오.” 공명이 허락하자 곧 그녀를 실어 보냈다. 당시 사람들이 이를 웃음거리로 삼고 향리인들이 노래(諺)를 지어 말했다, “공명이 부인 고르는 것은 배우지 마라. 아승(阿承-황승언의 애칭)의 못난 딸을 얻으리라.”


 대체 왜 웃음거리로 삼습니까? 금발(黃頭)에다 피부가 그을린 건강미인(黑色)과 결혼했다지 않습니까. 짐작건대 실은 어지간히 부러웠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식들. 솔직하지 못하게....... 아마도 이런 외모였을 걸로 추정됩니다. 

노란 머리에 검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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