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8일 차 2017. 6. 11. 충북 옥천군 학생야영장-영동읍–충북 영동군 추풍령 (43.6km)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는 젊은 시절부터 내 기억 속에 있어 언젠가는 와보리라 약속했던 곳이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을 입 밖에 내기조차 어려웠다. 내가 노근리 사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주 오래전 대학생시절이었다. 언젠가는 가보마 하고 다짐했던 게 지금에야 와보게 된 것이다.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은 한국 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초기 전투에서 대패한 이후 충북 영동에 방어선을 구축할 당시 영동읍 임계리 일대에 모인 피란민들을 남쪽으로 피란시키는 과정에서 방어선을 넘는 사람들은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마침 미군기 오폭에 의해 철로에 폭탄이 떨어져 수많은 양민 사상자가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양민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미군이 무고한 양민들에게 총을 난사하여 몇 백 명이 목숨이 잃게 된 사건이다. 당시 학살의 흔적을 말해주듯이 굴다리에는 아직도 수백 발의 총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는 한동안 총탄 자국이 선명한 굴다리를 떠날 줄 몰랐다.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맞은편에는 이런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한다며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
나는 노근리 평화공원에서 한참을 쉬었다. 그렇게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으니 그냥 오래 있고 싶었다. 하지만 마냥 쉴 수는 없었다. 나는 오늘의 목적지 추풍령 고개를 향해 걸음을 시작했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굽이마다 한 많은 사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창하는 옛 노래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많이 알려진 노래다. 사실 추풍령은 노래보다도 추풍령 휴게소로 더 유명했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수많은 차들이 추풍령 고개를 넘나들며 이곳 휴게소에서 하룻밤 쉬어가곤 했다니까.
영동황간로를 계속 걸으니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이제 정말로 추풍령고개인가 싶은데 오르막은 완만해서 힘들게 고개를 넘는다는 느낌은 없었다. 고개를 넘었다 싶으니 황간면이 눈앞에 보였다. 나는 노근리평화공원에서 한참을 쉬었기에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고개를 넘어 황간면에 도착했다. 노근리에서부터 약 4km를 걸어온 것이었다. 시골 도로의 정취로 인해 그런지 그다지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추풍령 고개에 대해 엄청 힘들 거라는 생각에 미리 맘의 준비를 단단히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황간터미널에서 추풍령역까지는 약 9km.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44분. 옥천 금강 야영장에서 아침 6시 좀 넘어 일찍 출발하기도 했고 영동읍 추어탕식당 주인의 불친절로 점심식사로 30분만 앉아 있었기에 오히려 점심시간을 절약한 셈이 되어 추풍령 고개를 여유롭게 맞았다. 지금까지 한 시간에 4.3km 속도로 걸어왔는데 왼쪽 발목의 이상을 느끼지 못하니 부은 발목도 완전히 나은듯했다. 오늘 목적지인 추풍령 고개에서도 야영이다. 3일째 연속이다. 오늘 저녁은 식당에서 해결하며 식당의 세면장을 이용해 볼 생각이다. 그래서 목적지에 일찍 도착하고 싶었다. 황간면까지 이미 고갯길을 올라왔기에 추풍령역까지의 길은 완만한 오르막이고 천천히 걸으니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추풍령을 오르는 추풍령로는 고즈넉하고 한적한 산길 도로 기에 느리게 걷다 보니 맘도 평온했다. 나는 그렇게 겁먹고 맘으로 준비했던 추풍령 고개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넘었다.
저녁 6시 13분, 날은 아직 훤한데 추풍령 고개 추풍령 면내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나 한적한 모습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옛 영화를 기억하고 온 나의 잘못이었다. 시간이 멈춘 도시 같았다.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추풍령역의 급수탑이 과거의 영화(榮華)를 말해주는 듯했다. 사실 추풍령고개는 해발 221m로 노래 가사처럼 구름이 쉬어갈 정도로 높지도 않다 (이후에 이어지는 국토횡단에서 나는 해발 7,8백 미터의 고개를 몇 개를 넘게 된다).
추풍령 면내 중심을 관통하는 200m 정도 길이의 도로는 차량은 물론 인적이 드물어 썰렁했고 필름을 거꾸로 돌려놓은 듯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동네 다방들, 길가 도로와 가게 문이 이어 붙어 금방이라도 작부의 노랫가락이 들려올 거 같은 술집들. 폭 10m 도 안 되는 이 도로가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수많은 차들이 드나들어 좌우를 살피고 건너야 할 정도로 붐볐다는 차부 가게의 할아버지 말이 믿기질 않았다.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현재 추풍령초등학교 학생수가 50여 명이라는데 한참 많을 땐 1,300 명까지 되었다니까.
추풍령고개의 역사를 그대로 안고 있는 건 아마도 다방인가 보다. 좁은 면내에 다방이 대 여섯 개나 있었다. 그것도 모두 옛날식 간판으로. 궁금하던 차에 차부에 들렀다. 차부라고 해봐야 동네 문방구 수준이었다. 40여 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는데 낡고 비좁아 언뜻 보아서는 대관령터미널 같지가 않았다. 여기서 차표를 팔고 있어서 이곳이 터미널인지 알 뿐. 이 건물 앞마당이 고속버스, 면내 버스가 서고 내리는 정류장이었다.
이 건물 생기면서부터 장사했다는 70대 중반의 차부 주인(이 할아버지가 매표도 한다)은 추풍령의 역사와 다방의 역사에 대해 훤히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 어렸을 땐 대단했단다. 모든 차들이 추풍령 고개를 넘어 서울로 갔는데 이곳에서 하룻밤 묵으며 술도 한잔 하고 쉬어 갔단다. 그래서 술집, 여관도 꽤나 많았었다고. 다방만 왜 아직 그대로 많이 남아있냐고 물었더니 거기 주인들도 이젠 나이 먹은 할머니가 되었고 딱히 가게를 접고 할 게 없으니 문이나 열어 놓자 하는 거 아니겠는가 한다. 그래도 다방 찾는 사람이 있냐고 했더니 옛날 향수를 못 잊어 또는 호기심으로 외지인들이 가끔 찾는다고 한다. 나는 그런 호기심은 발동하지 않았다.
한 번쯤 지나가는 여행객에게는 많은 향수와 추억을 남겨 주지만 여기서 사는 사람들은 어찌 살아가는지.. 시간이 멈춘 추풍령고개 면소재지는 slow city가 아니라 stop city 같았다.
나는 텐트 칠 곳도 알아볼 겸 동네 뒷길로 걸어 들어가 보았다. 뒷길이래야 한눈에 빤히 보이는 정도로 10여분이면 다 훑을 수 있었다. 짜장면집이 보였고 그 앞에는 빈 공터가 있어 그곳에 텐트를 치기로 하고 짜장면집에서 볶음밥으로 저녁을 했다. 그 식당에서 간단히 씻기도 하고 핸드폰, 보조배터리 충전도 하고 생수도 채웠다. 그나마 추풍령의 인심은 느리게 옛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빠른 게 좋은 것만은 아닌 거에 감사했다.
추풍령고개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추풍령 면내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여기는 아직도 과거를 살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과거를 되돌아보았다. 어린 시절은 누구나가 순수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겹의 가식으로 삶이 채워진 거 같아 안타깝다. 추풍령은 가식이 없었다.
추풍령고개는 고개인데 고개가 아니었다. 나는 오늘 부담을 잔뜩 안고 시작했던 추풍령 고갯길을 큰 어려움 없이 넘어 지금 밤 8시 반, 추풍령면 면내 한가운데에 있다. 평지보다는 221m 하늘과 가까이 다가가서.
오늘 내가 추풍령고개까지 걸은 거리는 43.6km. 나는 4.2km/1h(식사, 쉬는 시간 제외)로 걸어서 이곳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