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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Aug 27. 2019

이회,
다재다능한 행정가이자 장수

삼국지의 인물들 05

  자가 덕앙(德昂)인 이회는 익주 건녕군 출신입니다. 원래 독우라는 보잘것없는 벼슬을 하다가 하필 고모부인 찬습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연좌되어 파면당해 버렸지요. 하지만 그 고모부가 나름대로 방귀깨나 뀌던 사람이었던 덕분에 그는 다시금 벼슬길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임명장을 받으러 성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대격변이 생깁니다. 유장을 도우러 왔다던 유비가 칼 끝을 반대로 겨누어 유장 공격에 나선 것이죠. 이때 이회는 뛰어난 판단력을 발휘합니다. 이 전쟁에서 반드시 유비가 승리할 것이라 생각하고는 방향을 바꾸어 그를 만나러 간 겁니다. 그리고는 덥석 항복하지요. 뜻하지 않은 항복에 기뻐한 유비는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이회가 자신을 수행하도록 지시합니다. 


  이후 마초가 곤궁에 빠져 장로에게 의탁하고 있을 때, 유비는 이회를 파견하여 마초를 회유합니다. 아마도 말솜씨가 좋았던 모양입니다. 이 중대한 임무를 이회는 성공적으로 완수해내지요. 마초는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유비에게 항복했습니다. 


  유비는 마침내 익주를 평정한 후 이회를 익주의 공조서좌주부(功曹書佐主簿), 즉 요즘으로 치면 인사담당 비서관 정도로 임명합니다. 이후 이회는 모종의 반란 음모에 엮여 체포되기에 이르지만 유비가 이회의 결백함을 밝히고는 오히려 그를 별가종사(別駕從事), 즉 익주목인 자신의 수석 보좌관이자 주(州)의 이인자 자리로 승진시키기까지 하지요.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면 유비가 그의 능력을 몹시 높게 보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연의에서 묘사된 것처럼 단지 말발로만 먹고 산 사람은 아니었다는 거죠. 물론 말솜씨가 대단하긴 했습니다만. 




   하지만 이회의 진정한 능력은 오히려 그 뒤에 나타납니다. 당시 익주의 남부 일대는 남중(南中)이라고 불렸는데, 삼국지연의에서 흔히 [남만 지역]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입니다. 이곳은 이민족들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 오래도록 터 잡고 살아온 호족들의 세가 여간 크지 않아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지역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남중에서도 특히 세력이 강성했던 건녕군(당시의 명칭은 익주군)의 대호족 옹개는 유비에게 대 놓고 반감을 드러내며 손권과 손잡기까지 하는 형편이었죠. 그래서 유비는 익주목이 된 후 내항도독(庲降都督)이라는 직책을 두어 남중의 여러 군현들을 총괄하도록 했습니다. 이 내항도독은 여러 이민족들을 잘 다스리는 정치력과 반란을 진압하는 군사적 능력을 겸비해야만 하는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221년. 내항도독 등방이 세상을 떠나자 유비는 이회를 불러 질문합니다. 

  “누가 등방을 대신할 수 있겠소?”

   그런데 이회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공자께서도 ‘사람을 임용할 때는 그 그릇을 헤아려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군주가 현명하면 신하 된 자도 마음을 다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조충국은 선령강족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이 늙은 신하만 한 인물이 없습니다.’라고 한 게 아니겠습니까. 신은 감히 스스로의 재능을 평가할 수 없으니 폐하께서 살펴 주십시오.”


   순식간에 옛 고사를 둘씩이나 끌어다 쓰는 솜씨도 그렇거니와 그 말솜씨는 더더욱 걸작입니다. 자기 생각에는 자기만 한 인재가 없으니 얼른 내항도독으로 임명이나 해 달라고 채근하는 거죠. 이 얼마나 능글맞은 사람입니까. 하지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유비가 굳이 자신을 불러 이걸 물어보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이회가 아니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유비는 껄껄 웃으며 말하지요. 

  “사실 내 뜻은 이미 그대에게 있었소.”


   이회는 내항도독에 임명되어 남쪽으로 파견됩니다. 행정적인 능력이야 여러 벼슬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검증받았지만 군사적 능력은 단 한 번도 확인된 적이 없었던 걸 감안하자면 파격적인 인사였죠. 그러나 훗날 이 인선은 매우 적확했던 것으로 밝혀집니다.




   223년에 유비가 세상을 떠나자 옹개는 이민족의 수령 고정, 장가태수 주포, 호족 맹획 등을 포섭하여 일거에 반란을 일으킵니다. 제갈량은 225년에 이들의 반란을 진압하려 출병하죠. 이때 제갈량 자신이 이끄는 군사는 월수군의 고정을 공격했고 마충이 따로 일군을 이끌고 장가군의 주포를 쳤습니다. 그리고 반란의 주모자이자 가장 강한 상대인 옹개와 대적한 자는 바로 이회였습니다. 


  하지만 이회는 미처 제갈량의 본대와 합류하기 전에 두 배가 넘는 적들에게 포위당해 버리고 맙니다. 여기서 또다시 그의 말솜씨가 빛을 발휘합니다. 그는 반란에 참여한 지역의 호족과 수령들에게 간곡하게 말하죠. 

  “제가 건녕군에서 태어났으니 우리 따지고 보면 같은 지역 출신 아닙니까. 전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거든요. 그런데 듣자니 제갈량의 군사들은 식량이 떨어져 귀환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이제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네요. 그러니 우리 서로 친구 먹고 친하게 지냅시다! 한 번 믿어보라니까요? 저 진짜 여러분 편이에요!”


   이 말에 적들은 넘어가서 포위를 느슨하게 풀어 버립니다. 이회는 즉시 출격하여 적들을 대파하고 추적하여 박살 낸 후 제갈량과 연합하죠. 그래서 제갈량의 남만 평정에서 수위로 꼽히는 전공을 거두고 안한장군(安漢將軍)으로 승진까지 합니다. 연의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그의 최대 공적입니다. 


   이후 제갈량이 성도로 돌아간 이후에도 이회는 계속 남쪽에 남아 후방을 책임졌습니다. 또다시 반란이 일어나자 직접 토벌에 나섰고, 유력한 호족들을 아예 성도로 이주시켜 후환이 없도록 했습니다. 게다가 수족과 복족 등 이민족들에게 소와 말과 금과 은 등을 세금으로 거두어 수도로 보냄으로써 군용물자에 부족함이 없도록 했으니 그로 인해 제갈량은 북벌을 감행할 자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회는 거의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남중 일대를 성공적으로 통치합니다. 이후 내항도독은 촉나라 중후기의 명장인 장익과 마충이 차례대로 맡게 되지요. 이렇듯 오래도록 남중을 평안하게 하며 말 그대로 촉한을 안정시킨 장군(安漢將軍)인 이회의 공로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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