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곰 Sep 01. 2019

유비와 조조는 언제 처음 만났을까

삼국지 잡설들 06

  삼국지연의에서 유비와 조조는 황건적을 토벌하던 중 전장에서 우연히 만납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연의는 소설적 창작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죠. 그러면 두 사람은 실제로 언제 처음 만나게 되었을까요? 


   정사 선주전의 배주로 인용된 영웅기(英雄記)라는 책에 매우 흥미로운 구절이 나옵니다. 

   [선주전 주석 영웅기] 영제 말년에 유비는 일찍이 수도(낙양)에 있었다. 이후 조조와 함께 패국(沛國)으로 돌아와 무리를 모았다. 영제가 붕어하자 천하에 대란이 일었다. 유비 또한 군사를 일으켜 동탁 토벌에 참가했다.


   영제의 제위 시기는 168년에서 189년까지입니다. 황건적의 난이 184년에 일어났으니 영제 말년이라면 그 이후의 시점이겠네요. 그리고 ‘천하에 대란이 일어났다’는 건 당연히 189년에 영제가 죽은 후 십상시들이 대장군 하진을 죽이고, 이에 원소가 다시 내시들을 학살하고, 뒤이어 동탁이 정권을 장악하고 마침내 황제마저 갈아치우는 일련의 과정을 말합니다. 이후 이른바 반 동탁 연합군이 조직되는 게 바로 190년의 일입니다. 


   그런데 유비가 낙양에 있었다가 조조와 함께 패국으로 돌아온 건 어느 시점이었을까요?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명확하지 않다]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료가 부족할뿐더러 몇 안 되는 사료 간에 서로 충돌이 일어나거든요. 그러나 대충 짜맞춰 볼 수는 있습니다. 


   위서 무제기에 의하면 황건적의 난이 끝난 후 조조는 제남상(시장)이 됩니다. 해당 지역에 부임하지요. 이후 불명확한 시기에 낙양으로 소환되어 동군태수(시장)에 임명되지만 병을 핑계 삼아 고향인 패국 초현으로 돌아가지요. 다시 시간이 지나 188년, 34세 때 다시 낙양으로 소환되어 전군교위에 임명됩니다. 이후 동탁이 정권을 장악하고 조조를 효기교위에 임명하려 하지만 또다시 고향으로 도망쳐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한편 촉서 선주전에 의하면 유비는 황건적의 난이 끝나고  안희현의 현위(파출소장)가 됩니다. 하지만 독우 벼슬을 하는 자와 뭔가 사이가 틀어지는 바람에 그 자를 수백 대나 두들겨 패고는 도망자로 전락하지요. 이후 다시 반란군 토벌에 참여하여 사면받고, 공을 세워 하밀현의 승에 임명됩니다. 그러나 또다시 관직을 버렸지요. 추후 고당현 현위에 임명되고 나중에는 고당현 현령(동장)으로 승진합니다. 


  두 사람이 만난 건 아마도 조조가 고향으로 돌아오기 직전이었을 겁니다. 즉 동군태수를 사양하고 고향으로 왔을 때나, 혹은 동탁의 초빙을 거절하고 돌아왔을 때 중 하나겠지요. 그리고 유비의 입장에서는 하밀승에 임명되었다가 벼슬을 버렸을 때일 겁니다. 유비가 굳이 관직을 버린 이유가 바로 조조를 따라 패국으로 가기 위함이었다고 한다면 전후관계가 꽤나 그럴듯하게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그럼 제 추측에 따라 창작을 섞어 정리해 보겠습니다. 


   여러 번의 반란군 토벌에서 공을 세운 유비는 하밀승 벼슬을 받습니다. 임명장을 받으려면 수도인 낙양으로 가야 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유비는 조조와 만납니다. 그때 조조는 이미 저명한 인물이었고 유비보다 훨씬 높은 벼슬을 받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너져가는 한나라에 환멸을 느끼면서 속으로는 남모르는 야망을 키워 가고 있었지요.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했던가요. 자신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데다 가진 것이라고는 몇 안 되는 부곡(사병)뿐이었던 유비를 조조는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래서 권유하지요. 내 수하가 되지 않겠소? 나는 그대 같은 유능한 인물이 필요하오.  


   유비는 그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하밀승, 요즘으로 치면 하밀동 동사무소 행정계장 정도인 별 볼 일 없는 벼슬을 걷어찬 후 조조를 따라 패국으로 가죠. 그곳에서 조조의 친족인 하후돈, 하후연, 조인 같은 자들과 함께 병사들을 모았습니다. 이후 반 동탁 연합군이 결성되자 유비는 자연스레 조조를 따라 종군하였지요. 이것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전말입니다. 

 



   그런데 반 동탁 연합군이 허망하게 해산한 후, 유비는 뜻밖에도 조조의 휘하를 떠납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공손찬에게 의탁하죠. 왜였을까요? 


    물론 당시의 공손찬은 조조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보유했던 강력한 군벌이긴 했습니다. 또 같은 스승을 모신 동문이라는 사적인 친분도 있었고, 공손찬 개인도 유비를 꽤 높게 평가했지요. 유비는 공손찬의 휘하에서 고당현위-고당현령-평원현령-평원상으로 쾌속 승진을 하는데, 이 평원과 고당 일대는 공손찬과 원소의 세력이 거세게 충돌하는 격전지였습니다. 즉 유비는 공손찬의 수하로서 능력을 꽤나 인정받은 셈입니다. 그런 점에서 유비가 조조 대신 공손찬을 선택한 건 합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비가 조조를 떠난 것이 단지 그 때문이었을까요. 


   조조는 유비와 그 일당들을 무척이나 높게 보았습니다. 그건 이후 조조의 유비에 대한 평가나(천하의 영웅은 오직 그대와 나뿐이오!), 관우에 대한 집착, 또 장비가 하후연의 조카딸과 결혼한 일 등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났던 유비 또한 조조의 그릇을 알아보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비록 지금은 공손찬의 세력이 강성하지만 조조가 곧 두각을 드러내리라는 사실은 유비 역시 깨닫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유비는 왜 조조를 떠났을까요. 


  제 해석은 이렇습니다. 


 결국 넌더리가 난 조조는 부족한 군사를 모집해야 한다는 핑계로 연합군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유비는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저 무리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큰일을 하기는 글렀소. 나와 함께 갑시다. 내게는 그대 같은 사람이 필요하오.”
 조조가 설득했지만 유비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손백규(伯珪. 공손찬의 字)는 저와 같은 스승을 둔 동문이요, 예전에 탁현의 현령으로 있을 때 저희 집안을 여러모로 돌봐 준 은혜가 있습니다. 그가 지금 도적들을 토벌하는 일을 도와 달라고 부르니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조는 무척이나 아쉬워했지만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명분을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작별을 고한 후 각자의 길을 떠났다. 그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던지 장비가 유비에게 물었다.  
 “아니 형님. 보아하니 저 자가 형님을 높이 보는 것 같은데 굳이 그 밑을 떠날 필요가 있습니까? 공손백규가 딱히 형님을 정중하게 초청한 것도 아니거니와 조맹덕도 꽤 그럴듯한 인물 같은데 말입니다.”
 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맹덕은 영웅호걸이다. 반드시 크게 이름을 떨칠 것이다.”
 장비가 이해되지 않은 듯 재차 물었다. 
 “그러면 어째서.......”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유비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가 거목(巨木)이 되기 전에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평생을 그의 부하로 살아야 한다.”

- [출사 :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삼국시대의 벼슬 등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