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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Sep 22. 2019

간옹,
제멋대로지만 밉지 않은 큰형님

삼국지의 인물들 12

  간옹은 자(字)를 헌화(憲和)라 합니다. 유비와 같은 유주 탁군 출신이죠. 탁군이 현대 중국에서는 수도 베이징 일대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만 당시에는 중원에서 꽤나 떨어진 시골이었습니다. 그런 고향에서 유비와 어릴 적부터 어울려 지낸, 그야말로 동네 친구라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유비가 거병했을 때 간옹 또한 관우, 장비와 함께 그를 따랐지요. 종종 유비의 의논 상대가 되어주었고 때로는 사자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간옹은 성격이 좋게 말해서 자유분방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제멋대로인 데다 오만방자했습니다. 아무리 유비의 고향 친구라지만 따지고 보면 엄연히 주군과 부하의 관계이지 않습니까. 그런 위계질서와 예의범절을 무척이나 중요시하던 시대이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유비 앞에서 다른 자들이 모두 단정하게 앉아 있을 때 간옹만은 홀로 두 다리를 쭉 뻗고 몸을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고 합니다.  

      

  주군인 유비 앞에서도 그러했을진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어떠했겠습니까. 기록을 보면 그나마 제갈량에게는 대우를 해 준 것 같습니다만, 그 이하의 관리들 앞에서는 숫제 자리에 드러누워 베개를 베고 말을 했다 하니 정말이지 무례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간옹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는 대책 없는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유비가 처음 익주에 갔을 때 간옹도 함께 있었는데 유장이 그를 무척이나 높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종종 유비의 사자로 활약하기도 했지요. 그러니 적어도 공식적인 외교 석상에서는 자리에 걸맞게 행동할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하기야 그런 자리에서까지 무례하게 구는 작자였더라면 그때껏 살아남지도 못했겠지요. 간옹은 안에서 새는 바가지였을지는 몰라도 밖에서까지 새는 바가지는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유비는 반평생 천하를 누비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몇 차례나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실패할 때마다 그야말로 거지꼴이 되어서 도망치기 일쑤였지요. 게다가 유비의 휘하에 있었던 자들은 다들 개성이 엄청나게 강해서 서로 융화되기 어려울 지경이었는데, 보통 이런 조직은 평상시에는 멀쩡해 보여도 위기에 처했을 때는 모래성처럼 붕괴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유비의 부하들은 실로 놀라울 정도의 결속력을 보여 주며 그 어떤 위기가 있더라도 한마음 한뜻으로 계속 유비를 따랐습니다. 저는 그게 간옹이 그 특유의 소탈한 성품으로 마치 큰형님처럼 중심축 역할을 해준 덕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또 간옹은 우스개에 능했는데 때로는 그런 농담을 통해 유비를 슬쩍 깨우쳐 주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유비가 익주를 차지한 후 금주령을 내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관리들이 순찰을 돌다가 한 집에서 술 빚는 도구를 발견하고는 술을 만든 걸로 간주해서 형벌을 내리려 들었습니다. 이때 간옹이 유비와 함께 돌아다니다가 한 남녀를 발견하고는 느닷없이 유비에게 말했지요.  

  “저들이 음란한 짓을 하려 하는데 어째서 잡아 가두지 않습니까?” 

  유비가 의아해하며 물었지요.  

  “그대가 그걸 어찌 아시오?” 

  그러자 간옹이 천연덕스레 대답했습니다.  

  “음란한 짓을 하는 도구를 가지고 있으니 음란한 짓을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성기가 달려 있는 것만으로도 음란한 짓을 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술 만드는 도구를 가지고 있다 해서 무조건 술을 만들었다고 간주하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걸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말한 것이지요. 유비는 너털웃음을 짓고는 즉시 술 만드는 도구의 주인을 사면했다고 합니다. 간옹은 이런 부류의 골계에도 능한 인물이었습니다. 

      

  유비를 따라 천하를 주유하며 갖은 고생을 겪었던 간옹은 유비가 익주의 주인이 된 이후에야 비로소 영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유비는 간옹을 소덕장군(昭德將軍)에 제수하고 미축의 아래, 손건과 이적 등과 같은 반열에 올림으로써 그간의 노고에 보답하지요.  

      

  간옹은 안타깝게도 부귀영화를 오랫동안 누리지 못하고 몇 해 후 사망합니다. 하지만 주군의 동네 친구이자 막료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 그는 이른바 간손미의 일원으로만 평가절하할 수는 없는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간옹을 보면 유비의 배포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자신의 면전에서도 제멋대로 구는 간옹을 단지 자신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보아 넘긴 것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유비가 그렇게 공사를 구분하지 못했더라면 다른 부하들이 진즉에 불만을 품었을 테니까요. 그보다는 간옹의 능력과 조직 내에서의 역할을 인정해 주었기에 관대하게 보아 넘겼다는 게 더 올바른 추측일 겁니다.


  다시 말해서, 무례하고 오만방자한 인물도 그만한 능력이 있다면 포용할 수 있었단 거지요. 그래서 저는 유비가 진정 황제의 관을 쓸 만한 자격이 있었던 군주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런 관점에서 보면 간옹이야말로 진정 주인을 잘 만난 셈이지요. 예컨대 원소나 여포 휘하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진즉에 목이 달아났을 테니까 말입니다. 하기야, 간옹쯤 되는 인물이면 애초에 누울 곳을 보고 다리를 뻗긴 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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