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나 자신의 이야기 9
우울증을 초래한 원인을 발견한 것으로 첫 걸음은 뗐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단지 아는 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원인들, '기대에 부응하려는 강박관념'와 '소통의 부족'에 대처할 방법을 찾는 게 다음 단계다.
그래. 나도 머리로는 충분히 알고 있다. 기대에 부응하려는 강박관념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의무감과 책임감 따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모든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사실로서 인정해야만 한다. 아마도 거기서부터 나 자신의 우울함을 치유하는 과정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소통을 통해 나의 감정과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받아들이며, 그 둘이 상충되는 상황을 회피하는 대신 극복해야 한다. 누군가가 정치는 타협의 과정이라고 했다. 소통도 마찬가지다. 서로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공유하면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경험이 내게는 몹시 부족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나의 현명한 나의 아내는 일찌기 대답을 제시해 주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바탕 난리가 난 후 시골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나는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나는 고개를 움츠린 채 앞을 응시하며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요약하자면 이런 이야기였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당신의 문제는 양쪽 모두에게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하는 데 있다. 그러니 나한테 나쁜 사람이 되어라. 나는 그걸 받아들여 줄 수 있다. 대신 나는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릴 거다. 내게도 그 정도 권리는 있으니까 그 정도는 당신이 받아들여야 한다.'
맙소사. 그로부터 몇 년이나 되는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그리고 심한 우울증을 겪고 난 다음에야, 지금 이 순간에 와서야 나는 아내가 얼마나 통찰이 뛰어난지 비로소 깨닫는다.
그렇다. 그게 나의 가장 큰 문제였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걸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크고 본질적인 문제는 여러 사람의 각자 다른 기대가 상충되는 상황을 내가 견디지 못하고 계속해서 회피하기만을 반복해 온 데 있었다. 그건 마치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폭탄 상자를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아온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착한사람 증후군과도 비슷하리라. 나는 상충되는 기대를 모두 충족시키려 했고 그건 지금까지 누차 말해왔듯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는 대신 나는 선택하고, 감내해야만 했다. 어느 쪽이든 고른 후에 그 결과 다른 쪽이 실망한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적어도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일을 지나치게 무겁게 받아들이지는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 아내가 저 말을 한 이후에도 나는 아내의 말처럼 행동하지 못했다. 아내가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리는' 상황 자체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다른 좋은 방법을 찾았나? 아니다. 그러지 못했다. 그럴 수 없었다. 다른 좋은 방법이라는 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똑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해 왔다.
아내가 저토록 핵심을 찌르는 말을 해 주었는데도 대체 나는 어째서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누군가의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무서웠던 걸까? 소통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기에 그렇게 된 걸까? 아니면 그런 성향이었기에 소통하는 법을 익히기 어려웠던 걸까? 아니, 선후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건 내가 내 진짜 문제를 드디어 발견했다는 데 있다. '기대'와 '소통'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의 근간에 자리잡은 건 '누구에게도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잘못된 욕망이었다. 멍청이.
나는 부서장이다. 부서장은 중간관리자다. 즉 윗사람과 직원 사이에 끼여 있는 존재다.
일반적으로 윗사람의 기대는 내가 일을 많이 하고, 일을 키우고, 일을 잘하는 것이다. 직원들의 기대는 내가 일을 안 받아오고, 일의 규모를 줄이고, 일을 쳐내는 것이다. 양쪽의 기대는 대부분 상충된다. 이건 민간기업이든 공무원 조직이든 대동소이할 것이다.
내가 부서장이 되고 나서 몇 달 지나지 않아 우울증이 터져버린 건, 윗사람과 직원 사이에 끼여있는 나를 더 이상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 몇 달이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그건 말하자면 일종의 트리거, 계기였을 뿐이었다. 나의 내면에는 수십 년에 걸친 기나긴 세월 동안 계속해서 문제가 차곡차곡 쌓여 왔을 것이다. 그간 누적되어 온 화약의 양은 어마어마했고 언제든지 불을 당기면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던 지 오래였다. 부서장으로 승진하면서 내가 새롭게 처한 상황이 불씨가 되었고, 그렇게 마침내 폭발은 일어났다. 우울증 발작이라는 형태로.
이제야 나는 진정으로 깨닫는다. 내가 이렇게 된 본질적인 원인을. 철 지난 프로이트마냥 어린시절 무의식에 새겨진 트라우마 따위에서 근원을 찾을 수는 없다. 특정 시점에서의 특정한 사건 하나가 발단이 된 게 아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꾸준히 적립해 온 나의 회피 기제가 문제였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
나는 나쁜 사람이 되기 싫었다.
그 결과 우울증에 걸렸다.
그리고 나는 이미 해법도 알고 있다. 그건 나의 아내가 이미 알려준 지 오래였다. 심지어 우울증에 걸리기조차 전에 이미 말해준 그대로였다. 나는 타인에게 나쁜 사람이 될 줄 알아야 한다. 아니다. 더 솔직해지자.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진실을 향해 한발 더 나아가자.
나는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