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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고리 Oct 01. 2022

카페

카페라는 공간은 아이러니하다.

혼자 있을 곳이 필요했던 나는 집에서 나와 집 앞 단골 카페의 한 모퉁이 자리에 앉아 아이패드를 꺼낸다. 분홍 키보드를 연신 두드려대면서 나의 생각과 나의 기분을 모두 뱉어낸다. 오늘 일어난 일들, 그 일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누구의 생각이 합리적이었는지 따위의 글을 적다가 별 의미 없는 분석이라는 생각을 또 적어본다. 그래, 두 사람의 다툼에서 누가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지,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는 게 의미가 있는지와 같은 생각은 정말로 바보 같은 생각이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나의 기분을 모두 토해내고, 나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화가 나 있는 나를 달래고, 나와 화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왔다. 가장 은밀하고 가장 혼자만의 공간인 집의 내 방을 떠나서, 다수의 타인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어쩌면 더 은밀하고 혼자일 수 있는 카페로.


정말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화가 났을 때, 평소에는 겁나서 먹지 못했던 캐러멜 마끼아또를 주문한다. 나는 커피를 조금 늦게 마신 축에 속했다. 대학 때는 아예 마시지 않았고, 사회에 나오고 나서야 조금씩 커피를 마셨는데, 그때 마신 게 캐러멜 마끼아또였다. 사회 초년생 때의 마끼아또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마신 음료가 아니라 아메리카노나 카페라테 같은 커피들이 너무 써서 마실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커피였을 뿐이다. 그리고 이 때는 칼로리나 살찔 것에 대한 걱정을 별로 안 하던 시기였기에 원대로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끼아또를 마시려면 살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어서, 평소에는 선뜻시키지 못한다. 그러다가 완전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이미 스트레스를 받아서 빠져나간 에너지를 충당이라도 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로 당연하게 마끼아또를 시키는 거다.


지금 내 앞에는 캐러멜이 듬뿍 올라가 있는 마끼아또가 있다. 캐러멜의 진한 향이 코 끝을 간질인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허리둘레가 1인치씩 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오늘만은 예외다. 마끼아또 한 모금 마시고, 나의 나쁜 기분 한 숨 토해내고, 한 모금 마시고, 한 숨 토해내고를 무한 반복한다.


이 마끼아또를 다 마시고 갈 때쯤에는 나와의 화해를 끝내고, 그다지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집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타인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백일백장 #책과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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