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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Sep 10. 2019

삼국시대의 장군 칭호

삼국지 토막지식 05

  군사를 이끌 권한이 주어진 무관을 장군(將軍)이라 합니다. 한나라 시절에 가장 높은 무관은 대장군(大將軍)이었고 그 아래에 차례대로 표기장군(驃騎將軍), 거기장군(車騎將軍), 위장군(衛將軍)이 있습니다. 이들은 시대에 따라 달랐지만 대체로 삼공과 비슷한 높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부를 열고(開府) 속관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국회의원들이 직접 직원을 채용해서 의원실을 운영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 아래 있는 장군들이 전장군(前將軍), 좌장군(左將軍), 우장군(右將軍), 후장군(後將軍)입니다. 이른바 사방장군(四方將軍)으로 칭해지는 경우가 많지요. 이들의 관질은 2000석입니다. 여기까지가 상설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장군을 싸잡아 잡호장군(雜號將軍), 즉 기타 여러 장군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한나라의 군사 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한나라에서는 기본적으로 각 군에 군사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태수가 이들을 지휘하여 치안을 유지하거나 침입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원정을 떠나거나 대대적으로 방어전을 펼쳐야 할 때는 중앙군을 동원해야 했지요. 그때마다 중앙정부에서는 특정인을 장군으로 임명하여 군사를 맡겼는데 그때 장군직의 칭호를 이런 식으로 정했습니다. 


 - 남쪽을(南) 정벌하는(征) 장군이니까 정남장군(征南將軍)   
 - 오랑캐를(虜) 토벌하는(討) 장군이니까 토로장군(討虜將軍)
 - 동쪽을(東) 평안하게 하는(平) 장군이니까 평동장군(平東將軍)


  간단하지요?


  그래서 이런 잡호장군들은 모두 비상설직이었고, 임무를 마치고 나면 그 지위를 파했습니다. 하지만 후한시대 말기를 거쳐 삼국시대로 넘어가면서 그러한 상황에 큰 변화가 생깁니다. 워낙 전쟁이 잦다 보니 수도에 있는 중앙군 말고도 각 지역 거점에다 상비군을 주둔시켜야 할 필요가 늘어난 거지요. 그래서 동서남북으로 각기 사진장군(四鎭將軍)이나 사정장군(四征將軍) 등을 상설화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진(鎭)은 지킨다는 뜻입니다. 보통 적의 침입을 막거나 반란군을 진압하는 것이 임무일 경우에 붙였습니다. 정(征)은 정벌한다는 뜻으로 이민족을 공격하거나 할 때 붙였지요.)


  특히 위나라는 조진이나 조휴 등 황실의 친족들이 이러한 지위에 임명되어 각 지역의 군사들을 통솔하며 군권을 장악했습니다. 그렇기에 사진장군과 사정장군의 지위를 두 차례나 격상시켜서 조비의 대에 이르러서는 심지어 사방장군을 능가하고 삼공에 버금갈 정도가 되었지요. 그중에서도 사정장군이 사진장군보다 더 높았습니다. 그리고 지방군이 중요시되다 보니 반대로 기존의 표기장군, 거기장군, 위장군, 사방장군 등은 반쯤 명예직이 되어 버립니다. 비록 지위는 존귀하지만 실권은 없는 거죠. 


  그러나 한나라의 제도를 거의 그대로 따른 촉한은 사진장군과 사정장군의 지위가 그렇게 높지 않았습니다. 양자 간의 우열도 서로 동등하거나 혹은 오히려 사진장군이 높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신 지위가 높은 자에게는 대(大)자를 붙여 주었는데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위연이나 진북대장군(鎭北大將軍) 왕평 등의 사례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위나라의 사정장군에 버금가는 높은 지위로 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유비는 촉한을 건국하기 전에 익주를 차지한 후 부하들에게 장군 칭호를 대량으로 뿌리기도 했습니다. 미축, 손건, 간옹, 이적 등 누가 봐도 전쟁과는 아무 관련 없는 문관들이 다들 장군에 임명되었는데요. 이는 유비 나름대로 부하들의 명예를 높여준 방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그들이 직접 병사를 지휘하는 일은 없었지요. 


  마지막으로 손권의 경우는 조금 특이한 경우입니다. 조조는 승상도 부족해서 공(公)을 거쳐 왕(王)에 올랐고, 유비는 후한의 좌장군으로 비록 명목뿐이나마 고위직이었던 데다 나중에는 왕을 거쳐 황제를 자칭하였지요. 반면 손권은 관우를 죽이고 형주를 차지할 때까지도 단지 잡호장군인 토로장군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기에 부하들에게 높은 지위를 내릴 수 없었죠. 부하의 벼슬이 주군보다 높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래서 장군보다 낮은 중랑장(中郎將)이라는 칭호를 자주 활용했지요. 무봉중랑장(武鋒中郎將) 황개나 탕구중랑장(盪寇中郎將) 능통 등의 사례가 있습니다. 이후 손권의 세력이 커지고 벼슬 또한 덩달아 높아지자 차츰 손권의 부하들도 그럴듯한 장군 칭호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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