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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Sep 16. 2023

모텔에서 아르바이트하다 겪었던 일

단편

  그러니까 그게 벌써 오 년이나 지난 일이네. 대학교 다닐 때 알바를 했어. 오전에는 수업 들어야 하고 주말에는 쉬어야 하니까 야간알바를 구했지. 처음에는 편의점 야간을 하려 했는데 당시는 최저임금도 제대로 안 지켜주던 때라 도저히 견적이 안 나오더라고. 그 때 삼촌이 자리를 하나 소개시켜 주셨어. 친구 분이 모텔을 하는데 야간알바 할 생각이 있냐고 하더라고. 편의점보다 거의 세 배 가까이 쳐준다기에 냉큼 하겠다고 했지. 삼촌이 바로 휴대전화 꺼내서 뭐라 뭐라 통화를 하시더니 이야기 다 됐다고, 내일부터 출근하면 된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엉겁결에 모텔 카운터 알바를 시작했어.


  어디라고 정확하게 말하기는 그렇고, 아무튼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의 뒷골목에 그 모텔이 있었어. 한 이백 미터쯤 되는 골목길에 모텔만 거의 스무 개 정도 되더라고. 그런데도 다들 장사 잘 되는 걸 보니 세상에 커플이 참 많구나 싶더라. 왠지 모르게 화가 나데?


  사장님은 키가 백팔십이 넘고 우락부락한 근육질에다 엄청 험악하게 생겼어. 머리는 박박 깎았고. 딱 봐도 조폭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대학 때까지 유도를 했다고 하더라고. 자기가 카운터에 앉아 있으면 손님들이 싫어해서 알바를 구했는데 얼마 전에 갑자기 그만둬서 급히 대타를 구한 게 바로 나였던 거지. 그래도 생긴 거에 비해서 무섭진 않았어. 성격은 시원시원하고 잔소리도 별로 안 하고, 내가 할 일만 잘 챙겨서 하면 남는 시간엔 카운터에서 공부를 하든 쉬든 간에 터치하지 않겠다고 하더라고.


  그렇다고 내가 할 일이 많은 것도 아니었어. 그냥 손님 들어오면 키 내주고 돈 받고(카드기가 있긴 한데 대부분 현금으로 내더라), 손님 나가면 청소 아주머니 불러서 청소하시라고 말씀드리고, 가끔씩 룸에서 인터폰 오면 받아 주고 그 정도였어. 전화는 대부분 수건이나 면봉 따위가 없으니까 가져다달라는 게 대부분이었고, 간혹 편의점 가서 담배나 컵라면 같은 거 사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그런 전화 받으면 기분이 좋았지. 대개는 만 원짜리 하나 주면서 거스름돈은 나 가지라고 했거든. 가끔씩 술 취한 사람들이 와서 행패를 부리는 경우도 있었는데 사장님은 그럴 때 무조건 경찰을 불러서 처리하라고 했어. 그런 일만 아니면 전체적으로 수월한 알바였지.


  다만 신경 쓰이는 일이 하나 있긴 했어. 사장이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알려주고는 문득 지나가는 말처럼 그러더라고.


  “그리고 육백삼호에는 어지간하면 손님 받지 마라.”


  “아. 거긴 손님 안 받는 방이에요?”


  “아니, 무조건 받지 말라는 건 아니고......”


  그 덩치 큰 아저씨가 난처하다는 듯 고민하더니 그러는 거야.


  “주말에 손님들 막 밀려올 때는 받아도 되는데, 한적하고 빈 방 있고 그럴 때는 굳이 거기 말고 다른 방을 내주라고.”


  손님을 받으면 받는 거고 말면 마는 거지, 뭐 그런 어정쩡한 방식이 다 있나 싶었지. 하지만 나야 그냥 알바생일 뿐이니 뭘 어쩔 수 있었겠어? 그냥 알겠다고 했어. 그리고 그 말대로 했지. 주말 저녁에는 대실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지경이라 거기도 손님을 받았지만, 비교적 한가할 때는 그 방을 꼭 비워놨어. 어느 날 하도 궁금해서 잠깐 그 방에 들어가 봤는데 딱히 별다를 건 없더라고. 그냥 다른 방이랑 똑같았어. 그렇게 한 두어 달 알바를 했는데......




  아마 수요일인가 목요일인가 그랬을 거야. 평일인데도 웬 일인지 방이 꽉 차 있었어. 아마 장마철이어서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었던 탓이 아닐까 싶었지. 왜, 비가 오면 밖에 다니기 힘드니까 모텔로 많이 오거든. 요즘도 그렇겠지만 그 때는 모텔들이 한참 DVD다, PC다, 게임기다 해서 놀 수 있는 것들을 잔뜩 구비해 둘 때라 괜히 어정쩡한 데 가느니 차라리 모텔 오는 게 이득이었거든.  


  그 때 그 손님들이 온 거야.


  처음 볼 때부터 느낌이 좀 쌔한 거야. 양복을 입은 남자는 대략 마흔쯤 되어 보였는데, 청바지에 티를 입은 여자는 아무리 잘 봐 줘도 스물다섯이 안 되어 보였어. 물론 모텔 카운터에 앉아 있으면 그런 사람들이 드물진 않아. 어디 룸 같은 데서 2차로 오는 경우도 있고, 누가 봐도 불륜 같은 사람들이 오기도 해. 보통 한쪽이나 아니면 양쪽 모두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경우가 많고, 괜히 내 눈빛을 피하면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도 많지.


  하지만 그 사람들처럼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없었어.


  남자와 여자 모두 안 좋은 소식이라도 들은 것처럼 우울한 얼굴이었어. 남자는 엄청나게 심각하고 어두운 얼굴이었고,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더라고. 게다가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었는지 두 사람 모두 옷이 흠뻑 젖었더라고. 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지기에 이따 대걸레 가져와서 닦아야 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남은 방이 있나 확인해 봤어. 딱 하나 남아 있더라고. 육백삼호.


  “숙박요.”


  남자가 말하면서 물어보지도 않고 오만 원을 꺼내더라고. 그 때 평일 숙박이 오만 원이었거든.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손님이었지만 아마도 예전에 온 적이 있었나 봐. 만 원짜리 다섯 개를 내미는데 엉겁결에 받아 버렸어. 그러고 나니 방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뭣하더라고. 잠시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육백삼호 키를 내줬지. 남자가 받아들고는 여자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어.


  난 대걸레 가져다가 바닥을 닦았어. 뚝뚝 떨어진 빗물 자국이 정문에서 카운터 앞을 지나 엘리베이터 타는 곳까지 이어져 있었지. 그런데 닦다 보니 빗물만 있는 건 아니었어. 바닥이 갈색 타일이어서 잘 몰랐는데, 잘 보니 뭔가 붉은 물방울이 함께 드문드문 떨어져 있었어. 아무리 봐도 꼭 피 같은 거야. 물을 다 닦아내고 나서 1층 화장실에서 대걸레를 빠는데, 걸레를 한 번 누를 때마다 붉은 물이 흘러나오는 게 어쩐지 되게 섬뜩하더라고. 괜히 신경이 쓰여서 더 이상 붉은 물이 안 나올 때까지 걸레를 꾹꾹 눌러 짰지.


  그 때 인터폰이 울렸어. 룸에서 누가 호출하는 소리였지. 걸레 빨던 거 놔두고 급히 카운터로 뛰어가 확인해 보니 아 씨, 하필이면 좀 전에 올라간 육백삼호인거야. 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 수화기를 들었지.


  “예. 카운터입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여자 목소리였어. 처음에는 잘 못 알아들었지. 목소리가 엄청 작았거든. 꼭 다른 사람 몰래 전화하는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아주 급박한 목소리로 계속 말하더라고.


  “살려주세요. 이 사람이 날 죽이려고 해요. 제발 살려주세요.”


  와 시발, 이게 뭔 일이냐 싶었지. 뭐가 어떻게 된지는 모르겠지만 좀 전에 올라간 남자가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게 아닌가 싶은 거야. 그러고 보니 아까 피 같은 게 떨어져 있던 기억도 나고 해서 등줄기가 서늘해지더라고. 그래도 수화기에 대고 뭐라 말하려는데 갑자기 인터폰이 뚝 끊겨 버리는 거야. 수화기 너머로 침묵만이 흘렀지.


  한 몇 초쯤 가만히 굳어 있다가 정신을 차렸어. 이러다가 큰 일이 나겠구나 싶어 일단 112에 전화부터 했지. 웬 여자가 급히 살려달라고 했다는 말을 하니 오 분 안에 도착한다는 거야. 말이 오 분이지, 그 여자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상황인데 말이야. 전화 끊고 이걸 어떡하나 다시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 결심했어. 내가 가 보기로.


  나는 우선 화장실에 가서 대걸레 자루를 집어 들었어.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이야기지만, 그 때는 무슨 무기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땅한 게 없었거든. 걸레 앞부분을 떼어내고 남은 자루를 몽둥이처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엘리베이터에 탔지. 그리고 6층으로 올라갔어. 엘리베이터 안에도 역시 물이 떨어져 있었는데 바닥을 잘 살펴보니 역시 핏방울이 함께 떨어져 있었지.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나는 내렸어.


  복도는 고요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약한 조명만이 흐릿한 불빛을 비추고 있었지. 나는 육백삼호 문 앞으로 가서 문에 귀를 가져다 댔어. 문이 그렇게 두껍지 않았던지라 방 안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 상당히 크게 틀어놓은 TV소리. 그리고 TV소리 사이사이로 들려오는, 푹푹 하는 기묘한 소리.


  ......아마 뭔가를 연달아 찔러대는 소리.


  제기랄.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나는 살짝 정신이 나갔던 것 같아. 지금이었다면 아마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도망갔을 거야. 아니면 1층에서 경찰들이 오기를 기다렸거나. 하지만 오 년 전의 나는 좀 더 젊었고 좀 더 무모했지. 나는 입술을 깨물고 오른손으로 대걸레 자루를 꽉 움켜쥐었어. 그리고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 항상 가지고 다니던 마스터키를 꺼냈어. 떨리는 손으로 키를 집어넣고 조심스럽게 돌렸어. 딸깍.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소리만을 남긴 채 문이 열렸지.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벌컥 문을 열었어.


  방 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 불은 꺼져 있었지만 TV가 켜져 있어서 그 빛으로 사물을 분간할 수 있었어. 침대 위에 여자가 누워 있었지. 그리고 양복을 입은 남자가 여자의 배 위에 올라탄 채 양손을 모아 연달아 여자의 가슴팍을 내려찍고 있었어. 그 손에 들린 건 분명히 칼이었어. 피가 엄청나게 흘러나와 요와 매트리스를 온통 시뻘겋게 물들였고, 여자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미동조차 없었어. 남자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다 갑자기 나를 돌아보더라고. 눈이 반쯤 뒤집혀 있었어. 하지만 그 모습을 본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


  나는 도망치는 대신 버럭 고함을 질렀어.


  “야, 이 개새끼야!”


  그리고 손에 든 대걸레 자루를 치켜들고 방으로 성큼 들어섰지. 남자가 칼을 쥔 채 후다닥 일어나더니 급히 뒤쪽으로 도망갔어. 그리고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쾅 하고 문을 닫더라고. 나는 잘됐다 싶었어. 그 모텔 화장실은 잠금장치가 없는 구조였거든. 나는 나도 모를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면서 냅다 뛰어가 화장실 문을 힘껏 걷어찼어. 문이 벌컥 열리며 벽에 부딪혀 큰 소리를 냈지.


  그리고 화장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 바로 내 눈 앞에서 화장실로 들어간 놈이 어디로 사라졌단 거야? 나는 혹시 잘못 봤나 싶어서 화장실 불을 켰어. 그리고 안쪽을 가만히 살폈지. 하지만 아무도 없었어. 혹시나 싶어 욕조 속도 들여다보고, 샤워실 안도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어. 창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환풍기래야 너비가 한 뼘밖에 안 되는 물건이니 거기로 도망쳤을 리도 없잖아. 문 뒤나 수건걸이 뒤쪽까지 일일이 살펴봤지만 그 화장실에는 분명 아무도 없었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난 망연자실하게 화장실을 나왔지. 그때야 침대 위에 있었던 여자에게 생각이 미쳤어. 나는 무의식적으로 화장실 불을 끄면서 침대를 봤지. 아까 말했다시피 침대는 흥건하게 흘러나온 피로 온통 물들어 있었어. 그리고 그뿐이었어. 여자도 사라지고 없었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에 힘이 빠졌었나 봐. 대걸레 자루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우당탕 소리를 냈어. 하지만 난 꼼짝도 못하고 굳어 있을 수밖에 없었지. 분명히 내가 봤는데,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남자가 여자를 칼로 내려찍는 모습이 지금도 망막에 선명한데 두 사람 모두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단 거야? 내가 미친 건가? 헛것을 본 건가? 하지만 핏자국은, 그 끔찍한 피범벅은 그대로 선명히 남아 있었어. 나는 검지로 피를 찍어 보았지. 시뻘건 액체가 손끝에 묻어났어. 틀어놓은 TV에서는 무슨 뉴스인가가 나오는 중이었는데 남자 아나운서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어. 멍하게 서 있는 내 귀로 그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또렷하게 들려오더라고.


  “붉고 노란 낙엽을 즐기기 위해 오늘도 많은 등산객들이 화창한 가을 산을 찾았습니다.”


  가을이라니. 지금은 한여름 장마철인데.


  그때 불 꺼진 화장실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어. 나는 뭣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화장실로 몸을 돌렸지. 분명 아까 걷어차 열었던 문이 얌전히 닫혀 있었어. 그 너머에서 뭔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어. 나는 화장실 문으로 다가갔어. 그리고 천천히 손잡이를 돌렸지. 겁이 나서 문을 약간만 열고는 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았어. 불이 켜져 있었고 양복을 입은 남자가 칼을 든 채 세면대 앞에 서 있었어. 세면대 거울에 비친 남자의 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지. 입고 있는 양복은 온통 시뻘겋게 물들어 원래 색을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고, 아직도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칼을 들고 있는 오른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어. 남자는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멍하게 거울을 쳐다보고 있었어. 그러더니 손을 들어 칼을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댔어. 문득 남자의 눈동자가 움직이더니 거울에 비친 나와 눈빛이 마주쳤어. 남자가 살짝 웃고는 잠시, 아주 잠시 망설이더니 곧 손을 움직였어. 칼이 목을 지나가면서 피가 분수처럼 콸콸 흘러나왔어. 곧 남자의 몸이 버티지 못한 채 그대로 주저앉았어. 여전히 피를 내뿜으면서. 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고맙게도 정신을 잃고 말았어.




  나를 깨운 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었어. 카운터에 아무도 없는 걸 보고 바로 육백삼호로 올라왔고 거기서 화장실 앞에서 쓰러진 나를 발견한 거야. 나는 나를 발견한 경찰에게 꼬치꼬치 캐물었고 하나하나 다 확인했어. 남자도 없었고 여자도 없었어. 핏자국도 없었고 칼도 없었어. 매트리스는 티끌 하나 없이 새하얀 상태였어. 그리고 나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홀로 쓰러져 있었지. 옆에는 대걸레 자루만이 떨어져 있는 채. TV는 얌전히 꺼져 있었고 화장실 불도 꺼져 있었어. 그곳에는 그 어떤 흔적도 없었어. 단 하나만 빼고.


  내 검지 끝에는 붉은 액체가 말라붙어 있었어.


  나는 경찰의 부축을 받아 카운터로 돌아왔어. 경찰은 보약이라도 한 채 지어 먹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을 남긴 채 떠났어. 그날 밤새도록 나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쪼그리고 앉아 있었어. 그리고 아침이 되자마자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어. 더 이상은 알바를 못 하겠다고. 사장님은 한참을 침묵하더니 말했어.


  “너도 육백삼호에서 봤냐?”


  모텔로 온 사장님이 예전의 일을 알려 주었어. 사 년 전 가을에 큰 사건이 있었어. 사십대 남자가 이십대 여자를 찔러 죽이고는 스스로 목을 그어 자살한 거야. 조사 결과 두 사람은 불륜을 저지르는 중이었는데 여자 쪽에서 둘 사이의 관계에 회의를 느끼고 이별을 고한 거야. 남자는 처음에는 울며불며 매달렸어. 이혼할 테니 결혼하자고 졸라댔지. 하지만 여자는 거절했어. 그러자 남자는 급기야 여자를 협박하기에까지 이르렀어. 그리고 여자를 협박해 모텔로 들어갔지. 그곳에서 여자를 수십 번이나 찔러 잔인하게 살해한 후 자신도 자살한 거야. 그래. 이 모텔 육백삼 호에서.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느냐고?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 사장님한테 마구 쏘아붙이고, 사장님은 미안하다며 따로 보너스를 두둑히 챙겨 주셨어. 그리고 무슨 무당인가 뭔가 하는 사람을 불러 굿도 한 것 같아.


  나는 그 후로도 모텔 아르바이트를 계속했어. 삼촌의 얼굴을 봐서 그런 것도 있고, 또 그렇게 조건이 좋은 아르바이트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 다만 나는 사장님께 조건을 하나 내걸었어. 아무리 손님이 많이 오는 날이라도 육백삼 호에는 절대 손님을 받지 않는 걸로. 그 이후로는 절대 그 방에 손님을 안 받고 있지. 오늘처럼 손님이 북적이는 주말 밤에도.


  그런데 난 지금 고민 중이야. 어떡하지?


  지금 인터폰이 걸려오고 있어.


  아무도 없을 육백삼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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