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곰과장 이야기 22
엄격한 연공서열을 따른다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공무원 조직은 ‘나보다 나이 어린 상사’를 의외로 자주 만날 수 있는 특이한 조직입니다. 고시(정식 명칭은 5급 공개경쟁채용)라는 제도의 존재 때문입니다. 9급으로 입직한 공무원이 5급까지 올라가는데 걸리는 기간은 무려 20년 이상입니다. 조직마다 편차가 크지만 2020년 기준으로 국가직 평균이 26년 8개월이었고 지방직은 24년 2개월이었습니다. 고시에 합격하면 단번에 이 기간을 뛰어넘을 수 있죠.
그런데 고시를 통해 들어오는 공무원의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2025년 국가공무원 선발 기준으로, 5급 공채 합격자는 행정직과 과학기술직을 합쳐 313명입니다. 7급은 639명, 9급은 4318명입니다. 전체 신규 채용 중 대략 6% 정도가 5급 공채인 셈입니다. 이들은 대부분이 중앙부처로 가지만 일부는 광역지자체로도 갑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5급 행정고시에 갓 합격한 20대 청년이 첫 발령으로 동장에 임명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직급으로만 따지면 그게 맞으니까요. 요즘은 대체로 실무를 담당하는 실무사무관부터 시작합니다만.
그러다 보니 중앙부처에서는 30살 된 팀장 밑에서 50세 주무관이 일하는 모습이 그다지 드물지 않습니다. 고시 출신이 상대적으로 많이 가는 수도권 광역지자체에서도 종종 보이며, 여타 지방 광역지자체에서는 간혹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기초지자체에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앞선 글에서 설명했던 ‘승진길을 막는’ 구조가 작용하다 보니, 고시 출신들은 국장급 이상 고위직으로 기초지자체에 잠시 인사교류를 갔다가 돌아오는 정도일 뿐이지 오래 눌러앉아 있지는 않습니다.
고시 출신과 비고시 출신 간의 간극이 생기는 건 필연적입니다. 머릿수로 대다수를 차지하는 9급 출신들은 이른바 간부진에 고시 비율이 너무 높다고 투덜거리곤 합니다. 고시 출신들은 그러면 너희도 고시 치지 그랬냐는 반응을 보입니다. 7급 출신은 숫자도 얼마 안 되고 직급도 애매해서 아예 논외인 경우가 많습니다. 기관마다 사정이 다르니만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중앙정부에서는 고시 출신들의 힘이 훨씬 강합니다. 일단 국장급 이상 고위직을 대부분 고시 출신이 장악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머릿수도 꽤 되니까요. 수도권 광역지자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고시 출신의 숫자 자체가 워낙 적은 지방 광역지자체에서는 오히려 밀리는 편이지요.
뭐, 이건 사실 고시라는 제도 자체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비고시 출신이지만 고시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게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애초에 그러라고 만들어 놓은 시험이거든요. 꼬울 거였으면 저도 고시 쳤어야죠.
여하튼 이러한 이유로 해서 공무원 조직은, 연공서열을 중시하면서도 상사와 부하 간의 나이가 역전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 특이한 조직입니다. 9급이 5급 다는 데 26년이 걸린다는 건, 중앙정부 기준으로 26세 팀장과 52세 팀장이 동등한 위치에서 일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한 부서를 이끄는 과장이 휘하 팀장들보다 나이가 어린 건 딱히 희한한 일도 아닙니다. 조직의 구성원 개개인의 견해와는 다르겠지만, 다양성과 활력이라는 측면에서 조직 자체에는 장점이 더 많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자주 있는 일이라 해서 쉬이 익숙해지는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나이의 고저에 따른 상하관계에 워낙 예민한 국가이지 않습니까. 고작해야 한두 살 차이를 가지고도 형이니 언니니 하고 민감하게 따지는 나라입니다. 몇 살 어린 사람이 반말했다는 이유로 주먹다짐까지 벌어지죠. 그런데 자기 조카나 심지어 자식뻘에 가까운 상사가 기꺼울 리 있겠습니까. 당연히 싫겠지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저조차도 주무관 시절 업무 협조를 구하러 갔다가 만난 25살 팀장님의 모습과, 그 순간 떠올랐던 복잡한 감정을 아직 잊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유교 사회 쯧쯧쯧’ 하고 혀를 찰 일은 아닙니다. 나이의 차이는 단순히 살아온 세월뿐만이 아니라 업무 경험의 차이기도 합니다. 특히 실무 경험의 차이가 극심하죠. 대부분의 고시 출신들은 실무를 뛰어본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서로 부딪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중앙정부 정책의 세부적인 사항은 대부분 고시 출신들의 손에서 결정되는데, 이들이 일선 현장 경험이 아예 없다 보니 문제가 생기곤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에 보도된 토지거래허가구역 관련 지침 건입니다. 국토부에서 만든 지침이 현장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이었던 탓에 지자체 실무자들에게서 많은 우려 제기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에서는 강행했고, 결국 예상했던 문제가 그대로 터졌습니다.
그럴지라도 저는 고시 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는 편입니다. 모든 중간관리자가 죄다 장년층인 조직이라는 건 좀 그렇잖아요. 고시 출신이 없는 기초지자체 단위에서는 모든 부서장이 50대 중후반인 경우가 흔해 빠졌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지 않습니까. 조직이 이렇게 늙어버리면 안됩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보다 어린 상사의 존재는, 나 개인의 고까움과는 무관하게,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필요하다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