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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Aug 30. 2019

삼국시대의 벼슬 등급

삼국지 토막지식 03

  사극을 보면 1품이니, 3품이니 하는 말이 종종 등장합니다. 이때 품(品)은 과거 관료 제도 하에서 관리들의 등급을 뜻합니다. 1품이 가장 높고 9품이 가장 낮죠. 아홉 개의 품계로 나누었다 해서 흔히 구품제라고 부릅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를 세분화하여 정1품/종1품 식으로 나누기도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현대 대한민국의 공무원 제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품'이라는 말 대신 '급'이라는 말을 쓰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 사실 이러한 구품제는 한나라가 멸망하고 세워진 위나라에서 구품관인법(九品官人法)이 도입된 후에야 적용된 제도입니다. 그러면 그 이전에는 대체 어떤 식으로 관리들의 등급을 나누어 구분했을까요? 


  정답은 바로 연봉입니다. 


  한나라 시절에는 매년 연봉을 얼마나 받는지로 관리의 등급을 구분했습니다. 연봉이라고 했지만 돈이 아니라 벼로 주었지요. 벼 한 섬을 1석(石)이라 하고, 해당 관리가 연봉으로 몇 석의 벼를 받는가 하는 걸 관질(官秩) 혹은 봉록(俸祿) 등으로 부릅니다.  


  한나라 시대의 최고위급 관료가 이른바 삼공구경(三公九卿)입니다. 세 명의 공(公)과 아홉 명의 경(卿)이지요. 그중에서도 최고위직인 삼공의 경우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관질이 무려 1만석 혹은 4200석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1만석이지만 실제로는 4200석이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2000석, 1000석, 600석, 400석, 300석, 200석, 100석 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中)과 비(比)라는 개념이 추가로 들어갑니다. 중은 해당 관질보다 좀 더 높다는 뜻입니다. 즉 중2000석이라 하면 2000석 관리보다 더 높다는 거죠. 비는 반대로 낮다는 겁니다. 비2000석이면 2000석 관리의 아래에 있다는 의미예요. 실제로 주는 벼의 양도 그만큼 조절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이걸 감안하면 관리들의 등급은 이렇게 됩니다. 


1만석(혹은 4200석) - 중2000석 - 2000석 - 비2000석 - 중1000석 - 1000석 - 비1000석 ......


  대략 2000석까지는 고위직으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구경의 경우는 중 2000석이었습니다. 각 군의 수령이자 지역 통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태수가 2000석이었죠.


  무장의 경우 대장군이 대체로 삼공과 같은 대우를 받았고, 표기장군/거기장군/위장군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전후좌우 사방장군의 경우 구경과 같은 수준의 중2000석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관질이 높다 하여 무조건 실권이 강했던 건 아닙니다. 예컨대 태상(太常)은 황실의 제사를 관장하는 지위로 무려 중2000석이나 되는 고위 관료였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별 볼 일 없는 명예직에 가까웠습니다. 반면 상서령(尙書令)은 1000석밖에 안 되지만 실무 행정을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했기에 실제 권한은 그야말로 막강한 수준이었습니다. 


  이러한 연봉 기준의 관리 등급제도는 내내 유지되었다가, 앞서 말씀드린 구품관인법이 등장한 후에야 비로소 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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