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차 옥천군-추풍령] 아~ 추풍령(1)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8장 아~ 추풍령 (1)


8일 차 2017. 6. 11. 충북 옥천군 학생야영장-영동읍–충북 영동군 추풍령 (43.6km)



7일 차까지 약 300km를 걸어 국토종단 560km의 반을 넘기니 맘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새로 시작하자는 맘일까 아니면 반은 넘었으니 좀 여유롭게 걸어도 된다 일까..

오늘은 추풍령. 차를 타고서도 한번 가본 적이 없었다. 그냥 지나쳤을 뿐이지. 막연히 떠오르는 추풍령 고개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위압감 때문인지 오늘만 잘 넘기면 남은 일정에서 큰 어려움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과도 같은 나의 두 다리는 오늘은 원래의 모습으로 거의 돌아왔다. 어제까지 조금 남아 있던 왼쪽 발목의 붓기는 거의 사라진 듯했다. 어제 37.5km로 비교적 짧은 거리였고 조심스럽게 발 디딤을 하며 서너 번을 쉬면서 편의점에서 산 얼음으로 찜질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 거 같기도 했다. 하지만 두 다리는 늘 주의를 필요로 했다. 오늘은 43.6km. 그리고 추풍령 고개라니 고갯길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났다.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의 금강 야영지는 밤새 먹고 마시고 떠들던 사람들은 아직도 한밤이었다. 씻고 먹는 물도 없으니 생수로 라면 반개를 끓이고 어젯밤 먹다 남은 햇반을 말아 아침을 해결했다. 세수와 용변은 가다가 만날 첫 번째 주유소를 이용하기로 하고 배낭만 꾸려 금강 야영지를 걸어 나와 어제 걸었던 4번 국도를 타고 영동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본래가 차량이 많지 않은 도로인데다가 이른 아침이니 오가는 차가 거의 없어 왕복 4차선 도로는 나 혼자였다.

옥천군을 벗어나 영동군으로


차로도 넓고 하니 이런 국도에서는 주유소를 금방 만날 거 같은데 마냥 걸어도 없었다. 6km 정도 걸었을까 아침에 먹은 라면 때문인지 속이 더부룩하여 씻는 것보다도 화장실이 더 급해졌다. 나는 주유소 화장실을 찾아 어쩔 수 없이 빨리 걸을 수밖에 없었다. 생리적 현상에서 소변은 길가 안쪽 아무 데나 실례할 수 있지만 배변은 차마 그럴 수가 없다. 오늘따라 주유소는 왜 이리 안 보이는지. 배변이 급하니 주변 경치고 뭐고 눈에 잘 들어오질 않았다. 그렇게 참고 참아 2km 정도 더 걸으니 저 멀리 맞은편에 주유소가 보였다. 차로를 대충 살피고 가로질러 뛰어갔다. 그동안 걸으며 수없이 주유소 화장실을 사용해봤기에 나는 주유소 건물 뒤편으로 바로 돌아 들어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고생도 아닌 고생을 하며 참고 왔더니 배변의 쾌감은 최고였다.

너무나 한적한 도로 기에 주유소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줌마 한 명뿐이었다. 인심 좋게 생긴 아줌마에게 물도 얻어 마시며 길도 물었다. 이곳은 영동군 심천면으로 앞으로 쭉 걸어가면 난계사였다. 배변이 너무 급해 길바닥만 보고 달려왔으니 여기가 옥천군인지 영동군인지 알길 없이 달려온 것이었다. 조금 걸으니 난계사 이정표가 보였다.

난계는 조선 세종 때의 음악이론가 박연의 호다. 거문고의 왕산악, 가야금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이라고 중학교 때 음악시험의 단골 메뉴였던 게 기억난다. 난계의 사당인 난계사가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로 난계는 효자로서도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그걸 증명하듯 난계사 입구에는 1402년 하사된 효자 박연의 비석이 있었다.


효자 박연


난계 박연은 이곳에서 출생하여 조선 세조 2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살다가 8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삼남이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서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으로 낙향할 때는 필마에 하인 한 명의 쓸쓸한 행장에 피리 하나가 전부였다고 한다.

난계가 태어난 집은 난계사에서 1km 안쪽의 고당리 맨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난계 생가를 찾아가는 길은 갔다가 다시 돌아 나와야 하는 길이었지만 내 발길은 자못 기대가 컸다. 국악의 거성이면서 여러 고위 관직을 두루 거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이 나고 자랐으며 말년을 보낸 곳이라니 더욱 그랬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난계 생가는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말년에 닥친 불운 속에서 ‘비 피하고 바람 막을 집 한 채면 그만이다’ 는 거성 난계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박연 생가


난계 생가를 보고 마을을 돌아 나오는데 마을 정자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더위를 피해 쉬고 있었다. 이곳 박연 생가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 오냐고 물었더니 거의 안 온다는데 동네 어르신들의 표정이 재밌다. 박연이라는 사람을 자기들도 잘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나의 행색에 더 관심을 보였다. 내 배낭 뒤의 글씨를 봤는지 임진각에서 여길 어떻게 걸어서 왔냐며 참 할 일도 없다는 투로 말한다. 나는 그런 말이 어째 이 마을 사람들의 여유로 들렸다. 어쩌면 이 마을은 수백 년 동안 자기도 모르게 난계를 맘속에 담고 사는지도 모른다.

난계 생가 입구의 고당리 마을 정자


이틀째 야영을 하며 발생하는 문제는 씻는 거 외에 핸드폰의 충전이었다. 나는 걸으면서도 검색하고 메모도 해야 했기에 3,000mAH 핸드폰배터리 용량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10,000mAH 대용량의 보조배터리를 준비했는데 이게 무게도 있고 충전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다 소진된 10,000mAH 배터리를 100% 충전하는 데는 10시간 정도 걸렸다. 나는 지난 이틀간 야영을 했기에 배터리 충전을 완벽하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나는 보조배터리의 1/3 남은 용량을 핸드폰에 연결해서 사용하고 있다. 오늘 점심식사를 하면서 식당에서 핸드폰, 보조배터리 둘 다 조금이라도 충전을 해야 했다. 시간이 아직 일러 점심은 영동읍에 도착해서 먹기로 하고 영동읍을 향해 걸었다. 난계사에서 영동읍까지는 대략 9km. 영동읍까지는 4번 국도를 계속 걸어 내려가면 된다. 정오가 되면서 태양이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뒷목이 따가웠다. 나는 자외선을 피하기 위해 선캡의 뒷목가리개를 다시 한 번 고쳐 썼다. 한낮의 더위에는 강한 체력만큼이나 강한 정신력이 요구된다. 며칠간 나를 괴롭혔던 왼쪽 발목이 거의 다 나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5일 차 오후부터 붓기 시작해서 그다음 날은 걷기조차 힘들었는데 그때 나는 걸으며 낫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다행히도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주의해야 했다. 지금 내 두 발은 생명이다.

영동읍이 좌측에 보이는데 노근리, 추풍령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나는 영동읍을 그냥 지나쳐 직진하기로 했다. 영동 읍내로 들어갈 맘의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게 그놈의 추풍령 고개라는 중압감 때문이었다.

21.8km를 걸어와 좌측에 영동읍이 보이고 시간은 11시 56분. 점심을 먹어야 했다. 아니 핸드폰과 보조배터리를 보충 충전해야 했다. 가까운 곳을 찾아 들어가자고 해서 보신도 할 겸 길가 안쪽에 있는 추어탕 집으로 들어갔다. 일요일 낮인데도 손님은 나 혼자뿐이었다. 나는 혼자 생각에 ‘여유로워서 좋네’ 하면서 핸드폰과 보조배터리 충전도 하고 한 시간쯤 쉬다 가자고 생각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보조배터리와 핸드폰을 꺼내 식당 안의 콘센트에 각각 꽂았다. 그런데 주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한 군데는 빼라고 했다. 참으로 인심이 고약했다. 종단 4일 차, 이천 시내를 지나 점심 먹기 위해 들렀던 식당, 그 주인의 불친절한 표정에서 느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충전도 하고 한 시간 쉬다 가려했던 맘이 싹 가셨다. 주인이 계속 불친절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추어탕마저도 맛이 없게 느껴져 반만 먹고 나왔다.

내가 피상적으로 겪는 경험이지만 나는 이런 경험이 그 지방의 첫인상으로 강하게 남아 그 지역을 나름대로 규정짓곤 했다. 그래서 영동읍의 첫인상은 아주 고약한 동네로 그렇게 나에게 각인되었다.

기분을 망치니 걷는데 흥이 날 리가 없다. 그래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영동 읍내를 옆에 두고 직진하여 걷다 보면 4번 국도가 아닌 구 길 영동황간로로 이어진다. 이 길 영동황간로는 구 길의 아름다운 운치가 있어 걷기에 아주 좋으며 옆으로는 경부선 철도, 4번 국도와도 같은 방향으로 남쪽으로 뻗어있어 이 세 개의 길은 나란히 가다가 헤어졌다 또 만나고 하면서 추풍령을 넘는다. 영동황간로를 걸으니 힐링이라는 게 뭔지 말해주는 듯 자연 속으로 나를 빠져들게 했다. 이 길은 어디로 걷겠다 어딜 보겠다 욕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그저 천천히 걷기만 하면 되었다. 영동소방서를 지나 영동황간로를 유유자적하며 걷는데 택시가 한 대 내 옆에 섰다. 택시탈일 없는 나이기에 그냥 무시하고 걷는데 세워진 택시에서 젊은 운전기사가 내려 주스를 하나 건네는 것이었다.

영동의 친절한 택시기사가 건네준 음료수


영동읍 택시운전기사였는데 내가 걸으며 영동읍을 지나치다 보니 혼자 걷는 나를 봤다고 했다. 도보여행자임을 한눈에 알아봤다며 노근리 방향으로 손님을 태우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젊은 택시기사도 꿈이 나처럼 배낭 메고 전국을 걷는 거였단다. 그가 나에게 캔 음료수를 하나 건네주었다. 잠깐의 시간, 우리 둘은 말은 없었지만 어떤 교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머릿속은 영동이 어느덧 좋은 이미지의 영동으로 바뀌었다. 추풍령,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몸은 가벼웠다. 친절한 택시 기사로 인해 기분도 좋아졌고 걷는 길도 더욱 행복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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