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7일 차 2017. 6. 10. 대전시 둔산대교 갑천공원-옥천읍-옥천군 이원면 학생야영장 (37.5km)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정지용 생가 인근에는 옥주 사마소, 춘추민속관 등 볼거리가 많았지만 이 조그만 마을은 정지용 시인으로 먹고사는 듯했다. 커피숍은 물론 음식점, 일용품점 심지어 짜장면집 간판에도 정지용 시가 써져 있었다. 가게 평상 앞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에게 이 마을 사람들은 정지용 시를 몇 개씩은 다 알겠다고 농으로 말을 건넸더니 그렇지는 않다며 웃는다. 하지만 어느 시골 마을에 이렇게 시가 풍년인 데가 있을까? 삼국지에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쫒았다는 얘기가 있는데 죽은 정지용이 살아 있는 동네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번 도보여행이 마냥 걷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보고 싶은 곳, 특히 조상들의 삶이 묻어나는 곳은 사전에 계획하여 가볼 생각이었기에 그런 때는 도보시간을 잘 고려해야 했다. 정지용 생가 마을까지 걸은 거리도 그렇지만 마을 이곳저곳 다니며 머문 시간이 있다 보니 옥천역으로 다시 돌아 나온 나는 갈 길을 서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적지 옥천군 이원면 학생야영장까지는 11km가 남았는데 시간이 벌써 오후 4시를 넘고 있었다. 26.5km를 걸어오면서 나는 왼쪽 발목에 최대한 무리가 가지 않게 걸으며 편의점이 있는 곳에서 쉬면서 얼음으로 두 번의 얼음찜질도 했다. 30여분 정도를 그렇게 쉬면서 얼음찜질하다 보니 휴식 시간도 더 많아졌다. 하지만 오늘내일 나는 왼쪽 발목을 최대한 배려해서 휴식과 얼음찜질이 더 필요했다. 지금은 두 다리가 나의 생명이니까.
맘이 풍요로우면 확실히 피로감도 덜하긴 하다. 언제 적 내가 시를 접했고 시상(詩想)에 언제 내가 또 빠져 보겠는가?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모두 똑같은 목적으로 시를 외웠고 똑같은 목소리로 읽었고 똑같은 감상문을 제출해야 했다. 국어 선생님의 감상과 맞지 않으면 답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난다.
요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인간을 말하는 인문학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생겨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인문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사회가 수준 높은 사회리라. 그래서 그런지 요즘 학교도 많이 바뀌어 제도권 교육에 익숙했던 우리 시대와는 달리 학생 개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거 같다. 교육현장에서 학생 개개인에게 통일된 감성을 요구하는 그런 건 없어진 거 같아 다행이다.
나는 잠시 정지용 시인에 빠져 얼치기 시인이 되어 보았다. 지금은 누구도 나의 시상을 간섭하지 않으니 나도 잠시 시인이 되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정지용 시인의 향수,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한참을 걸었다. 옥천 학생야영장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거기에서 1km를 더 들어가야 오늘의 목적지였다. 돌아 들어가기 전 우측 산 중턱 교회의 녹슨 종은 오랫동안 소리를 멈춘 듯 적막한데 석양에 비춘 시골 교회의 모습이 내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오늘 37.5km를 4.1/1h(식사, 쉬는 시간 제외)로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금강을 끼고 있는 노천 야영지였다. 왼쪽 발목을 조심하며 천천히 걸었고 중간 중간 얼음찜질도 하며 쉬면서 왔다. 오늘 7일 차 거리가 40km가 되지 않게 잡혔던 것은 어쩌면 행운이기도 했다. 내일만 조심해서 걷는다면 왼쪽 발목은 훨씬 나질 거 같았다. 이렇게 장거리를 걸을 땐 어떤 종류의 신발을 신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나는 이번 국토종횡단에서는 a사의 마라톤 운동화를 신었다. 나는 평소에는 N사의 마라톤 운동화를 즐겨 신었다. 마라톤 운동화는 뒤꿈치 밑창에 쿠션이 두툼하여 발 디딜 때 충격을 덜 주게 만들어졌다. 이번 국토종횡단은 산행이나 트레킹이 아닌 아스팔트길이 대부분이기에 마라톤 운동화가 더 적절했다. 흔히 산보할 때 신는 워킹화로는 장거리 도보 시 발의 충격을 견디는데 한계가 있다. 나의 발목 부상이 그나마 이 정도에서 그친 것은 신발의 역할도 컸다.
금강 야영지 초입에 있는 옥천학생야영장은 중고생들을 위해 충북도교육청에서 만든 것으로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나는 원래 옥천학생야영장이 일반인에게도 개방되는 야영장으로 알고 여기서 하루를 묵을 계획이었다. 왜냐하면 오늘이 연이어 이틀째 야영이기에 씻지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료 야영장에는 대개 취사용 수도나 간단히 씻을 곳이 있기 마련이다. 강가에는 여러 대의 차들이 차를 대고 캠핑을 하고 있었다. 강가의 캠핑족들은 물이나 먹거리를 미리 다 준비하여 차에 싣고 왔을 테고. 이틀간 씻지 못해 몸이 근지러웠던 나는 아무도 없는 학생야영장의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철문에 잠금 장치는 없었다. 수도가 보였고 그 옆은 화장실과 샤워실. 샤워실에 물기가 전혀 없는 거 보니 꽤나 오래전에 학생들이 왔다 갔던 것 같았다. 혼자서 내 집처럼 샤워를 하고 냄새나던 옷도 빨고 하니 1시간은 족히 걸렸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시간이 밤 7시 40분쯤 되었으니까. 차마 여기다가 몰래 텐트를 칠 강심장은 못되어 강가 쪽으로 걸어 나가려는데 저기서 할아버지가 날 보고 오는 것이었다. 느낌이 안 좋았다. 샤워실 밖으로 새나 간 불빛을 본 모양이었다. 학생야영장을 지키는 이웃집 할아버지였는데 어찌나 깐깐하게 뭐라 하는지 무조건 미안하다고 머리를 조아리고 간신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혼쭐은 났지만 도둑 샤워로 몸은 너무나 개운했다.
강가에서 텐트를 치는데 사위가 어두워 시간이 걸렸다. 특히나 자갈밭이라 팩이 꽂히질 않았다. 누구하나 도와준다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그들은 고기 굽고 소주, 맥주로 많이 취해있었다.
이번 도보여행에서 어차피 나는 늘 혼자였다. 일찍 도착하여 저녁을 지어먹을 계획이었으나 너무 늦어 사위가 캄캄하니 간단히 먹어야 했다. 햇반에 봉지 김치, 김.
토요일 강가에는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모두들 가는 밤이 아쉬운 듯 웃고 떠들며 시끌벅적했다. 순간 밀려오는 외로움. 빨리 자는 게 외로움을 벗어나는 길이었다. 잠자리에 누웠는데 밖의 떠드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런 때는 누군가가 술 한 잔 권하면 얻어먹고 깊이 잠 잘 수 텐데.. 괜히 주위 사람들의 몰인정에 혼자 투정부리다 심드렁한 맘으로 한참만에야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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