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나 : 스스로 만든 괴로움

우울증과 나 자신의 이야기 8

by 글곰

이렇게 나 자신의 과거들을 돌이켜 보면서, 우울증이 발발한 근원이라고 짐작되는 두 가지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대'와 '소통'이다.


나는 타인의 기대에는 반드시 부응해야 한다고 인식했고, 그러지 못했을 경우 내 잘못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항상 기대를 충족시킬 수는 없었기에 나는 항상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 잘못들에 대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죄책감이 마침내 나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이게 첫 번째 문제였다.


나는 소통하는 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고, 내 감정과 타인의 감정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대화를 통한 해결보다는 도피를 선택했다. 그래서 해결되지 못한 수많은 문제들이 내 가슴 한 구석에 차곡차곡 쌓였고 마침내 나를 짓누를 지경에 이르렀다. 이게 두 번째 문제였다.


그리고 이 둘은 때때로 서로 엮이면서 부정적인 시너지를 극대화하곤 했다. 마침 한 가지 사례가 떠오른다. 내가 결혼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우리 집안은 지독하리만큼 유교적 가풍이 강했다. 특히나 우리집은 명절에는 연휴 전날 밤에 올라가서 연휴 마지막 날 저녁에 돌아오는 것이 마치 원칙처럼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이 명절에 모여서 논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나 신기했다. 내게 있어 명절이란 연휴 내내 빈틈없이 시골집에만 붙들려 있는 기간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아내의 집은 반대였다. 명절 전날 밤에 내려가서 다음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밥숟가락을 놓차마자 다시 돌아와서 남은 명절 기간 동안 푹 쉬는 집안이었다. 물론 이른바 '큰집'과 '작은집'의 차이는 있지만, 가풍자체가 그렇게 달랐다.


그래서 아내는 결혼 초반에 명절을 무척 힘들어했다. 나는 내가 결혼했으니만큼 당연히 아내 편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대는 정반대였다. 아버지는 '새로 집안에 들어온 며느리'가 최대한 오랫동안 시골집에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며느리를 오래 잡아두고 싶은 아버지의 나를 향한 기대와,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아내의 나를 향한 기대가 충돌했다. 두 사람이 내게 던지는 질문은 아주 간단했다.


'언제 귀성할 것인가?'


나는 내심 최대한 빠르게 일정을 잡았다. 내가 그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 시각은 아버지의 기대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버지는 나를 따로 불러다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너희가 연휴 마지막 날까지 있으면 좋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전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


아내는 그런 나를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서 일찍 올라가겠다고 설명드린 후에 그렇게 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내게 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무서움이나 두려움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상황 자체가 내게 잘못으로 인식되고 있었기에 비롯된 죄책감 때문이었다. 죄책감은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게도, 아내에게도 단지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그때 내가 제대로 소통했더라면, 이러저러해서 일찍 가겠다고 잘 설명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아버지를 '소통하기 어려운 고집불통'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난청까지 겹쳐서, 나는 아버지와 소통하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로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나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어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소통을 포기해 버린 미숙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이후에 일어난 사달이 나 때문이라는 걸.


내가 정한 시각이 되자 나는 급발진했다. 집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이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다른 결정을, 심지어 사전에 통보받지도 못한 결정을 들은 아버지는 즉각 폭발했다. 내가 집안 사람들이 모두 모인 앞에서 아버지의 말을 무시함으로써 당신을 공개적으로 망신주었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고성이 오갔고, 나름 흥겹던 명절 분위기는 순식간에 박살이 나 버렸다.




그렇다. 나는 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을 자꾸만 나의 잘못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그건 틀렸다. 인간이 살면서 어떻게 남의 기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저렇게 두 사람의 기대가 상충될 때는 어떻게 하더라도 누군가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론이란 대부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진정한 잘못은 타인을 실망시킨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상황이 되었을 때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나 자신을 끊임없이 질책한 게 나의 진짜 잘못이었다. 나의 죄책감도 나의 괴로움도 사실은 내가 내 마음 안에서 만들어내고 키워낸 괴물이었다.


그리고 그걸 제대로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 것, 즉 소통을 포기해버린 것이 괴물을 더욱 크게 키웠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잘못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기에 나는 그 사람과 소통하는 대신 담벼락을 높이 세우고 혼자만의 공간에 스스로 틀어박혔다. 하지만 그렇게 해 봤자 문제가 해결될 리는 만무했다. 오히려 약간의 트러블 정도로 끝날 문제도 일이 커지기 일쑤였다. 그 또한 내가 초래한 결과였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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