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1)

단편

by 글곰

(1)


아마도 그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기 때문이리라.


느지막한 저녁 시간이었고 손님은 거의 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굳이 손바닥만 한 동네 서점을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서점 문을 닫지 않은 건 그날이라 해서 딱히 별다른 볼일이 있지는 않아서였다. 또 그 작은 서점이 내 생계를 꾸려가는 유일한 수단인 까닭이기도 했다. 하릴없이 노느니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보자는 심정으로 나는 서점 문을 열었고, 그날 온종일 소설 한 권과 시집 두 권을 팔아서 대충 백반 한 끼니를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었다.


다행이라고까지 할 일은 아니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녀석은 언제나처럼 매대 안쪽의 좁은 공간에 쭈그리고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녀석이 들고 있는 책은 그 고사리처럼 가늘고 작은 손에 어울리지 않게도 팔백 쪽에 달하는 코니 윌리스의 두툼한 장편이었다.


작은 서점이라 해서 어린이용 책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요즘처럼 아이들 책이라면 죄다 비닐로 꼼꼼하게 포장해서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는 인정머리 없는 시절도 아니었다. 그러나 녀석은 서점 구석진 곳에 꽂힌 오륙십 권쯤 되는 아동용 도서를 최소한 다섯 번 이상씩은 읽은 후였다. 결국 녀석의 다음 선택은 일반 소설이었고, 첫째 단에서부터 네 번째 단 사이에 꽂혀 있는 소설들을 하나씩 뽑아서 독파하기 시작했다. 그 위까지 손을 뻗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손이 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고작해야 열 살을 간신히 넘긴 꼬마가 그런 책들을 읽어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녀석은 내 생각보다 좀 더 똑똑했든지 아니면 좀 더 어른스러웠던 모양이다. 하루하루 날짜가 흐를 때마다 녀석이 읽어치운 책이 한 권씩 늘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고를 정리하면서 위쪽에 꽂혀 있는 책을 아래쪽으로 옮겨 놓는 것이 나의 주요한 업무가 되었다.


그날도 평소와 같았다. 언제나처럼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에 녀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붙임성 없는 태도로 고개를 까딱여 인사한 후 소설 코너로 걸어갔고, 잠시 시간을 들여 책을 고른 후 매대 안으로 들어와서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책에다 코를 박았다. 그리고는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움직이지 않은 채 독서에 열중했다. 그리고 나 또한 손님이 없을 때는 항상 그러하듯 매대에 몸을 기댄 채 책을 읽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도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그날도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녁시간이 되었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힐끗 쳐다본 녀석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후 책을 덮었다. 워낙 분량이 많은 책이었고 녀석이 읽는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았기에 대략 절반 정도만 읽은 상태였다.


“그거 재미있냐?”


나는 언제나 그랬듯 무성의하게 물었다. 그리고 녀석도 나만큼이나 심드렁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럭저럭요.”


일 년 가까운 시일 동안 녀석을 지켜본 경험에 따르면, 그건 무척 재미있어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는 뜻이었다.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몇 시간이나 붙어 있었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그리고는 책을 가져다 놓으려 책장으로 걸어갔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갑작스러운 변덕 때문에 나는 입을 열었다.


“잠깐만.”


녀석이 나를 돌아봤다. 나는 녀석이 들고 있는 책을 가리켰다.


“그거 가져가.”


녀석이 의문스러워하는 표정이었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선물이야.”


여전히 말이 없었기에 나는 덧붙였다.


“크리스마스잖아.”


녀석이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곧 영리한 꼬마답게 행동했다.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후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한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녀석은 품에 책을 꼭 끌어안은 채 돌아갔다. 그로써 나의 크리스마스 이브 결산은 적자로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