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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Jan 05. 2024

주는 것은, 동시에 주지 않는 것

공무원 곰과장 이야기 12

예를 들어 봅시다. 곰과장의 부서에 속한 한 직원이 우수한 성과를 냈습니다. 마침 표창 추천 공문이 내려왔고, 곰과장은 그 직원을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심사를 거쳐 해당 직원이 표창 대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자.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낸 직원은 보상을 받았고 손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걸로 모두가 행복해졌습니다. 그런가요?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직원 스무 명 중 한 사람이 표창을 받았다는 건, 나머지 열아홉 명이 표창을 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 열아홉 명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만을 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가 저 직원보다 연차가 높은데 왜 나를 추천하지 않았지?

-내가 저 직원보다 더 성과를 많이 냈는데 왜 나를 추천하지 않았지?

-내가 보기에 별로 열심히 하는 직원도 아닌데 왜 쟤를 추천했지?

-내가 보기에 상을 받을 자격이 없는 직원인데 왜 쟤를 추천했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남을 과소평가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중간 이상은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내가 받지 못한 것을 남이 받을 때 종종 불만을 품곤 합니다. 그런 불만이 누적되면 조직 전체의 성과에 악영향을 주지요. 그래서 중간관리자 입장에서 누군가에게 보상을 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결정입니다. 누군가에게 보상을 줄 때, 그것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다수 생기니까요. 




일을 잘 하거나 열심히 하는 사람, 성과를 낸 사람에게는 보상을 주어야 한다는 건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이 박탈감을 느끼고 불만을 품게 된다면 꽤나 골치 아픈 일이지요. 그리고 아무리 객관적인 기준과 타당한 이유를 들어 보상받을 사람을 지목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거기 동의할 가능성은 유감스럽게도 0에 수렴합니다. 


톨스토이가 그랬다던가요.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요.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해집니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부서 내 모든 직원의 행복도 합계가 오히려 예전보다 떨어져 버리는 겁니다. 이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결과인가요. 부서원이 표창을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부서에 악영향이 간다니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중간관리자들은 의도적으로 그런 보상들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거나 아예 모른 척합니다. 누구에게 보상을 주든 간에 보상을 받지 못한 직원에게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 아예 공평하게 모두가 안 받으면 된다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논리가 더욱 확장되면 그 유명한 복지부동이라는 괴물이 탄생합니다. 일을 하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일을 안 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일을 안 해도 월급은 나온다. 그러니까 결론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


타당한 논리죠. 그래서 끔찍한 논리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일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도 닮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과 타인을 비교합니다. 하지만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적습니다. 반면 자신보다 나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요. 이러한 불만의 누적은 종종 사회나 체제 전체를 뒤엎어버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관리자는 보상을 줄 때도 매우 주의깊어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상을 줄 때, 그것을 받지 못한 다른 누군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 글에서 행동주의 심리학에 대해 언급했었지요. 누군가에게는 '강화'인 것이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는 '처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말이지 중간관리자 노릇은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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