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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Sep 19. 2019

종요,
가장 존경받았던 호색한

삼국지의 인물들 11

  종요는 자를 원상(元常)이라 하며 예주 영천군 출신입니다. 151년생으로 조조보다도 네 살 많지요. 조조의 초창기 기반이 된 이른바 영천 호족의 일원인데 순욱, 순유, 진군, 곽가, 두습 등 쟁쟁한 인물들이 모두 이곳 출신입니다. 


  종요가 중앙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 이각과 곽사가 난을 일으켜 황제를 겁박하고 전횡을 저질렀지요. 종요는 그들을 설득함으로써 조조에게 유리한 행동을 하게끔 합니다. 얼마 후 황제가 궁을 탈출할 때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이런 연유로 조조는 그를 매우 좋게 보았습니다. 


  관중 일대에서 마등과 한수를 비롯한 여러 군벌들이 서로 치고받자 조조는 종요를 보내 그 혼란한 상황을 수습하도록 합니다. 종요는 그들을 잘 구슬려서 돌려보냈을 뿐만 아니라 그 아들들을 중앙에 들여보내 벼슬살이를 하도록 설득하지요. 말하자면 자발적으로 인질을 보내도록 한 셈입니다. 앞서 이각과 곽사를 구슬린 것도 그렇고, 말로 남을 설득하는 능력이 실로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이후 조조가 관도에서 원소를 대적할 때는 말을 무려 2000 필이나 보내주기도 합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던지 조조가 무려 소하에 빗대어 이렇게 칭찬할 정도였죠. 

  “지난날 소하는 관중을 지키면서 (한 고제 유방에게) 군량미와 군사를 충분히 공급해 준 바 있소. 그대 또한 마찬가지요.”


  또 원상이 보낸 곽원을 하동에서 격파하고, 또 반란을 일으킨 위고를 공격해 진압하는 등 군사적인 능력도 보여줍니다. 사람을 설득할 줄도 알고, 후방에서 물자를 공급해 주기도 하며, 직접 군사를 이끌기도 하니 실로 다재다능한 사람이군요. 심지어 서예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해서(楷書)를 확립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조조가 위왕(魏王)이 된 후 종요를 대리(大理)라는 직위에 임명했다가 다시 상국(相國)으로 올립니다. 조비가 황제가 되자 정위(廷尉)가 되는데 중2000석의 고위직으로 요즘으로 치면 법무부 장관쯤 되는 자리입니다. 조비는 그를 가리켜 나라의 울타리이자 모든 관리들의 모범이라고 극찬할 정도였지요. 


  이후 삼공의 일원인 태위(太尉)로 승진하고 조예의 대에 이르러서는 황제의 스승에 해당하는 최고 명예직인 태부(太傅)가 됩니다. 그런데 종요는 어렸을 때부터 자주 병에 걸려 건강이 안 좋았습니다. 또 이때는 이미 나이가 여든에 가까웠기에 거동하기조차 힘들 정도였지요. 그래서 황제는 그에게 가마나 수레를 타고 와서 조회에 참석할 수 있는 특권을 내리기까지 합니다. 그만큼 훌륭한 신하로 인정받은 거죠. 




  그런데 이 당대의 명신 종요는 또한 여색을 밝히는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우선 그는 75세에 아들 종회를 보았는데, 그때 첩실이었던 정창포의 나이가 27세였습니다. 무려 48세 차이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걷기도 힘들었다는 양반이 정말 대단하네요.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뒤이어 그는 정창포를 위해 그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정실 손씨를 쫓아내려 합니다. 보다 못한 조비의 친모 무선황후 변씨가 그걸 막았습니다. 황태후가 직접 나섰을 정도면 종요가 얼마나 요란스럽게 일을 벌였는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이 ‘모든 관리들의 모범’이라는 평까지 받은 칠십 대 후반의 지체 높은 어르신께서는,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화가 난 나머지 독을 먹고 한바탕 자살극을 벌이기까지 했습니다. 그 고집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황제인 조비조차도 결국은 네 맘대로 하라고 포기할 정도였지요. 


 [참고자료]  https://brunch.co.kr/@gorgom/16


  그리고 종요와 젊은 여자가 얽힌 다음과 같은 야사도 있습니다. 


  이야기인즉슨, 종요가 비교적 젊었던 시절에 건강이 나빠져서 몇 달 동안이나 조회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유를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하는 겁니다. 

  “무척 아름다운 여자가 매일 밤마다 찾아와 동침하기에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자가 깜짝 놀라서 귀신이 틀림없다고 말하지요. 흐음. 질투가 나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긴 합니다만 아무튼 종요는 그 말을 듣고 대비를 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여자가 찾아오자 숨겨 두었던 도끼를 들어 허벅지를 내려치지요. 여자가 도망치고 날이 밝자 종요는 핏자국을 따라가 봅니다. 그랬더니 그 끝에 거대한 무덤이 있고 관 안에는 마치 살아 있는 것만 같은 시체가 누워 있더라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까지 생겨났을 정도면 종요의 여자 밝힘증이 당대에도 이미 얼마나 유명했는지 알 만하지 않습니까. 아마도 삼국지 전체를 통틀어서도 종요만큼이나 여색을 밝혔던 이는 그의 주군이었던 조조가 유일할 겁니다. 




  종요는 참으로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모든 관리로부터 추앙받은 가장 높은 신하였지요. 해서체를 정립하여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예술가이기도 했습니다. 군사를 지휘해 적들을 격파한 장수였으며, 법과 형벌을 관장한 근엄한 관료이기도 했습니다. 물자를 확보하여 공급함으로써 후방 행정 업무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고, 뛰어난 말재주로 상대를 설득하여 무력을 쓰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얻어낸 달변가였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75세의 나이에도 마흔여덟 살이나 어린 첩을 보아 심지어 자식까지 낳은 당대의 호색한, 위대한 정력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종요는 오늘날에도 일부 컬트적인 지지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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