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나 자신의 이야기 10
나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나는 이미 나쁜 사람이었다. 소통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인 인간이었다.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괴로운 기억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았지만 그렇다고 당시의 내가 잘 한 것도 딱히 없다. 어머니의 아낌과 믿음을 나는 그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연애의 실패에서 나는 괴로워했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는 아마도 더 힘들었으리라.
그랬다. 나는 이미 충분히 나쁜 사람이다. 나를 향한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걸 잘못으로 여기면서도, 동시에 나를 향한 타인의 기대를 수도 없이 저버려 왔다. 그런 주제에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웃기는 일이다. 나는 어째서 착한 척을 하고 있는 걸까. 실상 착하지도 않으면서.
나 자신을 인정해야만 우울증 극복의 발걸음을 뗄 수 있다. 이제 억지를 쓰는 건 그만두자. 내가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고 부응해야만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콤플렉스는 집어치우자. 내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실망시켜 왔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자. 그리고 앞으로도 무수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이자. 내가 나쁜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나쁜 사람일 것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다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뜻밖에도 나는 내가 차인 날 다음날에 고백을 받았다. 그래서 단 하루의 간격을 두고 두 번째 연애가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한 번 차이고 나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기간이 충분히 있었더라면 나라는 인간이 조금쯤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물론 이 또한 핑계겠지만.
그래서 나의 두번째 연애 역시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못했다. 나는 여전히 제대로 소통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먼저 고백했다는 나 자신의 우월감까지 겹쳐서, 나는 상대를 설득하기보다는 내 생각과 감정을 그저 밀어붙이는 쪽에 훨씬 더 익숙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이끌어 갔다.
내가 연애를 주도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게는 그럴 깜냥마저도 없었다. 다만 나는 연애를 투입과 산출로 인식했던 것 같다. 마치 동전을 투입하고 버튼을 누르면 음료가 나오는 자판기처럼, 내가 애정을 투입하면 당연히 상대도 그에 상응하는 애정으로 답해야 한다고 여겼다. 눈치가 없는 것치고는 상대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나름 노력했지만, 상대가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을 때는 불만을 가졌다. 그래서 종종 충돌이 생겼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연애 관계에서 크고 작은 충돌이 생기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감정의 부딪힘을 싫어했고 때로는 그게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무시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연애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방식이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녀에게 나는 형편없는 연애 대상이었다.
나는 십대에도, 이십대에도, 삼십대에도, 그리고 사십대에도조차 미성숙한 바보였던 모양이다. 내가 머릿속으로 만들어내고 나 스스로를 괴롭혀 온 기대-실망-처벌의 연결고리는, 언뜻 탄탄한 논리체계 같았지만 사실은 근본적으로 모순된 것이었다. 왜냐면 나는 타인으로부터의 기대에 짓눌렸지만, 그러면서도 반대로 타인에게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냉소적으로 말하곤 한다. 자신은 남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그건 아마도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거짓말일 것이다. 사람은 항상 타인에게 기대한다. 크게는 타인의 인생이나 삶의 방향에 대해 기대를 한다. 작게는 대화 중의 사소한 반응이나 대답을 기대한다. 아예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조차도 그렇다. 타인의 기대에 짓눌려서 우울증이 걸릴 정도였으면서도, 여전히 타인에게 수많은 것들을 기대한다.
그래. '기대'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인간이라면 타인에 대한 기대가 없을 수 없다. 심지어 나처럼 지독하리만큼 자기중심적인 인간조차도 매일 타인에게 무언가를 기대했다. 인간은 원래 타고나기를 그런 존재다.
그렇기에 그 기대에 모두 부응하는 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껏 반복해 온 것처럼,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 해서 잘못은 아니다. 기대에 부응하는 것도 부응하지 못하는 것도 그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면,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 세상은 온통 나쁜 사람으로만 가득 차 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아둥바둥하는 자가 있다면, 그건 상당히 냉소적이고 위악적인 의미에서 '착한 사람'이라고 불러야겠다.
나는 왜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사실을 감추려고 해 왔을까.
나는 왜 착한 척을 해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