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9일 차 2017. 6. 12. 충북 영동군 추풍령-김천시-경북 김천시 남면 남북저수지 (36.2km)
마침 마실 물을 얻을 겸해서 길가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나이 지긋하신 주인 할머니께서 내 행색을 보더니 물만 먹고 가려던 내 소매를 끌어 당겼다. 쉬었다 가라며. 오늘 목적지까지 시간이 여유도 있고 해서 염치 불고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 앉아 배낭을 풀었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본래 이 길은 영남대로로 이어지는 4번 국도가 새로 나기 전의 국도인데 추풍령으로 이어진 길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모든 차들이 이 길로 다녔고 화물차도 많아 기사들이 이 식당에서 밥도 먹고 한참을 쉬어가곤 했단다. 25년째 식당을 하는데 지금은 손님도 많지도 않고 그냥 욕심 없이 문 열고 있으니 부담 갖지 말란다. 그래도 가끔은 옛날 생각나서 새 길을 안타고 일부러 이 길로 돌아들어 와 밥 먹고 가는 기사도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어찌 걸어 가냐며 (가끔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의 행색을 보고 물으면 임진각이라고 말하기보단 서울에서부터 걸어왔다고 하면 이해가 빠르기에 나는 그냥 서울에서부터 걸어왔다고 말하곤 했다) 과일을 내오시는데 할머니 손이 커서 그런지 토마토, 참외를 큰 접시로 내 오셨다.
할머니가 처음 이곳에 식당을 냈을 때는 많은 기사들이 와서 밥 먹으며 세상 돌아가는 얘길 해 주어서 귀동냥으로 주워듣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사람도 없단다. 그래서 그런지 적적해하시던 할머니는 뜬금없이 들른 객인 내가 무척이나 반가웠나 보다. 이런 환대를 하는 거 보니. 할머니에게는 사드는 딴 나라 얘기리라. 그저 세상 살아가는 소소한 얘기가 더 그리웠을 테니까.
할머니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 “언젠가 나이 좀 지긋하신 아버지가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들을 데리고 자전거 여행 중 이곳에 들렀다우. 첫눈에 봐도 자전거를 타고 부산까지 가기는 무리인 그런 모습들이었지. 그 아버지는 밥 먹는 내내 아들을 쳐다보며 자기는 밥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보고 있던 내가 괜히 눈물이 나더라구.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았지만 물어보기도 그렇구..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그 아버지에게 나는 그저 무사히 여행 잘 마치라는 말만 건넸지. 그 후 십여 년이나 지났을까? 언젠가 두 명의 청년이 부산까지 자전거 여행 중이라며 들렀는데 그중 한 젊은이가 나를 보고 혹시 자기 기억 안 나냐고 묻는 거야. 내가 기억날 리가 없지. 근데 글쎄 그 청년이 그때 아버지와 자전거 같이 타고 왔던 중학생이라는 거야. 이젠 커서 군대도 갔다 왔고 대학교 3학년 되었다며 대학 졸업 전 아버지와 함께 왔던 이 길을 자전거로 꼭 한번 다시 와보고 싶었다며 왔다더구먼. 아버지는 자전거 여행 후 7개월 뒤 돌아가셨다는데 그 당시 암 투병 중이셨다고. 죽기 전 늦둥이 아들과 기억에 남는 여행을 꼭 한번 해보고 싶어서 그때 여길 오게 되었다구 하면서 말야”
나는 우리 두 딸 어린 시절 읽어 주었던 일본 단편소설 “우동 한 그릇“이 떠올랐다. 글을 읽어 주며 오히려 내가 눈시울을 붉혔던 기억이 새롭다.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오후 5시 15분, 나는 여기서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어차피 저수지에는 씻고 마실 물이 없을 거고 그러니 취사를 하려면 번거로울 게 뻔한데다 저녁 시간도 되어가니 먹는 걸 여기서 해결하는 게 날듯했다. 무엇보다도 할머니의 밥을 먹고 싶었다. 역시나 할머니가 내온 반찬은 정성이 가득했다. 된장찌개에 손수 무친 나물은 돌아가신 내 어머니를 생각나게 했다. 밥 한 공기를 추가하여 두 그릇을 금방 비웠다. 할머니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나왔다.
할머니는 젊지 않은 나이에 이렇게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온 나도 아마 쉽게 잊지 못할 거라며 여운 있는 한마디를 하셨다. 내가 언제 다시 걸어서 여기를 올 런지.. 그때도 할머니는 살아계실지.. 할머니와는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속에서 울컥 눈물이 났다.
이제 한 시간 정도 더 걸으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김천시 남면 부상리를 지나는데 지명이 특이했다. 동네 사람에게 물으니 예전에는 이곳에 뽕나무가 많아서 그리 지어졌단다. 부상(扶桑)이라면 뽕나무가 받치고 있는 마을 뭐 이런 뜻일 게다. 하지만 동네 어디에 한자(漢字)도 없고 지명에 대한 설명이 없으니 마을 입구 정자에 쓰여 있는 “부상 쉼터”라는 말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마을 근처에는 뽕나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저녁 6시 반, 오늘의 목적지 김천시 남면 월명리 남북저수지에 도착했다. 저수지는 봄 가뭄에 물이 반 정도로 줄어 있었다. 어둑어둑해지는데 서너 명의 낚시꾼이 보이고 그들은 언제부터 그런 자세로 앉아있는지 미동조차 없었다. 본래 낚시꾼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긴 하다. 찌만 바라볼 뿐이지. 그들은 한쪽에서 배낭을 푸는 내가 뭘 하는지 어디서 왔는지 관심이 없었다. 아마도 그들이 나를 흘낏 한번 쳐다본 건 조용히 하라는 경계의 눈짓일 게다. 낚시터는 철저히 혼자고, 철저히 고독하다. 집중력은 오직 찌에 모여져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이미 혼자만의 외로움에 익숙해져 있다. 오늘 밤 이 저수지에서 느끼는 낚시꾼들의 외로움과 나의 외로움은 분명 차이가 있다. 그들은 반딧불만한 야광찌를 쳐다보며 밤을 지새우겠지만 나는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며 밤을 지새우겠지.
저수지 물가 적당한 자리를 결정한 나는 수건에 물을 묻혀 얼굴과 발을 닦은 후 땀에 적은 옷만 갈아입었다. 저수지에서 야영을 하며 씻는 건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씻는 건 내일 아침 걷다가 주유소를 찾으면 된다. 오늘 점심과 저녁을 식당에서 해결했기에 내 배낭에는 먹거리나 물도 대충만 채워져 있었다. 씻는 물로 알뜰하게 사용하고 먹는 물로도 아껴야 했다.
오늘 걸은 거리가 36.2km. 3.9km/1h(식사, 쉬는 시간 제외)로 쉬엄쉬엄 걸었으니 기운이 아직 남았는지 좀 더 걷고 싶은 유혹이 들었다. 하지만 하루쯤 몸을 푹 쉬게 하는 것도 좋으리라. 맘의 여유도 좋고. 무엇보다도 본래의 일자별 걷기 스케줄에 따르는 게 좋기 때문이었다. 이미 저녁을 먹고 도착지에 왔으니 나만의 밤 시간이 한참 길었다. 오늘 나는 좋은 밤을 보낼 거 같았다. 낚시꾼들은 원래 말이 없으니 걱정할 거 없고, 야광찌는 내가 눈만 감으면 안보일 테고.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또 다른 세계로 옮겨가겠지. 텐트 안은 또 다른 나만의 공간이었다.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나는 몸을 뒤척이며 메모로 하루 정리를 마치고 관속에 눕듯이 반듯이 누웠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야광찌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물 위에도 하늘에도 모두 야광찌였다. 별은 그렇게 빛났다.
오늘이 9일 차, 임진각에서부터 정말 많이 걸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지난 9일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빗속에 걸었던 4일 차 55.4km가 너무나 힘들었는데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떠올랐다. 시간은 아픈 기억도 모두 아름답게 채색하여 돌려주나 보다. 이번 국토종횡단 도보여행에서 아름다운 기억만 쓴다 해도 쓸게 넘쳐 난다. 국토종단은 앞으로 5일 남았다. 두려움 같은 건 없어진 지 오래다. 마치 내가 몇 년을 이렇게 걸어온 것처럼 장거리 도보에 내 몸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어느덧 남북저수지에서의 밤은 나를 아주 먼 아름다운 세상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