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차 추풍령-김천시] 추풍령 넘어 남쪽으로(1)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9장 추풍령 어 남쪽으로 (1)


9일 차 2017. 6. 12. 충북 영동군 추풍령-김천시-경북 김천시 남면 남북저수지 (36.2km)


나는 국토종단 일정 중에서 꽤나 힘들 거라고 예상했던 추풍령고개를 넘었다. 이미 상당히 걸어 경상도 지방, 그것도 추풍령고개를 딛고 있다는 것이 나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어제 아침 옥천 금강 야영장에서 느꼈던 추풍령고개를 오른다는 중압감과는 반대로 오늘은 내려간다는 편안함이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내리막길을 걷는 발걸음은 아무래도 가벼울 테니까. 추풍령고개 정상 추풍령 면내에서의 어제 야영은 마치 구름 위에서 잠을 잔 느낌이었다. 221m도 고개라고 하늘이 조금 가까웠나 보다. 아침 6시에 일어난 나는 면내 딱 하나 있는 편의점에서 간편 도시락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간단한 먹거리만 보충했다. 어차피 점심 즈음하여 김천시를 통과할거기에 더 필요한 먹거리는 김천시에서 사면되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요즘 어딜 가나 24시간 편의점이 있어 도보여행자들의 먹거리나 배낭 무게의 고민을 덜어준다. 아마 2~3일치 먹을 거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 배낭이라면 배낭 무게는 족히 3~4kg는 더 나갈 것이다. 1g이라도 줄여야 하는 장거리 도보여행자의 배낭은 그 정도라면 엄청난 하중이다.

편의점에서 커피 한잔까지 하는 여유를 부린 후 나는 아침 7시가 다되어 추풍령 고개와 작별하고 김천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완만한 경사의 내리막길은 걷기에도 딱 좋았다. 상쾌한 아침 날씨까지 더하니 9일 차 출발은 들뜬 마음까지 들었다. 부어있던 왼쪽 발목도 다 나았고 내리막길이고, 목적지 김천시 남면 월명리 남북저수지까지도 평지의 길이 계속된다. 게다가 오늘 걸을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은 36.2km. 모든 조건이 나를 편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인생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오늘은 부담 없는 하루다.

나는 24일간의 도보 계획을 세울 때 2~3일 간격으로 도보의 거리나 강약을 적절히 안배했다. 내 신체도 리듬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오늘이 부담 없이 걷는 계획의 그날이다.

국토종단 목표거리의 반을 넘어가면서 지인들이 격려와 걱정을 같이 했다. ‘괜찮냐?’ ‘다리는 안 아프냐?’ ‘그렇게 걸으면 물집 잡혀 고생한다는데 어떠냐?’ 등. 왜 안 힘들겠는가. 하지만 다리 보호를 잘하면 고생을 조금은 덜 수 있다. 나는 발 물집 때문에 고생하진 않았다. 발에 철저히 테이핑을 했기 때문이다. 장거리 도보에서는 신발 안쪽 발과 자주 밀착되는 부위는 철저히 테이핑 하는 게 필요하다. 피로감을 느끼는 다리 부위도 길게 테이핑하여 붙여주면 걷는데 확실히 편안함을 준다. 마라톤에서 경험했던 게 큰 도움이 된 셈이다. 또 하나는 배낭 허리끈을 바짝 당겨서 배낭을 메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낭 무게를 어깨가 다 받아 얼마 걷지 못해 어깨가 짓눌리고 그건 다시 두 다리로 전달되어 온 몸이 무겁다. 내 배낭의 무게는 10~12kg 사이다. 특히 늦은 오후에 피로가 몰려올 때는 배낭이 큰 돌덩이 무게로 느껴질 때도 많다. 잘 먹어야 잘 걷는다고 먹을거나 취사 음식을 잔뜩 담았다가는 다 먹기도 전에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배낭의 무게를 가볍게 한다고 물이나 먹거리를 소홀히 담는다면 그 또한 안 된다. 결국 장거리 도보여행자는 스스로 알아서 준비해야 하고 걷는 중간에 자기 신체의 반응을 읽고 점검하고 그에 맞게 보완해주어야 하는 철저함이 필요하다.

꽉 조여 맨 배낭 허리끈


추풍령고갯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데도 자동적으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내리막길의 여유로움까지 더하니 두 발이 자동 반응했다.

한적한 시골길의 아침은 때때로 고독을 느끼게 한다. 이른 아침 자연은 차분하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나는 걸으며 어떤 땐 이 시간, 이곳에 있다는 현실에 깜짝 놀라곤 한다. 고독하다, 차분하다, 조용하다 이 모든 게 아침을 이해하는 차이였다. 비슷한 경치를 볼 때도 어떤 때는 아름답고 어떤 때는 쓸쓸하다. 인간은 나약해서 그런지 차분함을 즐기기 보단 고독에 빠지기 쉽다. 나도 걸으며 맘의 여유가 생길 땐 고독이 자꾸 나의 맘으로 비집고 들어오려 해 이른 아침엔 주변을 감상하기 보다는 걷기에 충실한 편이다.

나는 충실하게 내리막을 걸었다. 빨리 걷는다면 온 정신은 걷는 거에 더 집중된다. 그래서 나는 빨리 걸었다. 아직 오전이기도 하고.

8km 정도의 한적한 도로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내려온 나는 김천 시내를 통과하기 위해 영남대로로 걷기 시작했다. 김천시는 예로부터 서울로 가는 경상도의 관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김천시내는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이번 국토종단에서 김천 시내를 들어가 볼 특별한 답사지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김천시는 교통의 특성상 지나쳐 가는 도시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도시의 오랜 역사에 비해 화려함은 덜했다. 그만큼 소박한 도시 이미지가 느껴졌다. 점심시간이 좀 이른 듯했지만 김천 시내를 지나며 점심을 먹고 가는 게 나을 거 같아 김천 시내를 막 지나쳐 길가 안쪽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허름해 보였지만 겉으로 보기에 왠지 김천의 이미지와 딱 맞는 소박함이 느껴졌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어머니의 손맛, 김천 어머니의 백반.

김천 어머니 백반


식사를 마치니 시간은 12시 반, 19km를 걸어왔는데도 힘들지 않았다. 그냥 좀 앉아 있다 갈 요량으로 식당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래도 오늘 목표거리가 길지 않아 그런지 벌써 목적지에 다 온 것 같고 조급함은 없었다.

영남대로를 따라 계속 걸으면 남북저수지 바로 전 김천시 남면 부상리 입구까지 이어지는데 나는 김천 소년교도소 지나 농소교차로까지는 영남대로의 직진 길을 따라 걷다가 농소교차로에서부터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구 길로 걷을 예정이다. 왜냐면 영남대로가 왕복 4차선이며 갓길도 넓은 데다 가로수도 없고 걸으며 쉴 곳이 마땅치 않은 것과 넓은 도로의 지열로 인해 한낮의 더위를 더 뜨겁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직선의 넓은 도로는 걷는 재미가 없기도 하다. 구 길은 어디서는 영남대로를 곁에 두고 나란히 달리다가 어디서는 꾸부러져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도 한다.

나는 김천대교를 건너 영남대로를 계속 걸었다. 한낮 넓은 도로에서 느끼는 더위는 무척이나 강열했다. 도로에 반사되는 태양이 온통 나를 휘감고 도는 듯한 느낌마저 들어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넓고 곧게 뻗어 황량한 느낌마저 주는 4번 국도 영남대로에 차량 밖의 사람은 오로지 나 한 사람.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한심한 듯이 보고 있는 듯했다. 그만큼 지금 한낮을 걷고 있는 내가 무모하게 보이는 더위였다.

한낮 작열하는 태양


그런데 혼자인 이 길에 또 하나의 다른 생명체가 있었다. 하지만 죽어 있는 그들. road kill. 숲이 아파트 단지나 공장으로 변하니 어떤 동물들은 갈 길을 잃고 헤매다가 길 위에서 이렇게 죽나 보다. 수많은 차바퀴에 눌려 납작해진 모습은 롤링 프린트를 거친 평면 그림 같았다. 아스팔트라는 원단위에 한 장의 프린트물로 변한 그 모습이 나를 슬프게 했다.

로드 킬


한낮이 너무 뜨거웠다. 체감하는 온도는 거의 37,8도에 가까웠다. 이런 더위는 우선 피해야 한다. 나는 내리 쪼이는 태양도 피하고 시골길의 정취도 느낄 겸 농소교차로에서 농소면 방향의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시골길로 드니 갑자기 맘이 차분해졌다. 우선 도로를 쌩쌩 달리는 차량의 소음이 없고 눈앞에 일직선으로 뻗어있던 건조한 느낌의 직선이 안보였다. 시야가 부드러워졌다. 직선은 때론 빠르고 결과를 만들기에 용이하다지만 곡선의 부드러움은 없다. 나는 가끔 직선의 경직되고 노골적 표현에 질리곤 했다. 4번 국도를 빠져나와 시골길로 접어드니 곡선이다. 곡선은 음을 탈 줄 안다. 그건 흥이다. 게다가 이 길엔 그늘도 있고. 나는 저절로 걸음걸이도 느려지면서 좌우를 감상하는 여유를 다시 찾았다. 김천시 외곽의 아름다운 농촌 모습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이곳 논의 벼들은 가뭄에도 물을 잘 대서 그런지 한껏 잘 자라 있었다. 가끔씩 이 길을 지나는 차들도 영남대로를 쌩쌩 달리는 차들과는 달리 자신들도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걸 아는 듯 천천히 달렸다. 나는 길가 나무 그늘에 앉아 쉬다가 가다가를 반복하며 걸었다. 오후 서너 시의 더위가 대단해서도 그랬지만 이런 길을 앞만 보고 빨리 걷는 게 아깝게 느껴져서도 그랬다.

시골길을 걸으며 김천시 남면 운곡리와 송곡리를 지나니 어느덧 오늘의 목적지 남북저수지가 5km 앞으로 다가왔다. 시간은 오후 4시 반, 곳곳에 사드 반대 현수막이 보이니 이곳이 정말 김천이구나 실감이 났다. 내가 걷고 있는 김천시 남면 이곳은 사드 배치 지역 성주로부터 5,6km 밖에 안 떨어져 있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이런 현수막은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니 그걸 보는 내 맘도 개운치는 않았다.

사드 반대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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