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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고리 Sep 01. 2022

엄마와 호박




"글쎄,,, 호박을 다 따 갔어."

"뭐라고?"

"지난주에 호박이 13개가 있었는데, 아직 딸 때가 아니어서 그냥 두고 왔는데, 오늘 갔더니 5개만 남고 누가 다 따갔어."

"..."



엄마는 친한 지인분과 함께 주말 농장과 비슷한 개념의 농사를 지으신다.  

일주일에 2-3번 정도 부추, 고추, 고구마, 감자, 호박, 파 등등 가실 때마다 이것저것 많이 심으시고, 또 많이 가져오신다. 

밭에 다녀오실 때마다 부추를 가져오셔서 대체 이 부추는 언제까지 먹어야 하냐고 애먼 소리도 하지만, 요즘처럼 야채값이 비싸질 때 이런 채소들은 복덩이들이다. 엄마가 농사를 지으신 후로는 야채들을 살 일이 없으니까 말이다.



지난번에 밭에 다녀오시던 날, 엄마가 당황해하시면서 누가 호박을 다 따 갔다고 하셨다. 

"아직 애기 호박들이어서 일주일 더 키워서 따려고 두고 온 건데...... 이것 말고도 저 쪽에 있던 단호박과 길쭉한 호박도 전부 다 따 갔어."



예전에 시골에서는 서리라는 개념으로 농작물을 따가는 풍습이 있다고 들었다. 설마 본인들은 서리라고 한 건가? 1-2개 가져가면 그래 뭐 서리라고 해 줄 수 있는데, 13개 중에 8개를 가져간 건 그냥 절도지요... 남은 5개도 호박 넝쿨에 가려서 잘 안 보였다고 했다. 그러니까 5개를 남겨둔 게 아니라 보이지 않은 5개를 못 찾아서 못 훔쳐간 것. 



지난 달인가 집 앞 화단에 돼지감자 심어놓은 것을 전부 캐간 어떤 사람들에 대한 영상을 뉴스에서 본 적 있다. 그걸 보면서 "아니 무슨, 남의 집에 심어놓은 감자를 캐서 훔쳐 가지.... 황당하다. " 이러면서 뉴스를 보았는데 이런 일이 우리에게 벌어지다니 엄마가 속상하신 거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밭에 한 번 다녀오실 때마다 모기에게 30-40군데씩 물려서 오시면서도 아파트의 지인분들, 내 친구들 나눠주시는 재미에 열심히 농사 지으시는 건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홀랑 다 따가버렸네. 



그래도 엄마는 지난 주말에는 모기와 사투를 벌이며 배추를 심고 오셨다. 이 배추들은 무사히 주인의 품에 안기길. 배추의 무사귀환까지 바라야 하다니 세상이 너무 무서워졌어. 



#백일백장 #책과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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