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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Apr 17. 2023

라인강의 기적은 다음으로, 쾰른

독일의 라인강을 달리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 쾰른. 지난 3주간 날씨가 들쑥날쑥하다가 모처럼 화창한 날씨다. 쾰른은 대성당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성소수자의 도시다. 그만큼 자유로운 도시다.

    카셀에서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오후에 쾰른에 도착했다. 쾰른성당과 인접한 중앙역에서 내려 호텔로 걸어가는데 대성당의 두 개 첨탑이 한눈에 보인다. 고딕양식 교회건축물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로 1248년부터 약 600년에 걸쳐 건축되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지만 아름다운 건축미만큼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늘을 향해 솟은 두 개 첨탑은 높이가 157m라 쾰른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여장을 푼 나는 가벼운 차림으로 쾰른성당과 구시가지를 걸었다. 중심가는 반경 5km 내에 있어 유람하듯 걸어도 두세 시간이면 충분하다.

쾰른 성당

    쾰른 성당은 라인강에 가까이 있다. 걸어서 5분이면 닿는다. 쾰른은 라인강을 끼고 도시가 발전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의 비약적인 발전을 일컬어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라인강은 독일의 수도 베를린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처음으로 라인강변을 달릴 계획이다. 라인강은 스위스 남동부에서 시작하여 오스트리아를 지나 독일을 거쳐 네덜란드를 관통하여 북해로 빠져나가는 강으로 총길이는 1,320km. 라인강의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내일 아침 만나자며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라인강의 호헨졸렌다리

    58살 퇴직 후 국토종횡단 1,000km 24일간 걸으며 나는 한강, 남한강, 낙동강, 강원도 섬강 등 강변을 따라 많이도 걸었다. 하루 도보를 마치고 강변에 배낭을 풀어 텐트를 치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걷는지 수없이 물음을 던졌던 기억이 있다. 나는 내일 아침 라인강을 달리며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달리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내 나이는 시니어의 희망을 새겨야 할 나이다. 사실 이번 유럽 여행에서 많은 시간을 독일에 사는 둘째 딸과 함께 했다. 갤러리나 뮤지엄을 가는 예술기행이 목적이었지만 오랜만에 딸과 함께하며 교감하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결국 이런 결정은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나는 딸과 많은 걸 함께 했다. 보는 것도 먹는 것도 느끼는 것도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처음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땐 나 혼자만의 도보여행이었다. 독일 마인츠에서 출발하여 라인강을 따라 쾰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걸은 후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 칼레까지 걸어 거기서 배를 타고 도버해협을 건너 도버에서 런던까지 걸어가는 계획이었다. 1,250km 대략 40일 정도, 매일 호텔비와 끼니 챙겨 먹는 것도 만만치 않아 적지 않은 비용을 예상했다. 하지만 혼자만의 여행으로 이 많은 비용을 쓰는 것이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계획은 70살로 미뤘다. 이런 기다림은 나에게 꿈을 주어 역동적으로 살게 만들기도 한다.

    이른 아침 라인강변 햇살이 나를 반긴다. 하늘이 옥색으로 푸르르다. 날씨가 좋으면 뛰기 전부터 기분이 좋다. 천천히 암호프초콜릿박물관 방향으로 뛰었다. 보통 이렇게 좋은 날씨에 첫출발은 5분 30초/1km 스피드다. 1.5km를 쉽게 뛰었다. 초콜릿박물관 옥상에 올라 라인강을 바라본다. 잠시 눈을 감았다. 언젠가 이 강을 따라 끝없이 달릴 그날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라인강변 암호프 초콜릿박물관

    여기서 턴해 뮐하임 다리 방향으로 달렸다. 강변을 따라 계속 달리는 길이다. 마치 한강변을 달리는 기분이다. 머릿속은 한강이 눈에는 라인강이. 두 개의 강을 즐기며 달렸다. 이국적 경치에 취해 빨리 달려도 지치지 않는다. 그만큼 라인강변은 달리기에 최적의 코스다.

아름다운 라인강. 저 멀리 보이는 쾰른성당

    쾰른 라인강변에 달리는 사람이 적은 게 아쉽다. 가끔 만나는 달리미를 보면 인사하는 재미도 있는데 여간해서 달리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쾰른 사람들은 다 바쁘게 사나 보다. 혼자 달리기에 익숙한 지 오래, 맑은 날씨에 아름다운 강변을 달리다 보니 절로 흥이 난다. 빨리 달리던 걸음을 잠시 멈췄다. 아름다운 경치를 눈에 담고 천천히 달리고 싶은 맘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런너다.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 거리는 12km. 반환점을 돌아 다시 쾰른성당을 바라보며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렸다. 강 맞은편으로 달리기 위해 호헨졸렌다리로 올랐다. 다리에는 수많은 자물쇠가 매달려 있다. 누군가는 자물쇠를 매달며 소원을 빌었고 누군가는 서로 굳은 약속을 했겠지. 나는 내가 달리는 이유를 물으며 철제 다리를 달렸다. 그리고 내 인생 끝나는 순간까지 끝없이 달리자는 약속을 하면서 달렸다.

호헨졸렌 다리의 자물쇠

    다리 앞에 우뚝 서있는 카이저빌헬름 1세 동상은 독일의 현재를 자랑스러워하듯 용맹스럽게 서있다.

카이저빌헬름 1세와 쾰른성당

    다리를 다시 건너 돌아와 나는 쾰른성당 방향으로 달렸다. 쾰른성당과 마주해 있는 루드빅뮤지엄. 이곳에서 나는 오늘 달리기를 마쳤다. 아침 달리기로 이 정도 달리기는 힘들지는 않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 문이 닫힌 루드빅뮤지엄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어제저녁 나는 둘째 딸과 함께 이곳을 방문하는 것으로 쾰른의 첫 번째 일정을 시작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좋은 작품을 보며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피카소와 르네마그리트를 만났고 미국 개념미술의 대가인 제스퍼존스와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서 팝아트의 시작을 보았다. 가장 놀란 것은 프란시스베이컨(1909~1992)의 작품. 한국에서 전시된 적이 없는 그의 작품을 처음 보고 나는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누구나 다 그릴 수 있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린다'라고 말했던 그는 인간을 가두고 속박하고 파괴하는 외부의 힘에 의해 무방비상채로 찢긴 일그러진 신체를 그림으로 처참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프란시스베이컨의 작품

     쾰른성당과 루드빅뮤지엄. 역사적 배경이 전혀 다른 두 개의 건물이 이질적으로 조화를 이뤄 배치되어 있다. 고풍스러운 이미지에 예술적 감각이 살아 숨 쉬는 도시가 쾰른이다. 쾰른은 라인강의 긴 역사와 같이 도시를 길게 품고 이어져 있다. 라인강변은 밤에 전 세계 젊은이들이 모여 젊음을 얘기한다. 라인강은 성소수자들도 따뜻한 어머니의 품으로 안는다.

라인강변의 테라스

    오늘 아침 달리기를 마치자 라인강은 언제 다시 올 거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끝없이 달린다. 70살에도 달릴 것이다. 70살에 라인강을 따라 천몇 백 킬로 미터를 걷는다면(달린다면) 그건 내 인생에서 라인강의 기적일지도 모른다. 나는 라인강과 그날을 약속했다.

라인강 런닝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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