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잡설들 03
행정에 근대적 관료제가 도입된 이래로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와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공무원이 다양한 분야에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여러 분야를 종합하며 일하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특정한 분야에서 깊은 지식을 쌓아 그 업무에서 전문가적 소양을 지닌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입니다. 물론 두 의견 모두 일장일단이 있기에 갑론을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우월하다면 논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테니까요.
이 글에서 그런 논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후한시대 말기라는 혼란한 시대상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제너럴리스트가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만은 짚고 가야겠네요. 무수한 군웅들이 제각기 세력을 구축하고 남을 공격하여 자신의 힘을 키우는 난세였습니다. 게다가 전쟁이 일상사인 시대였기에 행정과 군사가 결코 별개로 분리될 수 없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군웅들은 똘똘한 인재 하나가 보이면 아주 그냥 뼛속까지 쪽쪽 빨아먹을 정도로 부려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유비가 형주 남부의 네 군을 평정한 후, 그는 관우를 양양태수(襄陽太守) 탕구장군(盪寇將軍)으로 임명합니다. 양양군을 다스리는 행정책임자의 지위와 군사를 이끄는 장군의 지위를 겸한 것입니다. 이는 의도태수(宜都太守) 정로장군(征虜將軍)이 된 장비나 계양태수(桂陽太守) 편장군(偏將軍)이었던 조운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믿을 수 있는 부하가 부족하고] [똘똘한 부하도 부족하며] [적에 비해 세력이 약하여 군정(軍政)이 일치될 필요가 있었기에] 이런 식의 인사가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반면 조조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인재가 충분했거든요. 게다가 항상 반란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했기에 외지에 나간 장수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쥐어주는 것은 오히려 위험했습니다. 그렇기에 일정한 세력을 구축한 후 조조는 군사를 이끄는 장군과 행정을 담당하는 태수를 분리하여 운용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식읍을 내림으로써 지위와는 별도로 재산상의 포상을 줄 수 있었다는 이점도 있었습니다.)
다시 유비에게 돌아오자면, 그는 필연적으로 인재를 제너럴리스트로 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눈에 들어온 인재에게는 다방면에 걸친 경험을 쌓게 해 주었지요. 세력이 미약했을 때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익주를 차지한 이후로도 그러한 경향은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사방침의 최대 희생자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제갈승상입니다. 그의 이력을 보면 유비야말로 천고에 유례없는 악덕 고용주이며 제갈량은 실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가련한 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제갈량의 간략한 약력부터 적고 시작하겠습니다.
181년. 출생
206년. 삼고초려 후 출사
208년. 조조의 형주 공격. 강하로 도망. 동오로 가서 손권과 동맹 체결
209년. 군사중랑장으로 임명. 영릉 장사 계양 세 군을 관할하며 부세를 거둠.
211년. 유비 입촉. 형주를 진수(수비함).
212년. 장비, 조운과 함께 익주를 공격.
214년. 유비 익주목 등극. 군사장군으로 임명. 좌장군부의 일을 대행.
218년. 한중공방전. 성도에 머무르며 보급.
219년. 유비 한중왕 등극.
221년. 유비 황제 등극. 승상 녹상서사 사례교위 가절에 임명.
223년. 유비 사망. 탁고를 받음.
234년. 개고생 하다 오장원에서 과로사.
좀 더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공무원 03년차(28세) : 조직의 명운이 달린 교섭에 대표사절로 나감. 외교 분야 마스터.
-공무원 04년차(29세) : 조직의 수입관리 총괄본부장이 됨. 행정 분야 마스터.
-공무원 06년차(31세) : 기관장이 해외에 출장 가자 본사 공동 관리자가 됨. 군사(수비) 분야 마스터.
-공무원 07년차(32세) : 기관장을 도우러 해외로 나감. 군사지휘관이 됨. 군사(공격) 분야 마스터.
-공무원 09년차(34세) : 기관장이 조직 확장 성공. 조직 내 명실상부 넘버 2.
-공무원 16년차(41세) : 국무총리 겸 기재부장관 겸 국방부장관 겸 감사원장 겸 대법원장 기타 등등.
이게 인간입니까? 인간 맞습니까? 드라마에 젊은 재벌 2세 실장님 나온다고 욕할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건 우리 업계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에요.
제갈량은 미처 서른도 되기 전에 세력의 수입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고 삼십 대 중반에는 이미 명실상부한 조직 내 이인자였습니다. 유비는 그를 제너럴리스트로 키우기 위해 외교, 행정, 군사 등 분야를 바꿔가며 어마어마한 경험치를 퍼먹였고 제갈량은 극한에 다다른 재능을 통해 그걸 죄다 소화해냅니다.
유비에게는 아마 두 가지 의도가 존재했을 겁니다. 우선 제갈량에게 공을 쌓게 해 주려는 뜻이 있었겠지요. 새파랗게 젊은 놈을 높이 쓰려하면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오직 제갈량이 스스로 공을 세워 자신을 증명하는 방법밖에 없었죠. 동시에 유비는 제갈량에게 그만한 재능이 있다고 여겼을 겁니다. 그리고 그 재능을 최대한 끌어내 써먹으려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또 자신의 후계자인 유선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 태어난 것이 고작 마흔한 살의 승상이었습니다. 군사와 행정과 외교 모든 분야에서 그 누구도 범접하기 힘들 실적을 쌓은 우주굇수가 탄생한 것입니다.
물론 각 분야로만 따진다면 최고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군사 분야의 실적만으로 따진다면 장비가 쌓은 공적이 훨씬 더 많았겠지요. 그러나 제갈량이 쌓은 실적 또한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군사를 제외한 다른 업무분야에 있어서는 단언하건대 제갈량을 능가할 수 있는 존재가 없었습니다. 그는 최고의 제너럴리스트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최고의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비견할 수 있는 존재를 꼽으라면 당대에 오직 조조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굇수에게는 조조가 가지지 못한 또 하나의 덕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충(忠)이었죠.
그대의 재주는 조비의 열 배나 되니 반드시 나라를 안정시켜 대업을 이룰 것이오. 만약 유선이 보좌할 만하다면 그리 하고, 재능이 부족해 보이면 그대가 제위를 취하시오. (君才十倍曹丕 必能安國 終定大事 若嗣子可輔 輔之 如其不才 君可自取)
죽음을 앞둔 유비는 제갈량을 불러 그렇게 당부합니다. 그리고 제갈량은 ‘보좌할 만하지 못한’ 황제를 보좌하며 그야말로 자신의 생명을 갈아 넣습니다. 오장원에서 과로사로 숨을 거둘 때까지 평생 동안 말입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유비라고 해서 자기 아들내미가 변변찮은 녀석이라는 걸 왜 몰랐겠습니까. 넘쳐흐를 지경인 엄청난 카리스마와 그 자신의 능력만으로 험난한 난세를 거쳐 마침내 황위에까지 오른 그와는 달리, 아들 유선은 별 볼 일 없는 범부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유선이 위와 오에 맞서 천하를 일통할 수 있으리라고는 그 자신도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유비는 그 일을 자신의 또 다른 후계자에게 맡겼습니다. 혈연을 통한 후계자가 아니라 정신적 후계자에게요.
그러나 제갈량조차도 유비의 그 타고난 카리스마는 가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신 다른 것이 있었죠. 무시무시할 정도의 재능이요. 그리고 유비는 그것을 개화시켰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그렇기에 어쩌면 제갈량이야말로 유비가 그 평생을 바쳐 만들어낸 모든 업적 가운데서도 단연 가장 앞에 놓을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유비는 일찍이 제갈량의 재주를 알아보아 그를 직접 발탁하였고, 다방면에 걸친 경험을 쌓은 끝에 최고의 제너럴리스트이자 동시에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도록 안배했습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그에게 있어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의 구분은 무의미한 것이었을 겁니다. 일이 생기면 제갈량에게 맡기면 되니까요. 무슨 일이든 간에 그에게 맡기면 반드시 훌륭한 결과를 내놓았을 테니까요.
그러므로 삼국시대에서 최고의 행운아를 꼽는다면 단연코 유선일 겁니다. 아빠가 유산으로 제갈량을 남겨줬거든요. 최고의 제너럴리스트이자 스페셜리스트를. 이천 년 후에도 그 이름이 잊히지 않는 위대한 공무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