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뭔 말이여??
마음으로 쓰는 할머니들의 글
수업 시작하자마자 금화 할머니가 손을 들었다. 질문이 있다며.
"엄친아가 뭔 뜻이래요 선생님?"
엄마친구 아들의 줄임말이라고 했더니 더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들어본 적 있는 분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반이 손을 든다. 며칠 전 금화 할머니는 아들과 며느리가 거실에서 티비를 보며 대화하는 중 이 말을 들었는데 차마 그 자리에서 물어보지 못하고 가슴에 담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만큼 수업에 오는 할머니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내 설명은 길어졌다. 엄마친구의 아들이 왜 외모나 집안이나 학벌이 빵빵한 사람을 가리키는지 나 또한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행어나 신조어는 대개가 그렇다. 이런저런 상황을 덧대고, 티비에서 본 사례를 들어 설명하니 할머니들이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간판이 죄다 왜 영어래요?"
갑자기 화진 할머니가 던진 말. 강남에서 마포 이곳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오시는 멋쟁이 할머니. 모습만큼이나 글씨도 예쁘고 글도 잘 쓰신다. 당최 알아먹을 수가 없다며 툴툴거리며 던진 말투다. 한글을 많이 써야지 왜 그런지 모른다고 요즘 세태를 타박한다. 대답을 얼버무리며 세종대왕께 미안하다는 농담으로 넘어가야 했다. 무의식 중에 나도 영어를 섞어 쓰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그런 게 다 유식함을 표 내려는 한심한 행위라는 걸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순간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선생님 저 엄카 알아요!" 늘 다소곳이 앉아 글을 쓰던 명선 할머니. 어떻게 아시냐니깐 어제 손주 놈이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점심 먹고 왔냐고 했더니 '엄카로 편의점에서 사 먹고 왔다고' 하길래 '엄카가 뭐냐?' 물어서 알았다며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모두 명선 할머니를 보며 오~ 하신다. '엄카가 그런 뜻이었어?' 하며 짝꿍과 얼굴을 맞대며 신기한 듯 엄카엄카하며 꾹꾹 눌러 글씨를 쓰는 할머니들.
방송에서 남발하는 유행어나 사회가 만들어내는 신조어는 할머니들이 아랫 세대들과 소통하는 데 장애 요인이 되기도 한다. 가뜩이나 소통이 안되는데 알아듣지도 못하면 손주들은 할머니와 대화하기를 그만한다. 안타깝게도 표준한국어 사전의 말만 사용하며 대화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래서 오늘 수업은 준비한 내용을 틀어 할머니들이 손주들(혹은 자녀들)과의 대화에서 우리도 신세대 할머니라는 것을 보여주자며 요즘 많이 사용하는 엉뚱한 단어들을 알아보고 그 단어를 사용하여 글쓰기를 하자고 했다.
"댕댕이"
들어 보셨어요? 다들 조용하다. 힌트는 동물병원. 그래도 침묵.
"디 ㅓ ㅇ 디 ㅓ ㅇ"
내가 칠판에 이렇게 쓰니 더 모르겠다는 표정들. 멍멍이를 재밌게 읽느라고 그렇게 말한다고 했더니 어이없어 한다.
"우리 할배 저녁에 맨날 혼술 해요"
미희 할머니의 뜬금없는 고백. 혼밥, 혼술은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알고 있었다. 다음은 찐.
임영웅 팬을 자처한 할머니들에게 공연에 가본 적이 있는 찐팬이냐며 찐친과 찐팬을 설명해 주니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웃기기는 하는데 속으로 눈물이 나는 '웃픈 현실'이라는 말은 어른들도 많이 쓴다고 설명하니 열심히 적는다.
칠판에 아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신조어를 적었다. 이 단어를 사용하여 간단한 글쓰기를 하였다. 집에 가서 한번 써먹어 봐야겠다며 재밌게 글쓰기를 한다. 교실 안에 활기가 넘친 수업이었다. 수업을 마무리하며 '나는 오늘 수업 첫 시작에 멘붕이 왔다'라고 말하자 어리둥절한 할머니들. 멘붕? '무슨 붕댄가?' '선생님 어디 다쳤나?' 수군수군.
요즘 너무 많은, 말도 안 되는 한글 조어가 판치는 세상이 좀 걱정되기는 한다. 사실 나도 우리 딸들과 대화나 카톡 할 때 못 알아듣는 단어가 있다. 작은 딸이 카톡 답변에서 '옥희'라고 썼을 때 이게 뭔 말인가 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가끔 ok 대신 옥희라고 쓰곤 한다. 젊은이 축에 끼고 싶은 욕망에서.
정해진 길로만 살아왔던 할머니들에게 오늘은 조금이나마 세대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표준이라는, 모범이라는 단어에 어울리지 않는 나의 인생에서 오늘도 나는 많은 걸 배운 시간이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