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어머님과의 대화
2021. 03. 30
발신 : 김쫑
수신 : 아버님, 어머님
제목 : 어느덧 결혼 30년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님, 어머님께!
오늘은 당신의 큰딸과 맏사위인 제가 결혼한 지 30년이 되는 날입니다. 30년 전 그날 잘 키운 딸을 보내며 눈물을 글썽이던 당신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좋은 아내를 만났기에 30년을 잘 살아왔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내와 저, 그리고 예슬이 이슬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시니 저는 그저 당신 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지난 시절 천호동에서 구의동으로 이사오며 힘들었던 이야기를 얼마 전 당신으로부터 듣고 저는 맏사위로 당시 도움을 전혀 주지 못한 것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80을 앞둔 나이에도 일하시며 무슨 때가 되면 손자, 손녀를 위해 바리바리 봉투를 준비하시는 당신의 손길을 이제 그만하셔도 된다고 차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 봉투 안에는 당신의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아버님이 언젠가 이북에 계신 누님을 그리워하며 어렸을 때를 얘기할 땐 저는 당신의 지난 80년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맘속에 맺힌 한이 더 이상 아픈 과거로 남지 않길 바랐습니다.
얼마 전 당신이 4명의 자녀들에게 천만 원씩 나눠주겠다고 했을 때 저는 절대 그 돈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그 돈을 당신이 어떻게 모았는지 잘 알기 때문이죠. 당신의 피와 땀. 하지만 당신은 자신의 피와 땀을 자녀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 했습니다. 결국 저는 당신의 숭고한 맘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받으면서 감사한 마음보다도 무척 미안한 맘이 들었습니다. 천만 원은 돈이 아닌 그 무엇,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죠.
아버님! 어머님과 함께 앞으로 20년만 더 사세요.
제가 곁에서 아들이 되어 항상 같이 있을 께요. 어디 가고 싶고, 뭘 먹고 싶으면 말씀하세요 제가 차로 모시고 갈게요. 그동안 당신은 너무나 훌륭한 인생을 사셨으니 앞으로는 가족들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지내세요.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아버님! 무엇보다도 건강해야 합니다. 이건 저와의 약속이니깐 꼭 지키셔야 해요. 그리고 어머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셔야 해요. 이것도 맏사위인 저와의 약속입니다.
당신께 처음 이렇게 긴 글을 써보는 거 같습니다. 아버님은 충분히 존경받을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저도 나이를 먹다 보니 아버님, 어머님의 깊은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대가 없는 사랑, 주기만 하는 사랑 그리고 받기만 한 저. 제가 드려야 했는데 오히려 받기만 했어요. 앞으로는 드리려고 노력할게요. 아버님, 어머님의 따뜻한 마음을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영원히 잊지 않을 테니 맏사위인 저와 큰딸과 함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존경합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어머님.
## 2021. 3. 30 결혼 30주년 특별한 날을 맞이하여 맏사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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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2008년 2월에 귀국했다. 나는 이전 직장에 복귀하며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두 딸은 대학을 졸업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14년을 건너뛰어 쓴 우리 가족의 글이다. 여전히 우리 가족은 글로 표현하며 사랑을 확인하고 있다.
PS : 결혼 30년이 되어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뭉클하다. 맏사위인 나는 아버님, 어머님(나는 결혼하면서부터 장인, 장모라고 부르지 않았다)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받기만 하고 드린 게 없었다. 편지로라도 미안한 맘을 전하고 싶어 긴 글을 쓰게 된 거 같다. 31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코이카 해외봉사단으로 캄보디아에서 2년 근무하고 귀국한 지 얼마 안 되던 때였다. 은퇴한 나도 60이 넘었으니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이 글이 5년 전 쓴 글이니까 이제 아버님, 어머님은 더 나이가 드셨다. 가는 세월을 어찌할 순 없지만 요즘은 나이 드시는 두 분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더 드는 게 사실이다.